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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인 의원은 27일 오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출입문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세계 최악으로 타결되었음에도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국민여론이 호의적이라고 한다. 타결 직후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미FTA는 IMF 외환위기 10배의 민생파탄을 가져온다. 그리고 협정의 효력은 최소 수십년 동안 계속된다. 한미FTA는 미국자본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올가미인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실상을 알고 난 다음에도 찬성여론이 계속될까.

지금의 찬성여론은 정부와 보수언론의 일방적인 홍보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찬성여론이 높지만 국민은 불안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4월2일 SBS 조사에 따르면 찬성이 52.6%나 됐지만 응답자의 4.2%만이 이번 협상이 '한국에게 유리했다'고 응답했다. 53.9%는 '미국에게 유리했다'고 응답했다. 타결 내용에 대해서도 45.6%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응답해 '만족한다'는 응답 35.5%보다 훨씬 높았다.

지금 국민은 한미FTA를 '불만족스럽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협정의 본질과 내용,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나면 달라진다. 정부의 선전과는 달리 한미FTA의 본질은 한국경제를 미국경제의 하부구조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자본은 항구적으로 이익을 보장받고 한국의 재벌과 특권층은 떡고물을 얻는다. 한미FTA는 이런 불균등한 국제경제구조를 제도로 고착화시키는 것이다.

반면 미국자본의 이익을 위해 농민, 노동자, 중소자영업자, 경쟁력 약한 중소기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OECD 개방과 IMF 개방이 가져온 지금의 고통도 견디기 어려운데 한미FTA는 훨씬 더 심각한 양극화와 빈곤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더구나 이를 치유할 정부의 공공정책까지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한미FTA의 폐해는 심각하다. 일부만 알려졌지만 한미FTA는 국민의 생명 보호, 조세제도를 통한 양극화 해소까지 가로막는다.

한미FTA 본질은 미국자본 이익극대화 강제

미국식 FTA의 본질은 민생과 공공성을 희생시켜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방법은 지식 우위를 바탕으로 자본투자와 지적재산권을 통해 최대의 이익을 얻는 것이다. 금융자본이 주도하며 관세인하를 통한 수출증대는 부차적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관세보다 한국의 비관세장벽 즉,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데 더 역점을 뒀다. 아무런 장벽 없이 항구적으로 한국에서 이윤을 얻으려는 고도의 전략인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 갖가지 독소조건을 만들어 올가미에 걸린 먹이에게서 최대의 이익을 짜낸다. 공공정책이 미국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했을 때 투자자가 정부를 국제기구에 제소하는 투자자-정부제소, 미래에 만들어지는 서비스는 자동으로 개방되는 네거티브 방식, 개방조건을 후퇴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역진방지장치(래칫조항), 한국이 다른 나라와 맺는 FTA 중 최고의 조건을 자동으로 부여받는 최혜국 대우 등이 그것이다.

한미FTA에는 이런 조건들이 모두 반영되었다. 그 결과 미국 자본의 이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게 된다. 이익구조도 항구적이다. 미국이 맺은 FTA 가운데 가장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훨씬 강력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먼저 협상에 매달렸고 모두 퍼주면서까지 타결에 목을 맸다. 미국식 FTA의 본질과 전략을 간과하고 미국이 쳐놓은 올가미를 스스로 목에 건 것이다.

100점 만점에 10점도 못 되는 한미FTA 협상

사실 보통 사람이 한미FTA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산업 전반을 다루는 만큼 내용도 방대하고 고도의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전송되는 디지털콘텐츠제품(digital product) 관련사항은 우리 협상단도 미국의 설명을 듣고 내용을 짐작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정부가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바람에 국회와 국민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정부, 국회, 업계가 하나가 되어 협상에 임한 미국과 우리는 너무 달랐다.

그러나 정부가 아무리 실패를 감추고 성과를 부풀린다고 해도 모든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한미FTA는 100점 만점에 10점도 되지 않는다. 100가지 쟁점 중에 90가지는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고 우리는 실익도 없는 10가지 정도만 얻어냈다. 대통령의 주장과는 달리 한미FTA는 이익도 원칙도 없는 퍼주기만 한 협상이었다. 싱가포르, 칠레, 호주보다 못한 최악의 협상이었던 것이다.

농산품 모조리 내주고, 국민 약값 부담 늘어나

정부가 발표한 '최종 협상결과'도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언론보도로 살펴본다. 먼저, 농업분야는 전멸했다. 당초 정부는 1500개 품목 중 200여개를 지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쇠고기, 감귤을 비롯해 모조리 개방했다. 콩, 감자, 분유, 꿀을 예외로 했다고 하지만 최소시장접근물량을 제공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협상대상도 아닌 쌀을 지켰다고 국민을 속였다. 대통령은 위생검역주권을 포기하면서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을 구두로 약속했다.

의약품 분야도 미국의 요구가 대부분 관철됐다. 독립적인 이의제기 기구가 만들어지는 등 약가적정화방안은 무력화되고 신약특허는 연장됐다. 시판허가와 특허가 연계됨으로써 미국계 제약회사의 특허이익이 강화됐다. 정부도 인정했듯이 피해는 심각하다. 보건의료단체 추산에 따르면 향후 5년간 7조에서 10조원의 국민부담이 추가된다. 또한 유전자조작식품 규제를 미국 요구대로 철폐함으로써 전 국민의 건강이 위험에 노출됐다.

영상산업 싹 잘리고, 자동차 세제도 개악돼

영화·방송 서비스분야는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와 케이블방송의 국산물 의무편성비율이 줄어들었다. 스크린쿼터는 앞으로 늘릴 수 없도록(현행유보) 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외국인 간접투자를 100% 허용함으로써 국내 PP업체들은 고사위기에 놓였다. 통신주권도 사실상 무너졌다. KT와 SKT를 제외한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간접투자제한(현재 15%)이 공익성 심사라는 애매한 조건을 달고 100% 허용됐다.

자동차는 미국이 맺은 FTA 중 가장 불리하게 타결됐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는 승용차 관세를 즉각 없애면서 우리에겐 3000cc 이하 관세(2.5%)만 없앴다. 그러나 소형차 수출이익이 1% 미만이다. 반면 우리는 자동차 관세 8%를 없앴고, 2000cc 초과 승용차의 특소세를 5%로 단일화하고 세제를 3단계로 줄이기로 했다. 그 결과 4000억원의 세수가 감소된다. 자동차 수출의 실익은 없고, 소득재분배, 국민 건강, 환경에만 부정적인 영향이 오는 것이다.

섬유 수출 증가 적고, 조달시장 100조는 환상

미국의 민감 품목인 섬유도 내세울 게 없다. 우리는 품목수 기준 97%, 수입액 기준 72%의 관세가 즉각 철폐된 반면, 미국은 품목수 기준 87%, 수입액 기준 61%가 즉각 철폐됐다. 더구나 우리는 5~6개 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사 기준을 적용받았다. 원사 규정으로 섬유의 수출증가 효과는 1/10 아래로 줄 것으로 판단된다. 싱가포르는 대부분 제품이 원사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 점에 비추어 우리는 미국-싱가포르FTA보다 불리하게 타결됐다.

조달분야도 쌍방이 개방폭을 확대했지만 구체적인 실익은 별로 없다. 대통령이 담화에서 언급한 100조원이 넘는 미국 정부 조달시장은 환상이다. 미국 정부의 조달시장은 85%가 군수, 에너지, 항공분야 등 한국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다. 나머지 15% 가운데 1/10정도인 1~2조원 정도가 외국기업에게 개방되어 있을 뿐이다. 학교급식을 조달시장의 예외로 하기로 한 것이 약간의 의미가 있는데, 이는 미국이 실시하는 제도를 명문화한 것이다.

무역구제, 개성공단, 전문직 비자쿼터 불가

그밖에도 우리는 칠레도 따낸 전문직 비자쿼터도 따내지 못했다. 지적재산권은 저작권 70년으로 연장을 비롯해 대부분 미국의 요구대로 됐다.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로 비위반제소제도만 WTO 규정대로 완화됐다. 일부 공공영역만 뺀 채 투자자-정부제소조항도 관철됐다. 무역구제나 개성공단 문제는 불가능하게 됐다. 금융시장은 알아서 개방하고 있고, 일시적인 자본거래허가(세이프가드)는 조건이 붙어 실익이 없다.

이처럼 미국은 한미FTA를 통해 최대의 성과를 거뒀다. 자본투자와 지적재산권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미국의 목표는 대부분 관철됐다. 반면 우리는 한미FTA를 통해 이전보다 무엇을 얻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잃은 것은 구체적인데 비해 얻은 것은 막연하다.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권, 세금정책 같은 공공성까지 내주면서 미국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영구히 극대화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은 절망이다.

국회에 기대 말고 국민이 비준반대 나서야

▲ 한미FTA 협상을 진행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김종훈 수석대표는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해서 한미FTA 협상 타결 내용을 보고한 뒤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FTA는 참여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시장만능주의 경제정책의 연장선 상에 있다. 서민들에겐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재앙이다. 경쟁력이 취약한 제조업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우리 제조업의 기술력은 평균 미국의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보통신, 자동차 정도가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기술격차가 큰 일반기계, 정밀화학, 석유화학, 의약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IMF 개방 10년 만에 빈곤층이 두 배로 늘었다. 한미FTA는 더 큰 민생파탄과 양극화를 가져온다. 미국자본의 이익을 위해 주권과 민생을 내주는 한미FTA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미국은 앞으로 90일 동안 의회에서 철저하게 검증한다. 수십 개의 자문위원회가 구성되어 협정문을 검토하고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우리도 상임위원회별로 자문단을 구성해서 꼼꼼하게 협정문을 검토해야 한다.

어제 4월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보고를 시작으로 한미FTA 검증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국회는 한계가 많다. 최근 총리인준 표결에서 한덕수씨는 재석 270명 중 찬성 210, 반대 51, 무효 9표를 얻었다.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국민이 나서야 한다. 국민이 나서서 대대적인 비준반대운동을 일으키고 국회의원들을 압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비준 부결은 어렵다. 희망은 국민뿐이다.

덧붙이는 글 | 3월 27일부터 9일간 단식하다 어제 갑자기 위출혈이 발생해서 병원으로 왔습니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 글은 단식기간동안 매일 공부하면서 정리해놓은 글들을 종합해서 완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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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인 기자는 국회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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