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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통신

진보-보수-중도 등 이념적 척도를 가지고 유권자의 성향을 분석하는 방법론은 서구에서 이미 그 한계가 드러났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레드 콤플렉스 등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볼 때 이념적 성향에 따른 유권자 분석 방법론은 서구보다 도리어 한국에서 유권자 분석틀로 한계가 많다고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분단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이념지형 자체가 형성되지 못했는데도 이념 지표를 사용하는 것은 그 출발부터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 vs 보수 이념 지표의 한계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좌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탄압해 왔다. 19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에서 발생한 자생적 좌파세력 역시 사회주의 국가 붕괴 이후 소멸되다시피 하면서 이념지형 자체가 거의 형성되지 못했다.

용어적으로도 '좌파'라는 말이 금기시되면서 '진보'나 '개혁' 등을 혼용함으로써, 이념지형 형성에 있어 많은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 등은 '좌파'로 분류할 수 있으나 이들 역시 '진보' 라는 용어를 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인은 이념적 태도에 의한 정당선택 경험도 없다. 1970~1990년대 한국의 사회운동은 민주주의 세력, 자유주의 세력, 사회주의 세력 등이 당면과제인 '민주화'를 성취하기 위해 보수정당(민주당 등)과 연대하는 양상이었다. 사회주의 세력의 독자정당 창당 시도는 현실법의 한계에 부딪혀 좌초했다.

이에 따라 일반 국민들은 좌파정당 vs 우파정당의 대립을 경험해 본적이 없으며, 정당 지지 역시 우파들의 보수정당 중에서 선택해 왔던 것이다. 다만,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이념적 선택을 하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이념지형이 거의 형성되지 못한 한국사회에 진보 vs 보수라는 이념적 분석틀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자라 할 수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이 유권자들에게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의 이념분석틀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선 새로운 이념지표 사용

서구 사회는 뚜렷한 이념 대립 구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유럽은 경제에 대한 태도로서 좌파 vs 우파의 기본 대립 구도를 형성해 왔다. 유럽의 정당들은 이러한 이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유권자도 이념에 따라 정치적 태도를 갖거나 지지 정당을 결정해 왔다. (그림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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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립 구도는 맑스의 '공산주의' 제창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공산주의 운동 경험이 척박한 미국의 경우는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보수정당의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유럽은 계급구성 변화 및 '개인주의' 신장에 따른 정치지형 변화에 조응하고자 전통적 좌우 구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해 왔다.

1997년, 영국의 존 블런델(John Blundell)과 브라이언 고스초크(Brian Gosschalk)는 전통적 좌우대립 축(경제적 태도)에 개인주의 축을 추가한 모델을 적용했으며, 이후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블레어의 노동당 현대화 프로젝트, 기든스의 제3의 길,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 노선, 전통적 가치관 붕괴에 주목한 잉글하트 모델 등은 기존의 좌우 구분을 뛰어넘고 '개인주의'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서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블런델과 고스초크는 영국에서 사회적․정치적 태도에 따라 보수주의적, 자유지상주의적, 사민주의적, 권위주의적이라고 일컫는 네 집단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림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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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 즉 자유시장에 대한 신념이 한 축에서, 그리고 개인적 자유가 다른 한 축에서 측정되는데 기존의 좌파 우파 구분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유권자 태도 변화나 현실 설명이 가능하게 됐다. 위 모델에 따른 각 유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보수주의적(conservative)] 신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시장의 자유에 찬성하지만 가족, 마약, 낙태와 같은 쟁점에서는 강력한 국가 통제를 원한다.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s)] 모든 방면에서 개인주의와 낮은 수준의 국가 관여를 원한다.

[사민주의적(socialists)] 보수주의자들과 반대로 경제생활에서 더 많은 국가 관여를 바라고 시장을 불신하고 있으나 도덕적 쟁점에 관한 한 정부관여에 회의적이다.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경제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양자를 포함하여 모든 영역에서 정부가 강력한 통제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핵심은 '개인주의'의 급속한 신장

블런델-고스초크의 조사 및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정의에 따라 영국 인구의 약 3분의 1이 보수주의자이며, 20%에 약간 못 미치는 사람들이 자유주의자이며, 18%가 진보주의자, 13%가 권위주의자, 그리고 기타가 15%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선거 직전에 토니 블레어에 의해 재건된 노동당은 보수주의적 집단을 제외한 다른 집단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보수당에 투표하겠다는 사람들 가운데 84%가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집단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새로운 방법론 도입의 핵심에는 '개인주의'의 급속한 신장이 자리 잡고 있다. 개인주의란 집단적인 삶의 방식 우위라는 전통적 관념 대신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 신장을 추구하는 흐름을 말한다. 2차 대전 이후 베이비 붐업 세대가 주도하고 있는데 그 분포를 보면 젊고, 교육수준이 높으며, 소득도 높은 층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개인주의 세력은 42% 수준이며(2006년 갤럽 조사결과), 영국은 38% 수준(1997년 IEA 조사결과)을 보이고 있다. 인용한 영국의 수치 38%는 1997년 자료이기에 현재는 미국의 경우처럼 40% 수준으로 확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개인주의의 신장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사회분석틀을 주창한 사람으로 미국의 데이비드 놀란(David Nolan)이 있다. 놀란은 1971년, 기존의 단선적인 좌우 이념축에 개인주의 축을 추가한 '놀란 차트'를 만들었다. 놀란 차트는 이후 많은 변형과 개념이 추가되기도 했으나 개인주의 축을 유지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고 있으며, 위의 블런델-고스초크 모델 역시 놀란 차트의 변형이다.

한국 사회 역시 '개인주의'가 매우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개인주의적 성향의 국민이 상당수에 놓여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에 대한 사회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구체적인 수치는 확인된 바가 없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 적용할 경우 주목할 것들

그렇다면 이러한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이 한국 사회 적용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현재의 이념대립 구도는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에 대한 태도로서 진보 vs 보수의 이념 구분에 따라 한국의 유권자 및 정당의 지형을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림3 참조)

ⓒ 여의도통신

자본주의 발달 및 세계화에 따라 시장자유적 측면이 강조되면서(이는 전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국가관여의 표현인 '규제' '분배' '복지국가' 등은 소수의 위치로 몰리고 있다. 유럽 등 복지국가들조차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여 복지규모를 줄이는 추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참여정부가 복지를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복지수준이 서구의 복지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기에 이를 확충해야 한다는 논리는 '맞는 말'이지만 현재의 이념구도 속에서는 '좌파적' 혹은 '사회주의적'이라는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명박 전 시장과 한나라당 후보들의 시장자유 주장이 마치 '개인적 자유'를 포함하는 듯한 착시효과를 일으키면서 '개인주의적' 유권자 다수를 포섭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2007 대선 역시 이념대립 구도로 치러질 경우 한나라당 승리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선구도는 이념적 프레임에 의해 각종 담론이 생산, 유지, 강화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전 시장 등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사례1] 시장자유를 주장하는 한나라당 및 한나라당 후보들에 비해 국가관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마치 반시장주의자로 인식되고 있다.

[사례2] 시장자유에 대한 주장은 개인자유까지 옹호하는 듯한 착시효과를 일으키면서 시장자유에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참여정부 및 열린우리당 그리고 대선주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례3]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라는 구분법 역시 이념적 대립축의 변형으로 경제발전을 주도한 산업화세력에게 다시 한국경제 재건을 맡겨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이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도에서 범여권이 '반한나라당 연대'를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소수자'를 자임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며, 결국 이러한 구도가 유지되는 한 한나라당의 승리가 예상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적용되면 대선구도 아성 흔들릴 수도

그러나 새로운 분석틀을 적용할 경우 선거구도에 변화가 예상된다. 실제로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에 따른 한국의 유권자 및 정당의 지형을 예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4 참조)

ⓒ 여의도통신
이념적 대립구도 축에 '개인자유' 축을 추가해서 펼쳐보면 각 정치세력의 입장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우선 한나라당은 보수주의자로 시장의 자유에 찬성하지만 개인적 자유 옹호보다 국가규제를 선호하는 지형에 위치하게 된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역시 개인자유 측면에서는 뚜렷한 입장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국민을 계도하려는 권위주의적 요소가 다분한 지형에 위치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개인주의적 성향의 유권자 다수가 위치하고 있는 상단 지형에 적합한 정당 또는 대선후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탈정치화 되어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이 이들을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범여권의 입장에서 이러한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을 차용할 경우 실천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블런델-고스초크 연구보고서는?

영어로 쓰여진 이 연구보고서의 원제는 이다. 기존의 이념적 방법론 대신 개인주의 축을 추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적용, 영국 국민의 의식을 새롭게 규정한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기든스의 유명한 저작, <제3의 길>에 인용되었는데, 그 조사결과 및 분석내용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P&C리포트(pncreport.com) 홈페지에서 영어 원본을 다운받아 볼 수 있는데, 주요 목차는 다음과 같다.

-Foreword by Robert M. Worcester
-The authors
-Introduction
-Beyond Left and Right
-Voting Intentions by Ideology
-Party Vote by Ideologies
-Ideologies by Social Characteristics
-Questions by Social Characteristics
-Where do you fit?
-Appendix I: Summary Data 21 Questions
-Appendix II: Grouping by Voting Intention
-Appendix III: Group Classification
-Technical Note
-Endnotes / 여의도통신

덧붙이는 글 | 정리=여의도통신 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 이 기사는 국내의 가장 권위 있는 정치분석기구 중 하나인 P&C글로벌네트웍스가 제공한 < P&C리포트 >를 여의도통신이 가공한 것이며 입법전문 정치주간지 <여의도통신> 6호(4월 9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태그:#개인주의, #대선, #분석틀, #유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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