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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戊戌)년 이월 초이틀이었다. 정월부터는 봄이라 하되 이름이 봄이지, 이월 중순까지도 날이 춥기가 여간이 아니었다. 아침저녁은커녕 낮에도 혹혹 쏘는 바람이 나무등걸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길이며 뜰에 널린 나무 부스러기며 종이조각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날 운현궁(雲峴宮)안의 공기는 그다지 좋지 못하였다. 무슨 커다란 수심이 있는 듯이, 하인들이 동으로 서로 분주히 왕래하며 구석마다 모여서 근심스러운 듯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중략)

그런 심한 바람 가운데서도 무엇이 분주한지 무엇이 근심스러운지, 하인들은 방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뜰을 수군거리며 왕래하였다. 문득 안에서 곡성이 울려 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한 마디에서 시작된 그 곡성은 삽시간에 퍼졌다.(중략)

"운명하셨다!"

- 운현궁의 봄(김동인) 중에서


길고 길었던 겨울과 꽃샘추위가 지나고 남쪽의 따뜻한 바람과 함께 봄이 찾아왔다. 봄이란 무릇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그만큼 봄은 겨우내 움츠렸던 모든 것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활기를 되찾아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나도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기지개를 활짝 켜고 봄바람을 따라 운현궁을 찾았다.

운현궁은 조선후기 흥선대원군이 살던 집으로, 조선의 26대 임금인 고종이 12세까지 성장하여 왕위에 오른 곳이기도 하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 운현궁이라는 칭호와 함께 대원군의 거처다운 면모로 확장해 증축했다. 현재는 사적 257호로 지정되어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 운현궁 앞의 거리에도 봄의 따스함으로 가득하다.
ⓒ 박혁
운현궁을 찾아 걸어가는 길목은 봄의 따스함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면 과연 도심 한가운데서 봄의 따스함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걸어가는 그 곳에서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면 그 곳이 도심이 됐든 한적한 시골이 됐든 봄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운현궁에 찾아온 따뜻한 봄의 향연

▲ 운현궁의 역사와 함께했을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앞마당을 지키고 있다.
ⓒ 박혁
운현궁 입구를 지나니 가장 먼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키면서 뿌리가 깊어지고 나무의 크기도 점점 커져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자라온 이 한 그루가 운현궁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 운현궁의 사랑채 노안당. 이 곳에서 많은 개혁정책이 논의되었다.
ⓒ 박혁
운현궁의 앞마당을 지나 운현궁의 사랑채 기능을 하던 노안당으로 들어가 본다. 노안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노인을 편안하게 한다(老者安之)”라는 글귀에서 따왔다고 하며 대원군의 주요개혁정책이 논의되었던 곳이라 한다. 하지만 주요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노안당 앞마당에는 아무 말 없이 햇빛만 따사로이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 운현궁의 중심건물인 노락당. 이 곳에서 많은 행사들이 열렸다.
ⓒ 박혁
노안당을 지나 운현궁의 중심건물인 노락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종 3년(1866)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를 비롯한 회갑, 잔치 등 각종행사가 노락당에서 열렸으며 현재도 이곳에서 신랑신부들의 전통혼례가 열리고 있다. 마침 운현궁을 방문했던 이 날(15일)에도 이곳에서 결혼식이 있었는지 관리하는 분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 운현궁의 살림을 맡아서 하던 이로당의 모습이다.
ⓒ 박혁
운현궁의 가장 왼쪽에 있는 이로당으로 가봤다. 안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서 여자들만 살 수 있는 이 건물은 구조가 입구(口)자 모양이며 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가 운현궁의 살림을 맡아서 하던 곳이었다. 명성황후도 이곳에서 궁중법도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대원군은 이곳에서 교육을 받는 한 아이가 후에 자신의 강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것으로 두 사람의 정치적 대립이 끝나기까지 대원군과 명성황후 두 사람 모두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로당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 흥선대원군 영정. 이제는 대원군을 영정으로만 만날 수 있다.
ⓒ 박혁
이로당을 나와 유물전시관으로 들어가 본다. 그 곳에는 운현궁의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대원군의 영정도 걸려있었다.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파격적인 정치를 했던 흥선대원군은 이제 영정으로만 남아 유물전시관 한 곳에서 운현궁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 봄바람을 따라 외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운현궁을 찾았다.
ⓒ 박혁
유물전시관을 빠져나와 다시 운현궁 앞마당으로 나왔다. 앞마당에는 여전히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햇빛 또한 가득했다. 우리나라 근대사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운현궁에서 따뜻한 봄의 향연이 조금씩 찾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 운현궁에도 따뜻한 봄이 찾아오고 있다.
ⓒ 박혁

운현궁 여행메모

ⓐ 지하철 :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
ⓑ 버스 : 109, 151, 162, 171, 172, 272, 601, 7025 탑승 후 창덕궁에서 하차 후 안국역 4번출구 방면으로 걸어가면 된다.
ⓒ 관람시간 : 3월은 09:00 - 18:00, 4월 - 10월은 09:00 - 19:00, 11월 - 2얼은 09:00 - 17:00 이다.
ⓓ 입장료 : 일반(25세 이상 - 64세 이하)는 700원(단체 30명 이상은 550원)이고 청소년(13세 이상 - 24세 이하)과 군인(제복입은 하사 이하 군인)은 300원(단체 30명 이상 250원)이다.

덧붙이는 글 | 박혁기 자는 여행작가가 되기위해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 여행시민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청소년 인터넷 언론인 스스로넷 뉴스(http://www.ssro.net)에도 송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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