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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5년 만에 열리는 사도세자 진혼제 포스터입니다. 그 한 많은 세월을 달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원할 예정입니다.
ⓒ 수원시 문화관광과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뒤주 속에 갇혀 억울하게 숨져 간 비운의 사도세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진혼제가 수원 화성행궁 앞에서 처음으로 열립니다.

이번 진혼제는 화성행궁에서 매일 시연되고 있는 무예24기가 최근 수원시 향토유적 제21호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무예24기를 만든 주역인 사도세자와 그의 아들 정조의 숭무정신을 계승하고, 1899년 장조(莊祖)로 추존된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진혼제를 기획한 수원시 문화관광과에 따르면 노론의 쉼 없는 공격에 희생양이 되어 뒤주 속 갇혀 억울하게 삶을 마감한 사도세자는 대리청정 시절 조선의 국방을 걱정하며 임진왜란이후부터 정리된 군사들의 개인 무예를 정리하여 1759년 <무예신보>를 편찬했습니다.

그 후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무예신보>에 담긴 18가지 무예에 마상무예 6기를 더한 '무예24기'를 완성해 <무예도보통지>라는 이름으로 간행하게 됩니다.

이번 진혼제는 사도세자와 정조에 의해 완성된 조선의 국기 '무예24기'의 시범공연으로 시작하는데 본국검법·장창진법·기창·쌍검·권법 등 다양한 조선무예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또한 이날의 주요 행사인 진혼제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이자 우리나라 대표적인 만신(여자무당)인 김금화 여사가 3시간 동안 진혼굿과 작두거리를 직접 거행하며 사도세자의 넋을 달랠 것입니다.

▲ 저 무덤 깊은 곳에 당쟁의 화살에 맞아 외로이 뒤주에 갇혀 승하하신 슬프디 슬픈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습니다. 꽃피어 아름다운 산, 화산(花山)에서 편히 잠드소서.
ⓒ 최형국
아들 정조의 끊임없는 명예회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왕실의 관례로 인해 그의 억울한 죽음을 해소하는 진혼제는 단 한 번도 개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진혼제는 245년 만에 처음으로 개최되는 특별한 행사라는 것이 수원시 문화관광과의 설명입니다.

특히 화성사업소 김준혁 학예사는 "조선의 대표무예인 무예24기가 세계무형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무예가 탄생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신 사도세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진혼제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진혼제를 이끌어갈 김금화 여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서해안풍어제 보존회가 주관하며 7월 12일 오후 6시 30분 수원화성 신풍루 앞에서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이번 진혼제가 열린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매일 시범공연을 펼치고 있는 무예24기보존회 시범단의 모습입니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꿈을 담은 친위부대 장용영이 익혔던 무예24기가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 최형국
1762년(영조 38) 윤 5월, 그 해의 햇살은 유독 따가웠습니다. 노론의 집요한 공격에 한 나라의 세자가 국왕에게 버림 받아 뒤주 속에 갇혀 8일 동안이나 신음하다 세상을 버린 일이 벌어졌습니다.

13일부터 21일까지 꼬박 8일 동안 뒤주에 갇힌 28살의 피 끓는 청춘, 사도세자는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하고 그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 영조와 그 처절한 질곡으로 몰아넣은 장인 홍봉한 그리고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에게 끝없는 한과 원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처절한 아비의 죽음을 보고 목 놓아 울어 보지도 못한 가여운 아들 정조는 당시에 10살이었습니다. 이후 사도세자를 표적삼아 날리던 화살들이 자신에게 쏟아질 것을 상상하지도 못한 채 도대체 왜 자신의 아비가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아무 힘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그 후 15년이 지나가고 수많은 정치적 탄압과 자객들의 비수를 뒤로 하고 드디어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권좌에 오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비가 죽은 임오년 이후 단 한 번도 이야기하지 못한 그 한을 달래듯"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정조의 시대는 열립니다.

▲ 무예24기 중 유일하게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익힌 권법의 모습입니다. 권법은 전투에서 사용하기보다는 무기를 다루는 기본을 익히는 신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수족을 원활케 하기 위하여 수련하였습니다.
ⓒ 최형국
당시 사도세자의 죽음을 사주했던 노론대신들은 피의 숙청을 두려워하며 궁궐의 담장을 넘어 국왕인 정조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펼치기도 합니다. 다행히 호위무사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정조는 이후 자신의 친위군부 세력을 넓혀 장용영이라는 조선 최강의 군영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수원 화산으로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고 화성을 건설하며 새로운 조선을 꿈꾸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시범단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전쟁사 및 무예사를 전공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24ki.com 입니다


태그:#사도세자, #정조, #무예24기, #진혼제, #김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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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의 역사와 몸철학을 연구하는 초보 인문학자입니다. 중앙대에서 역사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기대 역사학과에서 Post-doctor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전통무예연구소(http://muye24ki.com)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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