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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지인들과 함께 3천 평 넘는 땅을 경작하면서 사람의 힘만으로 감당하기엔 벅찼던 게다. 그런데다가 이제 막 개간한 곳이라 돌도 많고 물 빠짐도 좋지 않아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곳을 괭이와 호미, 그리고 삽만으로 감당하려고 했으니 요즘 농부들이 보면 가소로울 수도 있었겠다 싶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우리 '더아모의집'에도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동안 삽, 괭이, 호미 등을 사용해오다 큰맘 먹고 중고 경운기 한 대를 장만했기 때문이다.

"하하하하. 이제 여기도 산업혁명이 일어났구먼. 대단한 발전이여."
"산업혁명? 그렇구먼요. 산업혁명이라. 이제 바야흐로 산업혁명 시대가 됐구먼."

▲ 큰 맘 먹고 장만한 중고 경운기가 앞으로 열심히 갈아 엎어야할 밭을 쳐다보며 서있다.
ⓒ 송상호
경운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 1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는 지인이 와서 나에게 경운기 운전법을 가르치다가 웃으면서 나눈 대화에서 유래된 것이 바로 '산업 혁명' 이야기다.

사부님(경운기 운전을 가르쳐주는 지인)으로부터 1시간 정도 연수 받은 후 드디어 나의 밭 갈기 시험이 시작되었다. 기계하고는 원래 친하지 못해 늘 젬병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시골에 살면서 경운기 하나는 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겠다 싶어 이를 야무지게 다물고 배웠더니 사부님도 칭찬까지 해준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기계를 잘 다룬다고 칭찬도 들을 때가 있다니 말이다.

그렇게 연수를 마치고 나서 그 다음날 아침에 쟁기질에 나섰다. 아내는 마음이 안 놓여서인지 한사코 밭 갈기에 동행하겠다며 따라 나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내가 기계 다루는 것을 십년 넘게 지켜본 아내로선 당연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마치 갓 입학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등굣길에 혼자 내보내는 엄마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처음부터 뭔가 삐걱거린다. 쟁기를 달고 조금 높은 데 있는 밭으로 올라가려고 하니 경운기가 말을 안 듣는다. 쟁기를 단 상태로 오르막길을 오르려고 하니 저절로 쟁기질이 되어 길을 갈아엎는 바람에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죽을 똥을 싸는 것이 아닌가. 오르락내리락 하니 아내도 옆에서 괜히 잔소리가 많아진다. 덕분에 나도 괜히 짜증내며 말다툼의 횟수가 잦아진다.

"아니 내가 말한 대로 해보라니까요."
"조금 기다려 봐요. 그걸 누가 모르나.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거지."
"그렇게 하면 위험하잖아요. 내 말대로 해보라니깐."
"잔소리 좀 그만 해요."

아내와 나는 이렇게 '쌩쇼'를 하고 나서야 겨우 오르막길을 올라 경운기를 안전한 밭 가까이로 모시게 되었다. 밭도 갈기 전에 밭에 올라가는데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으니 본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을 다 빼버린 결과가 아닌가 말이다. 바로 옆에서 아내는 또 한 번 십년감수했다는 눈치다.

땅 속으로 기어드는 경운기, 지가 두더쥐인가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그런 난리를 치고 난 후 밭에 도착하니 밭 갈기는 훨씬 수월해 보이는 게 아닌가. 짐작대로 밭 갈기는 수월했다. 적어도 쟁기 달고 오르막길 오르는 것보다는 말이다.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쟁기질 한판이 시작되었다. 오르막길보다는 수월했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수월하지는 않을 터. 경운기를 한 번이라도 운전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경운기 운전이 그리 만만찮지 않다. 기어 넣는 것, 속도 조절하는 것, 좌우 방향 조절하는 것, 후진하는 것 등이 일반 차량과는 확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편이라는 걸 말이다. 밭을 갈라치면 힘도 많이 써야 한다.

비뚤비뚤. 아무리 운전을 제대로 하려 해도 경운기는 내 맘대로가 아니라 경운기 맘대로 움직인다. 밭의 흙도 물기가 적잖이 있어 쟁기가 한 번 땅 속으로 기어들어 가기 시작하면 앞으로 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헛바퀴만 돌곤 한다. 지가 뭐 두더지라도 되는지. 앞으로 가면 될 걸 자꾸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가다니. 그러다가 한 번은 심하게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경운기를 달래어서 빼내느라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를 동원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가니 조금씩 감이 온다. 경운기와 내가 조금씩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이렷다. 조금 전까지 두더지 짓을 하던 경운기도 이젠 그 횟수가 점차 줄어든다. 그리고 야생마 같던 경운기가 어느새 순한 양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의 얼굴이 점차 펴져가는 것이다.

▲ 아무리봐도 폼이 어설프다. 지금은 내가 로터리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 송상호
"자기야(아내가 기분 좋을 때에 나를 부르는 호칭)~~~~, 경운기질 잘 한다."

오랜 시간 옆에서 마음 졸이던 아내가 드디어 콧소리까지 내며 칭찬에 나서니 나와 경운기가 신이 난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 속도를 조금 빨리 해서 밭을 갈려니 더욱 신난 것은 경운기다. 어설픈 주인 만나서 자기 속도도 내지 못하고 자기 진가도 발휘하지 못하던 경운기가 그제야 물을 만난 듯 소리까지 경쾌하다. 그리고 주변 숲 속 경관까지 눈에 들어오는 여유까지 생긴다. 그 옛날 소와 함께 쟁기질을 했던 조상들의 숨결까지 느껴지니 마음의 평정을 많이 되찾은 것이리라.

그렇게 아내와 나는 오전 내내 경운기랑 생애 최초의 밭 갈기 한 판을 끝내고 나니 두려울 게 없어진다. 나도 이제 농민들의 애환을 실어 나르던 경운기와 친해지는구나 싶어 괜히 웃음이 나온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태그:#더아모의집, #송상호목사, #경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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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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