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기자라는 사람이 '취재 경위'를 글로 쓰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혹여 그럴 듯한 상이라도 받아 수상소감을 쓰는 게 아니라면, 경계에 경계해야 할 일이 바로 취재 경위에 대한 글일 것이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날, 그것도 아프간 한국인 인질 추가 살해 소식이 전해진 마당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한가로운 유희로 지탄받을지 모르겠으나, 언론계의 한 단면을 드러내 주고, 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대목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망설임 끝에 쓰기로 작정했다.
하루종일 '닫힌 창구', '공식 입장'도 없었다
<동아일보> 이야기다. 오늘(31일) <동아일보> 지면에 어떤 소식이 실릴지가 궁금했다. 인질 살해 소식이 아니다. 지난 며칠 동안 <신동아> 기자 두 명의 이메일 계정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논란에 대한 기사가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했다(
관련기사 참조).
왜냐하면 어제 <동아일보>는 고 최태민 목사 국가기관 수사자료 유출 사건과 관련해 검찰 측과 임의 제출 방식으로 기자들의 이메일에 대한 선별적인 열람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어제 하루종일 <동아일보>측과 계속 접촉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이에 대한 '확답'을 한마디도 듣지 못한 필자로서는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서라도 <동아일보>의 공식 입장을 확인할 기회가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디어 분야를 다루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언론사와 기자를 자주 '취재'하는 필자로서도 어제 <동아일보> 취재는 참으로 힘들었다. 검찰의 압수 수색에 맞서 어제 새벽까지 70여명의 기자들이 농성을 했던 <동아일보>였지만, 어제는 온통 '입'을 다물었다. 민감한 상황인 만큼 다른 언론의 취재에 대해서는 창구를 단일화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렵사리 몇몇 관계자들과 통화할 수 있었다. 다만 '비공식적' 취재였다. 공식적 설명과는 별도로 기자들의 반응과 의견을 알고 싶었기 때문에 '비공식'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 또 회사 차원에서 '공식적인 창구'까지 둔 만큼 그 창구를 통해서 '공식적인 입장'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동아일보의 '공식 창구'라는 경영기획실 총괄팀장은 하루종일 연락이 안됐다. 계속 '회의 중'이라는 답변만 되돌아 왔다.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계속 부재 중이었다. 나중에라도 연락을 주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전화는 없었다. 그의 휴대전화는 아예 받지를 않았다. 그는 '공식 창구'가 아니라 '닫힌 창구'였다.
결과적으로 <동아일보>는 모든 기자들의 '입'은 공식적으로 막고, '공식 창구'는 '회의 중'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폐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창구'는 없었다.
그래서 오늘 <동아일보>의 지면이 궁금했다. 검찰과의 합의 내용 등을 <동아일보>가 어떻게 전할지가 궁금했다. 어제 하루종일 분통을 터트리게 했던 <동아일보>였지만, 어찌됐든 지면을 통해서라도 그 궁금증을 해소하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동아일보> 지면에서도 관련 소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 전까지 '언론자유 흔드는 검찰의 압수수색'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동아일보>였지만, 지면에서 검찰과의 합의 사실 등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동아일보> 압수 수색의 근원이 된 한나라당 관계자의 검찰 압수수색에 대한 비판 발언과 한국기자협회의 항의 성명 소식만을 간단하게 다루었을 뿐이다.
검찰이 <신동아> 기자들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하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한나라당이 최태민 목사 수사 자료를 국가기관에서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이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데 따른 것이다. <동아일보>로서는 한나라당이 '병 주고 약 준' 얄미운 존재일 수 있는데, "동아일보 압수수색은 주객이 바뀐 수사"라고 목청을 높인 한나라당의 '옹호성 발언'만을 부각시켜 보도했다.
기자 사생활은 보호, 독자 개인정보는 괜찮다?
어찌됐든 좋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어제 취재 과정에서도 <동아일보> 측에 밝혔다시피 궁금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동아일보>는 그동안 일관되게 국가기관 등의 자료 유출 의혹에 대해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는데, 그것을 밝히겠다고 나선 검찰의 수사에 대해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여기에서 오해는 없기 바란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저지한 기자들의 행위가 일관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자들로서는 정당한 취재 행위와 흠잡을 데 없는 기사에 대해 '피내사자 관련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자들의 이메일을 무차별적으로 뒤지겠다는 검찰의 압수수색과 법원의 영장 발부에 항의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 '피내사자와의 연관성'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궁금했던 것은 <동아일보> 지면의 일관성 문제였다.
더욱이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라며 많은 지면을 할애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동아일보>였던 만큼 어쨌든 임의제출 방식으로 검찰의 수사에 협조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면 이 사태에 대한 <동아일보> 입장의 일관성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 검찰 수사에 협조하기로 한 것인지, 그 같은 방법은 <동아일보>가 주장했던 '취재원 보호 원칙'과는 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동아일보>는 독자와 국민 앞에 정직하게 밝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취재원 보호와 언론 자유를 위해 검찰의 압수수색에 그렇게 저항한 <동아일보>였지만 왜 <동아닷컴> 홈페이지에 게시된 <신동아> '최태민 보고서' 기사에 접속한 로그인 기록은 검찰에 내줬는지 하는 점이다.
<동아일보>는 30일자 사설에서 "기자들의 이메일 계정을 압수수색하려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으로 용납하기 어렵다"면서 "더욱이 본사는 동아닷컴 홈페이지에 게시된 신동아 '최태민 보고서' 기사에 접속한 로그인 기록을 검찰에 넘겨줬다"고 밝혔다.
이어 "기자들의 이메일에 대해서도 취재원과 사생활 보호 원칙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검찰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세"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마디로 검찰의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려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동아닷컴> 웹사이트에서 '최태민 보고서' 기사에 접속한 로그인 자료를 검찰에 넘겨주는 것은 이들 독자들의 '사생활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과연 그럴까? 실명 인증을 해야만 접속 가능한 <신동아> 기사를 <동아닷컴> 웹사이트에서 읽은 독자들의 '로그인' 기록을 무차별적으로 검찰에 제출한 것이 독자들의 사생활이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검찰 수사와 관련 없는 기자들의 이메일 열람에 그렇게 극력 반발했던 <동아일보>와 기자들이 <동아일보>의 공신력과 <동아닷컴>의 프라이버시 보호 원칙을 믿고 접속한 독자들의 로그인 기록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내줄 수 있었던 것일까? 혹여 기자의 사생활과 기자들의 취재원 보호는 중요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정작 일반 국민들의 사생활 정보나 프라이버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대목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언론자유' 이중잣대
<경향신문>은 오늘 한나라당의 '일구이언(一口二言)'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경향신문> 등의 검증 보도에 대해선 기사의 사실 관계에 대한 해명 없이 "자료 출처를 밝히라"고 압박하던 한나라당이 보수언론(여기에서는 <동아일보>를 지칭한다)의 취재과정의 의혹에 대해선 "취재원 보호" "언론자유"를 거론하고 있는 이중성을 지적하면서 "한나라당은 과연 언론 자유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나아가 <경향신문>은 "경향신문의 보도에 대해 '의혹의 근거가 되는 자료의 취득 경위도 떳떳하다면 밝혀야 한다'(<동아일보 7월 4일자 사설)며 사설과 기사를 통해 취재원 공개를 주장해왔"던 보수언론들의 이중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동아일보>가 "검찰이 자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물리적으로 저지하고 30일에는 3개 면에 걸쳐 '취재원 보호와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실은 것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타당한 행동"이라면서 "그러나 이 같은 잣대는 다른 언론의 보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동아일보> 지면의 일관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신동아>가 '최태민 보고서' 등을 입수해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을 검증하려 한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동아일보> 기자들이 4일이나 밤샘 농성하면서 이를 저지한 것 또한 사법권의 행사와 언론 자유의 충돌 문제와는 별개로 '취재원 보호'와 '언론자유'에 대한 <동아일보> 기자들의 '의지'와 '저력'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런 기자들의 수고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동아일보>는 지면으로든, '공식 창구'를 통해서든 제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논란에 대해 이를 '비난'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열린 자세'로 성실하게 응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론자유는 <동아일보> 혼자서만, 특히 기자들의 노력만으로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나, 그리고 언론이라면 그 어떤 언론이나 '언론자유'를 위해서는 힘을 모으고, 또 서로간의 열린 논의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물론 오늘 이 시점까지도 꽉 닫힌 <동아일보>의 '공식 창구'가 참으로 답답하게 생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공식 창구'는 공식적으로 문을 닫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