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25일 아프가니스탄 경찰 차량이 가즈니주의 탈레반에게 살해된 한국인 인질이 발견된 장소에 도착하여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AP 연합뉴스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 무능론이다. 한국인 납치사건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이 "무기력" "속수무책" 등의 수사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근거가 있다. 심성민씨가 탈레반에 의해 살해되기 몇 시간 전 "협상시한이 이틀 연장됐다"는 미라주딘 파탄 가즈니 주지사의 말을 믿고 정부 대책팀이 철수한 사실이다. 협상창구를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의존하는데, 그 정부는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현실도 있다.

일부 언론은 이 두 가지 사실을 근거로 정보력과 협상력 부재를 문제 삼는다. 중요한 문제제기다. 정보를 모아야 상황을 판단하고 협상 전략을 짠다. 협상 창구가 있어야 짜놓은 협상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원칙은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주 거칠게 하나만 되묻자. 정부가 거짓 정보에 휘둘리지 않았다고, 직접 협상 창구를 개설했다고 해서 뭐가 달라졌을까?

정부가 협상 나섰다면 달라졌을까

정부 무능론을 펴는 일부 언론이 같은 시점, 같은 지면에 보도한 게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 긴밀히 정보 공조를 이루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군의 정보에도 구멍이 많다(<중앙일보> 보도, 외교부 당국자의 말)"고 한다.

조합하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아가 중동에서 자리깔고 앉은 미국이다. 수만의 병력에 수를 알 수 없는 현지 첩보원, 여기에 정찰 위성에다가 무인정찰기 '프레데터'까지 총동원한 미국이다. 그런 미국조차 정보에 구멍이 많은 형편이다.

▲ 배형규 목사에 이어 심성민씨가 아프간 탈레반에 의해 추가 살해된 31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아프간사태 평화해결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미국의 아프간 점령과 한국군 파병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상황이 이런데 정부의 정보력 부재를 질타하는 건 과하다. 초등학생 보고 수능 시험 보라는 것과 같다.

정부를 두둔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 스스로 "두 분의 생명을 잃는 사태가 발생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한 마당이다. 줄기를 놔두고 가지를 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 어떤 정보보다 중요한 정보가 있다. 탈레반의 요구는 한국인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의 맞교환이다. 이 정보에 입각하면 협상 전략은 아주 간단하게 짤 수 있다. 탈레반 수감자를 풀어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는 한 발 빠르게 정보를 취합하고, 다각도로 직접 협상 창구를 뚫어도 소용이 없다.

초등학생에게 수능 치라고 질타하는 언론들

정확한 정보를 입수해 기민하게 대처했다면 두 번째 희생자가 나타나는 일을 지연시킬 수 있었고, 그 동안에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았겠냐는 얘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 대변인이, 미 국무부 대변인이 탈레반 수감자 석방은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은 시점은 심성민 씨가 살해된 직후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국제적인 대테러 원칙을 잘 알지만 유연하게 적용해 달라"고 촉구한 직후이기도 하다.

두 나라 정부는 완고하고 완강하다. 협상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거짓으로라도 탈레반 수감자를 풀어주는 포즈조차 취할 의향이 없다.

이왕 짚을 것이라면, 정부의 정보력과 협상력을 문제 삼을 것이라면, 그리고 결과론을 갖고 따질 것이라면 방향을 틀어야 한다. 대미 협상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국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있다고 하니까 논외로 하자.

정보가 있었다. 미국이 지난해 1월 이라크에서 납치된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질 캐럴 기자를 무사 귀환시키기 위해 수용소에 억류 중이던 이라크 여성 5명을 내준 적이 있다. 분석도 있다. 지난 3월 탈레반 수감자 5명과 이탈리아 기자가 맞교환 된 일도 미국의 묵인 하에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협상 창구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른바 '동맹국' 미국 아닌가. 직접 협상 창구는 새로 개설하고 말 것도 없다.

▲ 2005년 6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장면.
ⓒ 연합뉴스
'동맹국' 미국은 무얼 하고 있나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미국의 입장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두 명의 한국인이 희생되고 나서야 공개리에 "국제적인 대테러 원칙의 유연한 적용"을 미국에 촉구했다. 미국은 또 다시 우리 정부의 완곡한 요청을 완강히 거부했고….

이게 현실이고, 우리 언론이 착목할 지점이다. 논의는 여기로 모아야 한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한미간 논의가 진행 중이니까 속단하지 말라는 주장, 또는 "국제적 대테러 원칙"은 신성불가침이니까 정부 노력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거둘 일이다. 천호선 대변인이 토로한 "권한 밖" "한계"를 무능의 방증으로 삼을 게 아니라 일단 고충 토로로 이해하고 나중에 차분히 짚을 일이다. 한미동맹의 수준과 범위 말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