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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은 피어 웃고 있고> 포스터
ⓒ 김진환 한국 춤 예술원
지난 31일 미 의회는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마침내 통과시켰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온갖 변명을 늘어 놓으며 조금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 중학동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벌어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그 기약없는 이어짐이 계속 되고 있다.

춤극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바로 이런 시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다.

춤극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빌려 '김진환 한국 춤 예술원'이 '반전 평화를 외치는 815 특별공연'으로 내놓는 이 작품은 춤으로 표현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다.

8.15를 앞둔 8월 5일. 방배동의 한 건물 3층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땀을 뻘뻘흘리며 격한 몸짓을 짓는 사람들의 표정은 바로 이런 일본의 행태에 대한 거센 항의의 몸부림으로도 보여졌다. 그것은 한편으로 처절한 몸짓으로 표현하는 준엄함 꾸짖음 같기도 했다.

거칠고 역동적인 몸짓으로 펼치는 군무와 절절한 심정을 가득 담아 펼쳐지는 독무, 슬픔과 공포의 몸부림으로 "엄마!"를 처절하게 외치는 여인의 모습에 일본이 그토록 부인하는 일본군 위안부로 드센 삶을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공연 내내 눈물 지어

▲ <꽃은 피어 웃고 있고> 공연을 위해 연습중인 단원들
ⓒ 송정희
"감정을 담으란 말야. 감정을. 밋밋한 표정으로 그러지말고"

진도아리랑의 선율에 맞춰 때로는 역동적인 동작으로 때로는 구슬픈 동작으로 춤을 추던 출연진에게 뭔가 안풀리는 표정을 짓던 안무가인 임응희 선생의 지적이 전달됐다. 감정선을 강조하라는 설명을 듣고 다시 이어지는 춤. 춤사위를 펼치던 춤꾼들의 표정에는 위안부로 끌려가던 여인들의 아픔을 생생히 표현하려는 듯 감정이 깊어지고 있었다.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지난 2004년 5월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처음 공연됐다. 일본군 위안부로 치욕스런 삶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의 아픔을 춤을 통해 표현해 낸 이 작품은 첫 공연당시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해 5월 20일에 있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제2회 국제연대협의회 서울대회 초청공연 때, 공연 내내 할머니들을 눈물 짓게 만들었던 것은 비록 춤이지만 너무나 생생히 그려내는 사실적인 내용 때문이었다..

이번 공연은 지난번 내용을 일부 각색해 극적 요소를 가미했다. '춤극'이라는 새로운 쟝르를 만들어 낸 것이다.

▲ <꽃은 피어 웃고 있고>의 한 장면
ⓒ 김진환 한국 춤 예술원
춤이 중심을 이룬다고 해서 어렵고 난해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매우 쉬운 춤이다. 여기서 쉽다는 말은, 어렵고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 대중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춤이라는 의미다. 장면 하나와 몸짓 하나 춤사위 하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리 낯설지 않은 우리네 일상에서 종종 보아 왔던 익숙함이다.

마당굿판에서 보여지는 해학과 풍자의 묘미를 특별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느낄 수 있는 것 처럼, 전통 민요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아리랑의 선율에 탈춤, 궁중정재, 사물놀이가 어울려지는 몸짓에는 낯익은 우리의 정서가 오롯이 담겨 있다.

꽃사슴 뛰어 놀 듯 발랄하게 사뿐사뿐 뛰는 동작에서는 어릴적 동심의 세계를 느끼게 되고, 서럽게 곡선을 그려내는 몸과 팔의 움직임에 일본군에게 끌려가던 고운 처녀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솟구쳐 오른다.

임응희 선생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 "춤이라서 한계가 있다"고 했지만 도리어 그것이 춤이었기 때문에 더 깊게 드러내는게 가능했을 만큼 <꽃이 피어 웃고 있고>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 일본군에게 짓밟히는 여인. <꽃은 피어 웃고 있고>의 한 장면
ⓒ 김진환 한국 춤 예술원
안무가 임응희 선생은 어려운 춤을 쉽게 풀어내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무용계는 그녀의 춤을 '직접적이고 단순하다' 평한다지만, 임응희 선생이 생각하는 춤이란 '모호하고 난해한 것이 아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함께 교감하면서 친숙하게 다가서야 할 부분'이다.

'위안부'라는 어려운 주제를 춤이란 도구를 통해 극으로 엮어내는 능력은 그녀가 추려는 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적어도 <꽃은 피어 웃고 있고>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만큼은 춤이라는 존재가 편하고 가깝게 다가설 것이라 생각됐다. 그것은 그녀의 춤이 남겨주는 여운이기도 했다.

춤을 통해 표현하는 슬픈 연가

▲ 총연출 김진환 선생
ⓒ 김진환 한국 춤 예술원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또한 춤꾼들이 자신의 재주를 활용해 알리려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슬픈 연가다.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을 춤을 통해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춤꾼들의 의지가 장면 곳곳에 배어있어 가슴 뭉클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총연출을 맡은 김진환 선생은 국립국악원 무용단 출신으로 무형문화재를 이수중인 실력있는 춤꾼이다. 그는 춤을 통해 동학 농민들의 한과 이육사 선생의 삶을 풀어냈고, 보여주는 춤이 아닌 우리 문화에 대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전통춤을 고민해 왔다.

"예술을 하려면 정치적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기술에 불과하다"

그가 단호하게 표현하는 예술관에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마음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마지막 장면에서 일본군 배역의 연기자를 내세워 전범국가 일본의 잘못을 사죄시킬 예정이다. 이는 뻔뻔하게 잘못을 발뺌하는 일본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인 동시에 극적인 설정을 통해서나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주려는 작은 위로다.

▲ 연습중인 재일교포 3세 김정애씨.
ⓒ 송정희
한편 이번 공연에는 재일교포 3세 무용가인 김정애씨가 특별 출연해 의미를 더한다. 일본 효고 문예동 무용단 기술 책임자(부단장)를 역임한 김정애씨는 일본 오사카 대학 예술계획학과(무대무용연출학과)에 재학중이며 조선춤(북한춤)을 전문으로 한다.

어릴적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통해 조선춤을 익힌 그는 한국으로 유학 온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춤을 익히기 시작했다. 2002년 창작무용 불꽃으로 한국 여성체육학회 콩쿨에서 1등을 수상했고, 2004년 창작춤 앗시리아를 발표했다.

이번 공연 참여 요청에 자비를 들여 참여할 만큼 이 작품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컸다.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을 알아봤었다는 김정애씨. 그녀가 들은 일본인들의 시각은 이런 것이었다.

▲ 춤극 <꽃은 피어 웃고 있고>
ⓒ 김진환 한국 춤 예술원
"그 당시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고 일본만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 또한 일본의 국민이었다. 일본을 위한 전쟁에 군인들을 위해 동원될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8.15 광복절을 한주 앞둔 8일. 비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일본대사관 앞의 수요집회는 어김없이 진행됐다.

꽃같은 젊음을 일본에게 짓밟힌 할머니들의 외침은 이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이어졌지만 일본대사관은 여전히 묵묵무답이었다.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62번째 광복절을 맞는 젊은 세대에게 이같은 현실을 어떤 심정을 갖고 지켜봐야 할지를 제대로 알려줄 듯 싶다.

이번 춤극에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도 초청돼 춤으로 표현된 자신들의 삶을 지켜보게 된다.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8월 13일 오후 8시, 8월 14일 오후 4시, 8시 3회 공연되며, 다음날인 8월 15일, 일본대사관 앞 할머니들의 시위 또한 낮12시에 어김 없이 이어질 예정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만 난다"
[인터뷰]<꽃은 피어 웃고 있고> 안무를 맡은 임응희

▲ 임응희 선생
ⓒ송정희

"연습하면서도 울고. 자료 준비하면서도 울었어요."

임응희 선생에게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그저 눈물 흘린 기억만이 가득할 뿐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읽을 때나 연습할 때나 그의 가슴을 여미게 했고, 그때마다 눈물샘은 넘쳐흘렀다.

무용이나 춤은 전문적인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꽃은 피어 웃고 있고>를 통해 본 임응희 선생의 춤은 간결한 듯 하면서도 뭘 표현하려는지가 대충 이해가 됐다. 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제의식이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연유로 임응희 선생이 이 작품을 만들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기존 문화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이었어요. 특히 일본 문화에 많은 관심을 두려는 행태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역사물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위안부'문제였지요"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는 무용작품 또한 그의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춤이라는 게 어렵고 난해하고 뭐 그런 것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춤이라는 게 관객들과 교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자 생각했던 거고, 역사물을 만들다 보니까 자연스레 관객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더군요."

공연을 하면서 뭘 하는지 모를 만큼 모호한 생각만 들었던 경험은 그에게 단순하고 재밌게 갈 수 있는 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것을 <꽃은 피어 웃고 있고>를 통해 고스란히 담아냈다.

"작품을 만들면서 우리끼리 볼게 아니라면 대중들과 함께 가자고 생각한거지요"

임응희 선생의 춤에 대한 무용계의 반응은 '너무 단순하다. 표현이 너무 직접적이다'라고 한다.

"무용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알듯 모를 듯한 모호한 작품을 만들어요. 대부분이 추상적이지요. 그래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렵고… 저 역시 공연을 하면서도 뭘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녀가 위안부 할머니를 주제로 한 춤극을 만든 이유는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적어지는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의 남편이자 총연출을 맡은 김진환 선생에 따르면 "공연을 준비하며 관련기관과 기업들을 찾아 관심을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외교문제로 인해 어렵다는 답변'과 '위안부를 주제로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회피하려는 자세' 뿐이었다는 것이다.

임응희 선생은 공연을 준비하며 찾아간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이 하신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

"할머니들이 '우린 뉴스만 기다려' 하시더라고요. 미 의회 결의안이 나오기 바로 직전이었거든요. 그러면서 '젊은층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안갖고 모른다는 점에 대해 많이 안타까워' 하시더군요."

춤을 통해 이런 것을 알리려다 보니 오해를 받기도 한다는 임응희 선생은 이번 공연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깊이 있게 인식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만든 것은 결코 우리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에요. 춤을 통해 알리려하니까 우리를 알리려는 줄 알고 오해들을 하시던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저도 전통춤이나 다른 것을 선택하면 편해요. 하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분들의 아픔을 알리고 싶을 뿐이에요. 우리 공연보다는 할머니들의 아픈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공연장소 :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 공연문의 02-522-1793,


태그:#김진환, #임응희, #김정애, #나눔의집, #위안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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