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서 지승호는 인터뷰라는 독톡한 방법으로 영화감독들을 보여줬다. 새로운 바람을 몰고 있는 젊은 영화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지승호의 인터뷰는 여느 인터뷰와 다르게 그들의 생각과 열정, 나아가 그들이 꿈꾸는 영화계의 미래까지 엿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인터뷰 하나에 질문을 140개나 만드는 지승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지승호가 영화와 관련된 또 한편의 인터뷰집, <영화, 감독을 말하다>를 선보였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의 영향 때문인지 제목의 뉘앙스가 낯익다.
 
만난 사람들은 김택용, 박진표, 박찬욱, 이송희일, 임상수, 최동훈 등 6명이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의 후속편 같은 것일까? 제목과 만난 이들만 보고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그 사이 그는 <禁止를 금지하라>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뭘까? 이 책과 <감독, 열정을 말하다>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서 지승호는 '열정'을 이야기했다. 화려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영화감독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 책은 상당히 뜨거웠다. 영화감독을 동경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열정이라는 것을 갖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자극할 정도였다.
 
그런데 <영화, 감독을 말하다>는 뜨겁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따뜻하다'는 인상이다. 왜 그런 것일까? 지승호가 6명의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영화계 전반에 대해 두루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감독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함으로써 영화인들의 비애나 쓰라림, 환희와 기쁨 등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은 없지만, 내실이 한층 더 두터워졌다는 인상을 주는 셈이다.
 
6명 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감독은 역시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의 박찬욱이다. 지승호는 박찬욱을 만나자마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두고 "이번에도 대중과 편단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운을 뗀다. 뻔한 것과는 거리가 먼, 냉철한 질문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어서 지승호는 박찬욱에게 참으로 많은 것들을 묻는다. 흥행이 잘 안 되었는데 상을 받은 것으로 어느 정도 보상 심리가 되지 않았는지를 기점으로 영화 스태프들의 처우, 디지털 영화가 대세가 되는 것에 대한 것, 다른 평론가들의 혹평, 배우 선택의 기준 등 폭넓은 주제에 관해 묻고 있다.
 
이에 대해 박찬욱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지승호의 질문만큼이나 뻔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인데, 그 모습이 꽤나 진솔하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은 물론 "어떤 종류의 비판을 들어도 '뭔 소리야?'하면서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것처럼, 어떤 종류의 칭찬 역시 그런 면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농담 같은 말을 던지는 것 등은 기존 언론에서 봐왔던 박찬욱이라는 영화감독의 이미지를 새로이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영화계에 대한 것을 두루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박찬욱과의 인터뷰는 단지 그를 새로이 보게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영화인들에 대한 생각은 물론 영화인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영화계에서 직업을 갖고 살아간다는 어떤 것인지를 특정인의 시선을 벗어나 바라보게 해주고 있다. 읽고 있으면 '개인'과의 인터뷰가 아니라 어느 영역과의 인터뷰를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다른 인터뷰도 이와 비슷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이송희일과의 인터뷰에서 잘 나타난다. 영화감독들의 로망과도 같은, 소위 예술 독립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과 현실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는 상업영화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인터뷰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또한 특정인의 고민이라기보다는 영화감독, 나아가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여러 번 고민하게 되는 그것을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11번째 책인 만큼 좀 더 능숙해진 것인가? <영화, 감독을 말하다>는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 비하면 뜨거움은 없지만 폭넓은 시선으로 영화와 영화인들을 바라보게 해준다. 책 한 권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지승호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승호가 11번째로 선택한 '영화 그리고 영화인'에 관한 이야기 <영화, 감독을 말하다>, 영화라는 단어를 가슴으로 좋아한다면, 만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영화, 감독을 말하다

지승호 지음, 수다(2007)


태그:#지승호, #인터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