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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업체는 얼룩제거제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 O사의 신제품 광고 해당업체는 얼룩제거제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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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기 힘든 얼룩, OOOO을 녹여서 부으면 깨끗이 사라집니다."

흰 셔츠 위에 포도 한 송이를 으깨고 그 위에 잉크와 커피를 붓는다. 놀라는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며 보란 듯 셔츠를 세제가 풀린 물통 속에 넣으니 버려야 할 것만 같았던 얼룩진 셔츠가 마술처럼 하얗게 변해서 나온다.

눈을 의심할 만큼 신기한 일이 화면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유명 세제회사인 O사의 얼룩제거제 광고다.

커피 얼룩, 김치 얼룩, 심지어는 빼기 어렵다는 포도주스 얼룩까지 말끔하게 빼준다는 광고를 보고 구매충동이 일어나지 않는 주부가 있을까?

빼기 힘든 얼룩도 확실하게 빼준다고?

흰옷은 흰옷대로, 색깔 옷은 색깔 옷대로, 손으로 빨아도, 세탁기에 돌려도 얼룩만큼은 확실히 제거해 준다는 광고에 넘어가 충동적으로 얼룩제거제를 구입했다.

지난 8월 31일 남편 점퍼를 빨다가 볼펜 잉크가 흘러 흉한 얼룩을 남겼다. 주머니 속을 확인해 보지 않은 내 불찰이지만 사실은 점퍼에 흐른 잉크를 보고 너무 좋아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동안 충동구매라고 매일 구박만 받았던 바로 그 얼룩제거제를 사용해볼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진한 얼룩이다
▲ 잉크 얼룩이 묻은 남편 점퍼 진한 얼룩이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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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보라니까. 지난번에 내가 산 그 얼룩제거제. 그거 한방이면 완전 사라 질 테니… 이거 살 때 충동구매라고 구박했지? 거봐 이렇게 쓸 기회가 생기잖아."

"벌써 얼룩 다 뺀 것 같네. 빼놓고 이야기 하시지. 그거 못 빼면 당신이 새 점퍼 사줘야 해. 그리고 세탁할 때 주머니 좀 열어보고 하면 그런 일 없잖아." 

남편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의기양양 욕실로 들어선 나. TV광고처럼 물에 세제를 풀고 얼룩진 옷을 담갔다. 이제 몇 분 뒤면 얼룩은 깨끗이 빠져있을 것이고 보란 듯이 남편의 눈앞에 깨끗해진 점퍼를 내놓으면 되는 것이다.

세제를 푼 물에 점퍼를 담근 지 10분. 설명대로라면 얼룩이 충분히 빠졌을 시간이다. 하지만 세제 속에서 건져낸 점퍼 얼룩은 전혀 변화가 없다.

'뭐야? 이거 왜 이러지? 전혀 변화가 없잖아.'

10분 담그고 비비고 문질러도 얼룩은 그대로

그랬다. 얼룩제거제를 푼 물에 10분을 담그고 손으로 비비고 그것도 모자라 솔로 문지르기까지 했지만 얼룩은 그대로였다. 아니 그대로가 아니고 오히려 옆으로 슬그머니 번지기까지 했으니 이 일을 어찌 할꼬.

다급한 심정으로 다시 한번 깨알같이 적힌 사용법을 읽어 보았다. 진한 얼룩일 경우 세제를 푼 물에 담그는 것보다는 세제를 크림처럼 녹인 후 얼룩 부분에 바르고 얼마간 기다렸다가 세탁하면 깨끗이 지워진단다. 세제를 또 한 스푼 녹인 후 얼룩 부분에 바르고 기다렸다.
제품을 사용했지만 얼룩은 사라지지 않고 번지기만 했다
▲ 사라지지 않은 얼룩 제품을 사용했지만 얼룩은 사라지지 않고 번지기만 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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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0분이 흘렀다. 이제는 두려움이 앞선다. 이렇게 해도 빠지지 않으면 남편에게 큰소리 빵빵 친 나는 뭐가 되며, 점퍼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무장갑을 낀 손에 힘을 주고 비벼보았다. 여전히 진한 얼룩이다. 다시 솔로 문질러 보았다. 어지간한 섬유 같았으면 비비고 문지르는 동안에 구멍이 났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구멍은 나지 않았지만 얼룩도 여전히 그대로다.

'뭐야. 이거. 완전 사기잖아. 광고에서는 손으로 비벼 빨지 않아도 얼룩이 쏙쏙 잘도 빠지던데 이 얼룩은 왜 안 빠지는 거야? 우와 정말 미치겠네….'

더는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 얼룩을 붙잡고 씨름하기를 2시간여. 얼룩 빼기는 포기하고 도대체 이 제품이 정말 얼룩을 빼기나 하는 것인지 알고 싶어 해당제품 회사의 홈페이지를 찾았다.

수없이 올려진 불만의 글들. 나와 같은 제품을 사용하고 얼룩이 제거되기는커녕 섬유 자체의 염색이 바랬다거나 얼룩이 번져 옷을 버리게 되었다는 항의 글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는 옷에 구멍이 나버렸다는 항의까지 있다.

세탁물 취급표시 확인 안한 소비자 탓?

해당 제품 회사의 고객서비스팀으로 전화를 걸었다. 피해 보상은 둘째 치고라도 이 같은 황당한 현상에 대한 해명을 듣고 싶었다.

"해당 제품은 '모든' 얼룩을 빼주는 것이 맞습니다. 먹물과 오래된 핏물 얼룩을 제외하곤 모두 제거할 수 있구요. 다만 손세탁을 할 수 없는 섬유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얼룩진 옷의 세탁물 취급표시를 보셨나요? 드라이클리닝해야 할 의류를 손세탁해서 생긴 문제라면 저희도 어쩔 수 없구요…."

얼룩진 옷은 손세탁 가능한 옷이라고 했더니 또 다른 항목에 대해 묻는다. 혹시 표백제 사용금지 표시는 없느냐는 것이다. 기호에는 분명 '염소 표백'을 금지한다는 그림이 들어있다.

"소비자에게 전혀 과실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저희가 보상을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색깔 옷이었다면 혹시 '표백제를 사용하지 말라'는 항목이 있지 않으신가요?"

드라이클리닝 표시가 없다고 했더니 글씨로 된 주의사항 중 표백제 사용에 대한 항목을 들고 나온다. 그림에는 '염소 표백 금지'로 표기되어 있지만 주의사항 항목에 '표백제 사용을 금하라'는 항목이 있기 때문에, 이런 주의사항을 제대로 읽지 않고 산소계 표백제를 사용한 것은 소비자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다. 취급주의 사항에 나온 '표백제'란 그림의 해석인 '염소계 표백제'가 아니고 염소계와 산소계 표백제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표백제 사용가능 여부를 표시하고 있다
▲ 의류취급규정에 따른 표기 표백제 사용가능 여부를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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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런 것인지 '섬유제품의 취급에 관한 표시 규정'을 찾아보았다.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규정에는 산소계 표백과 염소계 표백을 분명하게 구분해 세탁가능 여부를 규정하고 있다. 염소계와 산소계 표백이 모두 불가능하다는 표기도 당연히 있었다. 해당 회사 직원의 설명을 그럴싸하게 들은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애초에 옷에 얼룩을 만든 것은 물론 내 실수였다. 그러나 얼룩을 뺄 수 있다는 얼룩제거제(표백제)광고와 제품설명을 믿고 사용한 후 사라지 않은 얼룩과 번짐은 누구의 책임일까?

광고할 땐 '모든 빨래...' 소비자 불만엔 '일부 의류만...'

더구나 해당 제품의 소비자상담실에서는 제품의 기능 여부를 떠나 해당 제품이 표백제이므로 표백제 사용이 금지된 색깔 옷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용기에 써 있는 '얼룩제거제'라는 표기는 그럼 뭐란 말인가? 

"흰옷은 더욱 희게 색깔 옷은 선명하게…"라는 해당회사 제품 광고를 오늘 아침에도 보았는데 "모든 빨래엔…"이라더니 소비자 불만을 이야기하니 이제 와서는 색깔 옷도 색깔 옷 나름이란다.

소비자도 똑똑해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의류제품 취급표시에 대한 공부를 하고 다시 한번 해당사 고객상담실에 전화해서 조목 조목 따져보았다. 담당직원은 자신의 상담 실수를 인정했다. 제품을 사용해도 빠지지 않거나 오히려 번져버린 얼룩에 대한 불만을, 제품 사용 후 의류가 탈색됐다는 것으로 오해해 바른 응대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 빠지는 일이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상담직원에게 제품 사용 후 얼룩의 번짐 때문에 입지 못하게 된 의류에 대한 보상이 가능한지 물었다.

해당 의류제품의 의류취급표시와 얼룩제거제에 표시된 주의사항을 지켰음에도 얼룩이 제거되지 않았거나 번졌거나 섬유에 손상이 온 경우라면 해당 의류를 수거해 연구소에서 똑같은 오염 절차를 거쳐 검사한 후 얼룩제거제가 원인임이 밝혀지면 절차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해당업체로서야 마구잡이로 보상해 줄 수 없으니 당연한 절차라고 하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복잡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의류용 표백제 및 얼룩제거제 시장은 전체 세탁세제 시장규모 3300억원 중 21%에 해당하는 700억원 가량이라고 한다. 세탁 시 80% 이상이 세탁세제 외 표백제를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다목적기능을 가진 고가의 세탁세제 개발과 그 광고 효과로 가구당 세제구매 비용 역시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O사는 표백제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선발업체로 해당제품명은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주부들의 요구에 맞춘 제품이며 주부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제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을 받은 만큼 주부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제품의 특성과 장점만을 부각해 광고할 뿐 세탁시 주의가 필요한 역정보를 주는 데는 인색했던 것이다.

깨알 같은 글씨에 표현마저 모호하다
▲ 사용시 주의사항 깨알 같은 글씨에 표현마저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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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뒷면에 붙어 있는 깨알 같은 글씨의 주의사항은 더욱 기가 막히다.

*산소계표백제 사용가능한 의류에만 사용하세요(그렇다면 '모든 빨래에…'라는 광고는 뭐란 말인가?)

*탈색 가능한 의류 세탁시 희석 액을 발라 탈색 여부를 확인한 후 사용하세요.(탈색 가능한 의류는 무엇이며 희석액을 어떻게 만들어 얼마나 발라두어야 한다는 것인지? 이게 과연 편리하다는 그 세제가 맞는 것인지?)

마지막 문구는 더욱 기가 막힌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을 수 있습니다(다 지워진다면서?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리?)

작고 작은 글씨로 쓴 주의사항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걸면 귀걸이로 표현 자체가 애매해 소비자를 위한 문구라기보다는 소비자 피해 시 해당사가 걸고 넘어가기 쉬운 핑계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10년 넘게 주부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온 회사가 주부들을 위해 준비한 내용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부실한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과장 광고' '책임회피성 주의사항' 고쳐야

대부분 주부들은 해당 제품을 표백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표백제란 흰옷을 더욱 희게 만들어 주는 제품으로 락스와 같은 염소계 표백제로 알고 있으며 해당 제품의 경우에는 세제와 함께 사용해 세탁력을 높여주는 기능성 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제품 광고를 십여년 동안 지켜봐온 소비자들은 당연히 "흰 옷은 더욱 희게 색깔 옷은 선명하게", "모든 빨래엔~"이라는 광고 카피를 노래처럼 외우고 있다. 흰옷이든 색깔 옷이든 '모든 빨래'를 더욱 깨끗이 세탁해 준다는 광고를 믿고 사용을 했는데 문제가 생기니 이제 와서 제품사용상 주의사항을 언급하며 '모든 빨래'에 사용 가능한 제품은 아니라고 한다.    

광고만 믿고 제품을 구매하거나 사용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얻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불만으로 그친다면 나와 같은 또 다른 수많은 피해자가 나오게 될 것. 해당사 소비자상담실과 브랜드 매니저에게 부풀려진 과장 광고와 용기에 표기된 애매한 주의 사항문구 등에 불만을 제기했다.

광고만 믿고 해당 제품을 무분별하게 구매,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제품의 기능을 명확히 하고 사용 불가능한 의류가 있다는 것에 대한 고지를 하도록 당부했다. 용기 뒷부분에 깨알 같은 글씨를 보기 쉽게 키워달라는 것과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성된 주의사항 역시 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9월 4일 오전, 이에 대한 해당사 브랜드 매니저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소비자의 불만에 적극 귀 기울이며 문제점을 지적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지적하신 주의사항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연구소와 협의해 소비자의 입장에서 유리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변경하겠습니다. 연구하고 시행하는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광고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광고 특성상 제품의 특장점을 살려 제작하는 것이므로 특별히 수정하기는 어렵지만 광고 내에도 소비자들이 필여한 정보를 넣도록 의논하겠습니다."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소비자를 우선하는 광고나 주의사항 표기에 나선다면 후발사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십수 년 주부들의 독점적인 사랑을 받아 온 해당업체가 소비자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지켜 볼 일만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태그:#얼룩제거제, #산소계표백제, #산소계표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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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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