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영외고는 지난해 문항수가 다른 두 종류의 시험지로 중간고사를 치러 올 8월 서울시교육청의 특별장학지도를 받았다.
 한영외고는 지난해 문항수가 다른 두 종류의 시험지로 중간고사를 치러 올 8월 서울시교육청의 특별장학지도를 받았다.
ⓒ 한영외고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가 특정학생들의 내신성적을 높이기 위해 중간고사 성적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 한영외국어고등학교(한영외고)가 2006년 12월 치러진 2학기 중간고사에서 1학년 영어과와 중국어과의 '중국어회화' 시험 문항수를 달리 하는 편법을 이용해 특정학생의 내신성적을 부풀렸다는 것.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러한 의혹이 제기돼 서울시교육청에서 지난 8월 한영외고를 대상으로 '특별 장학지도'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러한 성적 부풀리기에 학교측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한영외고측은 "중국 원어민 강사가 수준별로 평가하려다 생긴 실수"라며 관련의혹을 부인했다.

한영외고는 지난해에도 유학반을 위한 성적 부풀리기 등이 드러나 교장이 사퇴한 바 있다.

문항수 다른 두 종류의 시험지... 학부모 "의도적 성적조작" 주장

한영외고는 지난해 2학기에 영어과와 중국어과 1학년 학생 총 140명을 대상으로 중국어회화 필기시험(중간고사)을 치렀다. 그런데 똑같은 중국어 선생 밑에서 수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어과는 20문항, 중국어과는 25문항으로 구성된 시험을 치러야 했다.

이는 같은 학년이고 같은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라면 '동일한 시험'(같은 문항과 배점)을 치러야 한다는 교육정책에 어긋난 행위다. 이를 두고 "의도적 성적조작"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영어과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미국 대학 입학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유학반을 위한 성적 부풀리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영외고의 한 학부모는 <오마이뉴스>에 보낸 편지를 통해 "문항수와 배점이 다른 시험문제를 가지고 내신성적을 산출하는 것은 의도적 성적조작"이라며 "2007년 시험부터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전에) 이러한 성적조작이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어과는 1학년부터 전공과목을 주당 6-7시간 배워 실력이 상당히 좋고 영어과는 기초부터 배우는 단계라고 볼 때 상식적으로 중국어반은 점수가 상위에 있을 수밖에 없고 영어반은 중국어반에 뒤질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문항수와 난이도, 배점을 달리 한 것은  중국어반의 점수를 깎아내리고 영어반은 올려준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학부모는 "이러한 사실을 한 한기가 끝난 지금까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밝히지 않고 덮으려고 한 것은 정말 파렴치한 행동"이라며 "학교의 지시가 없이 동일한 선생님이 네 반을 가르치고도 시험을 다르게 출제해 성적을 처리할 수는 없다"고 '학교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다른 학교의 성적조작은 일부 개인에게 돈을 받고 조작해 피해의 범위가 작은 반면 한영외고는 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피해학생이 많다"며 "교육청에서 적당히 덮고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면 제2, 제3의 성적조작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서울의 한 교사도 "현 교육정책상 같은 학년, 같은 교육과정의 경우 문항과 배점을 달리해 평가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사는 "한영외고의 경우 수준별 차이가 있으니까 그렇게 평가를 달리 한 것 같다"며 "우리나라처럼 수준별 수업을 하라고 해놓고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 교육정책상 동일한 교육과정을 밟은 학생들은 동일한 시험을 통해 내신성적을 평가받아야 한다.
▲ 문항수가 다른 두 종류의 시험지. 현 교육정책상 동일한 교육과정을 밟은 학생들은 동일한 시험을 통해 내신성적을 평가받아야 한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학교측 "규정을 위반" 인정... 교육청 "학교 관리책임 있어 경고 처분"

장정현 한영외고 교무부장은 4일 "원어민 교사가 수준차이와 변별력을 생각해 (중국어과는) 추가문제를 더 냈다"며 "이와 관련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원어민 교사 관리를 잘하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오마이뉴스>의 취재내용을 대체로 인정했다.

그는 "원어민 교사가 잘 해보려고 한 것이지만 이것은 규정을 위반한 행위"라며 "일반상식에 비추어 봤을 때도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학교에서 이를 점검할 상황이 아니어서 나중에야 확인됐다"며 학교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8월 한영외고의 성적산출에 문제가 있어 특별장학지도를 실시해 경고조치를 내린 바 있다"고 밝혔다. 

이경희 장학사는 5일 "(지난해) 한영외고가 중국어관련 시험을 치르는데 원어민 교사가 성적 산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중으로 문제를 출제한 사례가 있어 특별장학지도를 실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똑같은 문항을 출제해 성적을 산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어민 교사가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문항수를 달리 해 중국어과가 불이익을 보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영어과의 (내신)성적을 부풀리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성적 부풀리기 의혹'은 일축했다.

다만 이 장학사는 "강사의 채용이 당해(2006년)에 이루어졌다고 해도 강사를 채용한 후 학교측의 사전연수나 동료교사간 의사소통이 불충분했다"며 "학교에 분명한 관리책임이 있어 경고조치를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수준별 수업에 따른 수준별 평가가 이루어지는 게 타당하다는 점에서 현재의 평가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교육부 차원에서도 이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70점'이 미국에선 'A'로 통한다?

한영외고는 지난해 유학반 학생들의 성적을 부풀린 '인플레이션 성적표'로 곤욕을 치렀다. 외국어고에서 벌어지는 공공연한 비밀인 '내신성적 부풀리기' 관행은 당시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심층취재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한영외고의 한 학생이 어떤 과목에서 70점을 받았다고 치자. 국내에서 그의 성적은 '미(Mi)'로 평가받지만, 미국 대학에 보내는 유학반 학생들의 영문성적표에는 'A'로 표기된다. 이런 식으로 내신성적이 부풀려진다는 것이다.

당시 장두수 한영외고 교장은 "그동안 70점 이상에게 A를 주는 것은 관례였다"며 "학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관례대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교육부의 지침을 정면으로 어긴 행위다. 학교는 영문성적표를 자의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 즉 영문성적표는 교육부가 마련한 시안에 따라야 하고, 한국 성적표 표기방식과 똑같이 번역해 작성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사실이 드러난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한영외고에 대해 특별 장학지도를 벌였고,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지역 외국어고 유학반을 대상으로 '특별 불시점검'을 실시했다.



태그:#한영외고, #성적 부풀리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