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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장면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장면
ⓒ 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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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나는 다른 지하철에 비해 지하철 1호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낡고 덜컹대는 전동차의 외관이 볼품없고 다른 선에 비해 유난히 배차 시간이 긴 것도 이용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철 1호선은 다른 지하철보다 느린 것 같았다.

지하철 1호선에 대한 탐탁지 않은 마음을 돌이켜준 작품이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김민기 번안ㆍ연출, 학전 기획ㆍ제작의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독일 그립스 극단의 를 한국적 상황에 맞추어 번안한 작품으로 1994년 5월 초연 이후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장기공연을 해왔다.

연변 처녀 '선녀'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지하철 1호선>은 실직가장, 가출소녀, 자해 공갈범, 잡상인, 사이비 전도사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풍자와 해학으로 담았다.

5인조 록밴드 '무임승차'의 강렬한 라이브 연주를 바탕으로,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앙상블, 전편에 흐르는 따뜻한 시선과 넘치는 에너지로 오랫동안 젊은 층은 물론 중ㆍ장년 층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로 12주년인 <지하철 1호선>은 2002년 3월부터 상시공연 체제에 돌입하여 2007년 8월 9일 3500회를 맞았다. 공연횟수뿐 아니라 관객수 60여만명, 출연자 200명 남짓(2006년 6월 기준)이라는 수치상의 기록과 한국 문화계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을 배출하는 역할 또한 충실히 해냈다.

백두산에서 풋사랑을 나눈 한국남자 '제비'를 찾아 중국에서 서울로 온 '선녀'는 그가 적어준 주소와 사진만으로 '제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막상 지하철 1호선에서 만난 사람들의 냉담한 표정에서 그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확인한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생기는 갖가지 에피소드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선녀'의 고운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은 연극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 고민해 보게 한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인데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저마다의 양심이 꿈틀대는 것이다.

록밴드의 라이브 연주는 공연장에 함께 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만큼 강한 비트를 선사한다. 이제껏 정통 뮤지컬만을 고집해온 관객이라면 <지하철 1호선>을 통해 눈이 휘둥그래질지도 모른다.

<지하철 1호선>은 기존에 있던 작품을 우리 상황에 맞게 번안했기에 스토리라인이 탄탄하며 구성상의 완급도 잘 갖추어졌다. 억지스러운 웃음을 유발한다거나 신파조로 억지 감동을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는 사람들의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의 상황을 보고도 모른 척 하며 살아왔던 지난날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지하철 1호선을 탈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 든다.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주머니, 지하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저씨, 역사 직원들과 승강이를 하는 노점상 아저씨 등 모두가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외관이나 깜빡거리는 형광등도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세상 속에서 느린 속도를 자랑할 수 있는 것도 느리지만 언제나 한결같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하철 1호선에 담긴 사람들의 애환에 귀 기울인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 주변에 살거나 지하철 1호선을 한번이라도 이용해본 모든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갓피아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하철 1호선, #록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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