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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사무실을 나서는 나를 불러 급하게 불러 세운 이는 볼살에 붉은 기운이 감돌아 앳돼 보이는 몽골 청년 간볼드였다. 컴퓨터실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던 간볼드는 계단을 막 내려가려던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 뜬금없이 불러놓고는 팔꿈치를 높이 들며 오른손을 머리 뒤로 올렸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가리키며 싱긋 웃는 것이었다.

 

나 역시 싱긋 하고 답해 주었다. 간볼드가 자신의 오른손을 가리킨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팔이 머리 뒤로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나았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간볼드가 우리 쉼터에 처음 왔을 때, 그의 오른 팔뚝에는 파란색의 압박 붕대가 감겨 있었고, 손목 바로 위와 무릎 아래 정강이에 화상 흔적들이 자잘하게 나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간볼드를 쉼터에 데려 온 사람은 한국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외국인이 길거리에 노숙하는 것 같아 데리고 왔다’며 굳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어찌됐든 쉼터에 온 간볼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몽골에서 해외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던 (사)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 후배들의 통역을 통해서였다. 처음 몽골 통역 자원 활동을 하는 후배에게 전화했을 때, 후배는 로밍을 해 놓고 몽골에 있었다. 그럼에도 후배는 친절하게 통역해줬고, 이야기가 길어지자 한국에 있는 또 다른 통역의 연락처를 알려 주어 간볼드의 문제가 뭔지 알 수 있었다.

 

간볼드는 지난 5월에 외국인고용허가제로 입국하였는데, 팔을 다친 후 일하던 회사를 나와 근무처 변경을 하는 도중에 갈 곳이 없어 닷새째 노숙을 하였다고 했다. 자잘한 화상은 회사에 있을 때 뜨거운 물에 덴 흔적이었고, 팔뚝은 넘어지는 가구에 눌린 이후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근무처 변경 과정에 말이 통하지 않아 구직신청 기간도 지나쳐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상담을 끝낸 후, 간볼드를 데리고 쉼터 가까운 병원에 데리고 갔다. 담당의사는 엑스레이 판독 결과 다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고, 팔뚝에 생긴 염증으로 봐선 2-3주 이상 주사와 물리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간볼드가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목디스크로 수술을 받으라는 권유를 받으면서도 치료를 미루던 나 역시 시간을 내어 물리치료를 받았다.

 

물리치료를 받느라, 병상에 누웠던 나는 일이십 분 정도 지나면서 목과 등 뒤로 전해지는 핫팩의 열기를 피하느라 등짝을 들었다 놨다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물리치료사가 나를 봤는지 수건을 한 장 더해 주더니, 이어 전기 찜질로 넘어갔다.

 

‘드르륵, 드르륵’하는 전기 진동이 등을 밀어내며 온 몸에 땀이 배기 시작하자, 나는 ‘언제 물리치료가 끝나나?’ 하며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은 시간 옆 침상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코 고는 소리는 전기 찜질 소리와 병행해서 ‘드르렁 드르렁’거렸다. 간볼드였다. 코 고는 소리와 전기 찜질 소리가 어찌나 장단이 잘 맞는지, ‘드르륵, 드르렁, 드르륵, 드르렁’ 하는 박자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닷새를 노숙했던 탓이려니 하면 그의 코 고는 소리가 쉽게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건강하니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숙면을 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치료를 위해 같은 시각, 같은 병원, 바로 옆 병상에 누워 있던 입장에서는 간볼드의 코 고는 소리가 부러웠다.

 

물리치료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왼쪽 머리로부터 어깨를 지나 허리까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고, 오른팔은 머리 위로 올리는 데 불편함을 겪었던 나는 그래도 그 와중에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신기해 하며, “곧 죽을 정도는 아닌가 봐”하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다.

 

다행히 쉼터에서 생활하는 동안 간볼드는 근무처를 변경하는 과정에 병원 치료를 받았던 사실이 인정되어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한 달간의 구직신청 기간이 연장될 수 있는 사유에 해당되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구직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간볼드는 요즘 싱글 싱글이다. 2주 전만 해도 물리치료를 끝내고 병원을 나설 때, 팔을 돌리며 차도가 있는지 살피던 간볼드가 이젠 자신의 팔이 완치되었다고 팔을 머리 뒤로 돌리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다.

 

남의 나라에 와서 본의 아니게 노숙자 생활도 경험하고,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위기도 겪고, 팔까지 다쳤던 간볼드는 그간의 마음 근심은 다 털어낸 듯 했다.

 

2년만 일하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몽골 청년 간볼드, 병상 동지의 꿈이 이뤄지길 소망해 본다.


태그:#몽골이주노동자, #물리치료, #쉼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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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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