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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향하는 걸음이 바쁘다. 선물 보따리를 든 손들은 기쁨으로 차 있다. TV에서는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의 상황을 전하는 기자의 멘트가 숨가쁘다. 막혀도 가야할 길인 고향.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울컥 목이 메이는 이들에겐 추석만큼 기다려지는 날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고향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넉넉하지도 풍요롭지도 않다. 추석이 이르게 온 탓도 있지만 고향 들녘은 아직 성장 중이거나 슬픔에 빠져있다.

 

여름 막바지부터 연일 이어진 비는 알곡을 쭉정이로 만들었고, 붉게 익어가던 고추는 비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떨구었다. 계속된 비는 병을 불렀으며 농약을 아무리 쳐 보아도 죽어가는 고추대를 살려내지 못했다.

 

농부의 집 마당엔 술병만 쌓여가고

 

통탄의 시간. 농부들의 가슴은 비에 젖은 땅보다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요즘들어 배추는 값이 괜찮다. 모처럼 배추 값이 있다고 하지만 팔아야 할 배추는 흉하게 썩어 들어갔다.

 

올 여름 기상청의 기상 예보는 왜 그리 틀리기만 한지, 농부들의 섧은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큰 비 온다는 소식에 배추 출하를 미룬 젊은 농부는 '비 온다는데 에라이, 술이나 먹자'라며 술잔을 비워냈다.

 

다음 날 아침.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어김없이 빗나갔고, 젊은 농부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허, 기상청이 이래도 되나? 우릴 죽이려고 작심했나."

 

젊은 농부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또 깡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날 출하 못한 배추는 다음 날 또 내리는 비로 인해 절반은 버려야만 했다. 젊은 농부는 그렇게 그렇게 시름시름 앓지만 내리는 비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 지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올해처럼 힘든 적이 없다는 젊은 농부. 괜히 돌아왔다는 생각만 자꾸 드는 건 젊은 농부 뿐만은 아니었다. 한미FTA라는 것까지 농부의 목을 조이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삶이 막막했다.

 

 

밭에 나가보지만 한숨만 나오고

 

정부에서 심어 보라는 거 다 해보았지만 수확 때가 되면 가격은 언제나 바닥을 쳤다.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살았지만 빚만 더 늘어났다. 농사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도 아닌데 정부는 무지개빛 그림만 그려놓고 늘 오리발을 내 밀었다.

 

콩 심으라면 콩 심었소

고추 심으라면 고추 심잖았소

마늘이 괜찮다면 마늘도 심고

당근이 더 좋다면 당근을 심은 죄 밖에 없소

콩 심으면 콩값 떨어지고

고추 심으면 고추값 떨어졌소

이제 콩 심으시라면 마늘 심어야 옳겠소

말없이 밭고랑에 들러붙어 있는 우리를

아예 흑싸리 껍데기로 보시는지요

 

-박세현 시 '흑싸리 껍데기' 전문

 

빌어 먹어도 도시에서 빌어 먹다 사라지는 것인데, 하며 뒤늦은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야반도주를 한다 해도 농협 빚은 도시의 지하방까지 쫓아 올 테고, 결국 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소식은 그저 풍문처럼 귓전으로 스며들지만 농촌의 들녘은 아직 추석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처에 나간 아이들이 오늘 가겠다고 전화를 해 주어도 반갑기는커녕 눈물만 나는 이 땅의 늙은 농부.

 

늙은 농부는 자식들을 위해 뭔가를 챙겨보려 밭에 나가보지만 망연자실하여 빈 가슴만 턱턱, 쳤다. 하는 수 없이 고추 밭에 가 당장 먹을 것들을 추려보지만 그 마저도 시원치 않다.

 

늙은 농부의 아내는 평생 농사지었지만 올해처럼 비 많이 온 건 처음이라며 하늘을 원망했다. 잠시 후 아내는 아픈 허리를 간신히 펴며 떡쌀을 준비했다. 그건 뭐할 거냐고 물으니 손주가 온다니 그래도 송편은 빚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솔잎은 마련하셨냐 또 물으니 솔잎혹파리 때문에 솔잎 구경한 지 몇 해 된단다. 솔잎 없는 송편도 송편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올 추석. 그래도 가을이라고 구절초는 철없이 꽃을 피우고 바람도 없는데 알밤이 툭툭, 떨어졌다.

 

 

차라리 비라도 내려 보름달이 뜨지 않았으면...

 

작년만 해도 고추가루며 산더덕이며 송이까지 아이들 손에 들려 보냈지만 올해는 보낼 것이 없어 괜히 옆 집만 기웃거리는 이 땅의 늙은 농부. 옆 집이라고 한숨 잘 날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올해 추석은 이래저래 한숨만 는다.

 

늙은 농부의 아내는 지나가는 차 소리에도 혹여나 아이들이 왔나 싶어 마당으로 나가보지만 차는 이미 저 만치 사라져 버린 뒤다. 고향길 나선 아이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전화를 걸어보지만 길이 막힌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그려, 천천히 와. 아무리 밀려도 오늘 중으로는 도착하지 않겠냐."

 

늙은 농부의 아내는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옷 소매로 쓰윽, 닦고는 먹다 남은 고등어 뼈를 누렁이에게 던져 주었다. 밭에 나갔던 늙은 농부는 고추 대신 늙은 호박 몇 개를 포대에 넣어 돌아왔다.

 

늙은 농부의 아내는 호박이라도 쩌 먹을 요량으로 배를 갈라보지만 속은 고자리가 먹었다. 이래저래 심사는 뒤틀리고 늙은 농부의 아내는 남편에게 "뭐 이런 걸 따왔냐"고 괜한 투정을 부렸다.

 

늙은 농부는 대꾸 대신 담배만 뻑뻑 빨았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이라지만 올 추석은 연기만도 못하게 생겼으니 차라리 비라도 내려 보름달이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한숨 섞인 농촌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TV에선 벌써 떡 잔치가 벌어졌다. 풍요로운 추석이라며 유행가를 뽑는 가수도 있다. 고향 잘 다녀오라는 사회자의 멘트에서 고향에 살고 있는 이들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다.

 

한없이 내어주고 빈 젖만 남은 어머니의 고단한 삶은 누가 알아줄까. 고향 찾은 자식들이 빈 젖을 한 어머니의 속을 알기나 할까. 챙겨 줄 것 없어 마음 졸이는 그 마음 알기나 할까.

 

 


태그:#추석, #한미FTA,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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