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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혹은 '단독보도' 따위의 욕심은 분명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나의 춘천행은 진실로 그의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기자 일을 하며 밥을 벌어먹은 지 9년째. 인터뷰 혹은, 취재를 이유로 만난 예술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일'로 맺어진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가 내밀한 '인간적 교류'로 이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가수 전인권(53)은 특별했다.

 

각각 다른 이유로 그와 가졌던 4~5번의 인터뷰. 짧게는 몇 십분, 길게는 대여섯 시간의 만남이 네다섯 차례 반복된 후 그는 호칭을 '선생'에서 '형님'으로 바꾸라고 권할 만큼 격의 없었고, 가끔 뜬금없는 전화로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지나온 청춘의 한 시절, 그는 '도어스'의 짐 모리슨과 '비틀스'의 존 레논을 넘어서는 나의 우상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참 어린 내게 보여준 '우정' 비슷한 태도가 고마웠다.

 

허니,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1일, 청량리 발 남춘천 행 무궁화호를 타고 '마약 투약 혐의'로 춘천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전인권을 만나러 간 것은 그가 내게 보내준 우정에 대한 나름의 답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초췌한 모습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짙은 푸른색에 검은 줄무늬가 세로로 쳐진 수의(囚衣)를 입은 전인권이 웃는 얼굴로 춘천교도소 수감자 면회실에 들어섰다. 유리벽이 가로막힌 '저 편'에 앉은 그가 '이 편'의 내게 교도소 안에서 만들었다는 노랫말을 들려준다.

 

사랑하며 살자/사랑하며 살자/사랑하며 살자
용서해주마/용서해주마/용서해주마
돌아 오라 철없는 아내여/아직 나는 네가 인간임을 믿는다…

 

건강을 걱정하는 내게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긴 하는데 아무 문제없어. 여기서 나가면 정말이지 제대로 된 음악 한번 해야지"라며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을 보여준 전인권. "아이들 걱정에 잠이 안 온다"는 말을 전할 때를 제외하곤 표정이 밝았다.

 

세상 눈치 보지 않고, 갈기 휘날리는 사자처럼 거침없이 살아온 그의 낙천성은 감옥 안에서도 변하지 않은 듯했다. 최근엔 마광수 교수의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이런 말도 했다.

 

"그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죽이고싶은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던데, 나는 안 그래. 나이가 드니까 살리고싶은 사람이 많아지더라고. 여기 갇혀 있는 노인들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해.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감동인데…, 어때? 마광수보단 내 말이 맞지 않아?"

 

허락된 면회시간 10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빨랐다. 돌아서는 내게 무대 위에서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손을 흔들어주던 전인권. 순간, 내가 위로를 해주러간 것인지, 위로 받으러 간 것인지가 헛갈렸다. 그는 의연했고, 또한 전혀 기죽어 있지 않았다.

 

'감동' 가득한 세상을 꿈꾸었던 '프로 소리꾼'

 

그를 찾아가던 날 아침. 하늘은 물에 적신 담요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한바탕 비라도 흩뿌릴 것 같은 흐린 날씨. 물기 머금은 대기를 뚫고 기차가 청량리역 플랫폼을 빠져나갈 무렵 나는 전인권과 관련된 추억 몇 가지를 자연스레 떠올리고 있었다.

 

하나. 

2002년 겨울이었던가. 새벽 6시쯤 전인권이 전화를 걸어왔다. 며칠 전 콘서트에서 들어본 자기의 새로운 노래들이 어땠냐고 묻는 목소리엔 예술가로서의 오만이 묻어 있었다. 내다본 창 밖이 아직 깜깜했다. 그 시간에 사람을 깨워 신곡의 느낌을 질문하는 사람. 과연 그는 어쩔 수 없는 '가수'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새삼 깨달았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두려움과 근심을. 새롭고 낯선 그것들을 세상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까지. 

 

그랬다. 전인권의 목소리에 묻어 있던 오만은 사실,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위악이었던 것이다. '내 노래를 사람들이 계속 아껴줄까'라는 조바심. 그랬다. 조명을 받으며 울부짖는 야수의 모습은 그의 한 단면일 뿐, 전인권은 야수가 아닌 감동을 노래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둘.
2004년 크리스마스 이브. 서울 삼성동에서 '전인권 콘서트'가 열렸다. 소설을 쓰는 선배 하나와 공연장을 찾았다.

 

그 즈음 출간된 내 책을 전해주려고 무대 뒤편 대기실을 찾았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혀온 병 '대상포진'이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입 주위가 갈라터진 논바닥 같았고, 목은 완벽하게 잠겨 있었다. 보고 듣기 끔찍할 정도였다.

 

그러나, 놀라워라.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전인권은 콘서트 내내 뛰어다니고 포효했다. 무대 위에 선 그의 어느 곳에서도 일렁이는 병마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전인권을 치료했던 의사가 그랬다던가.

 

"그렇게 죽도록 고함을 질러대면 멀쩡한 사람도 아픕니다. 생명보다 노래가 중요하진 않잖아요. 충고하는데 무대에 서는 걸 자제하세요."

 

제 온 몸의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 부은 그날 밤. 그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자신의 일을 목숨보다 귀한 가치로 생각하는 전인권이야 말로 '진정한 프로'라고 생각했다. '2004년 12월 24일 전인권 콘서트'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의 다른 이름이었다.

 

셋.
2007년 2월. <오마이뉴스> 창간 7주년 축하자리에 전인권이 초청됐다. 축가를 불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런 실례가. 식전 여흥과 기념식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일찌감치 행사장에 자리한 전인권을 1시간이 넘게 기다리게 한 것이다. 연예인에게 시간이란 곧 돈임을 주최측 역시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바쁜 스케줄을 이유로 사람들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저 빙그레 웃으며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사진 찍자는 팬들의 요구에 일일이 응해주며 자신의 순서를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앙코르곡까지 마치고 황급히 세종문화회관을 빠져나가는 전인권을 보며 '상대를 참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구나'라는 혼잣말을 했다. 그날 행사장에 함께 한 사람들이 아이돌 스타의 '버릇없는 신비주의'와는 구별되는 전인권의 '아저씨 같은 편안함'에 너나 없이 박수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감옥 속의 전인권이 아닌 무대 위의 전인권을 기다린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여기서 주절주절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올 봄. 마 약 투약 혐의로 수사당국의 내사를 받던 전인권은 몇 개월을 필리핀에 머물다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진 인천공항에서 체포와 강원경찰청 마약수사대에서의 조사, 구속영장 발부와 춘천교도소 수감. 모두 다 각종 언론을 통해 수도 없이 보도된 사실이다.

 

전인권의 체포와 수감이 촉발한 '대마초 비범죄화' 논쟁과 마약사범에 대한 교정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하는 일각의 목소리, 여러 사람들의 비난을 부른 동료가수들의 변호사 비용 모금 논란 등에도 주제넘게 끼어 들지 않으련다.

 

다만, 하나. 이런 바람까지 숨길 수는 없을듯하다.

 

전인권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 남춘천역을 출발해 서울 청량리로 돌아오는 밤 열차 안에서 2시간 내내 '그것만이 내 세상'과 '제발'을 반복해 들었다. 침잠해있던 감수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전인권의 목소리에 기차의 곁을 달리던 강물마저 훌쩍였다. 생경한 체험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겨울공화국' 1980년대. 전인권은 '겁 많은' 우리를 대신해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제도와 벽을 향해 사자의 목청으로 고함을 내질러 주었다. 그의 용기는 고스란히 우리의 '빚'으로 남았다. 누군가가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다.

 

견디기 힘든 신경통과 잘 들리지 않는 한쪽 귀. 빠져나가기 시작한 머리칼에 듬성듬성 내려앉은 하얀 서리.

 

자신을 파괴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일이 없는 그를, '사랑과 용서, 감동을 노래하고 싶다'는 전인권을 감옥이 아닌 무대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내 바람은 '법을 조롱하는' 발칙한 꿈일 뿐인가.


태그:#전인권, #춘천교도소, #제발, #그것만이 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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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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