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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최대 일간지인 <가제타 비보르차>(Gazeta Wyborcza)지 10월 1일자에 한국에서 불고 있는 성형과 외모지상주의 열풍이 대서특필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제시카 알바와 이효리가 같이 출연한 이자녹스의 광고를 크게 내세운 이 기사는 '아시아의 여성들은 유럽 여인을 닮고 싶어한다'는 제목이 붙긴 했지만, 기사의 대부분은 한국 여성의 화장, 성형 풍조를 분석하는 내용이다.

 

인터넷판에 실린 기사에는 종이신문과는 달리 '한국 여인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라는 제목이 붙었다. 또한 "한국 여성들이 꿈꾸는 것은 폴란드 여성들과 똑같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꿈은 더 이루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여성들은 포기할 줄 모르고 한국의 화장품 업체들은 그것을 이용하기 바쁘다"라는 간략한 설명이 덧붙여 있어 기사의 초점이 한국임을 드러냈다.

 

기사에 실린 한국의 외모지상주의는 한국 내에서도 많이 공감하는 내용이고 기사 내용 중 사실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묘사된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내용과 흥밋거리를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부풀린 내용도 있어 문제가 될 소지도 있어 보인다.

 

한국의 외모지상주의 문제지만, 기사는 흥미 위주로...
 
<가제타 비보르차>에서 주로 경제와 미디어 마케팅 분야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는 바딤 마카렌코 기자가 작성한 이 기사는 경제 섹션에서 자그마치 두 페이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마카렌코 기자는 서울대와 LG 프레스 펠로우십(Press Fellowship)의 초청으로 9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 출고 시기와 맞물려 생각해보면, 짧은 서울 방문 일정 동안 보았던 사실들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마카렌코 기자는 1947년 '럭키 크림'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된 한국 최초의 화장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현대 한국 여성들의 미적 취향과 유행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이 기사에서 마카렌코 기자는 "유럽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도 않은 이자녹스 화장품을 한국여성들은 대단한 프랑스 화장품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한국 내 화장품 공장이 파괴되어 외국에서 화장품을 수입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시장에 서구 화장품이 다량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 제조된 화장품이 서구 기준에 맞추어진 계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화장품 업체들 역시 전혀 동양적인 기준에 맞지 않는 화장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출근 전 화장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며 심지어 가게에 갈 때에도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직장여성의 이야기도 소개되어있다.

 

"매일 하이힐 세워서 키높이는 한국 여성들"

 

그러나 기사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여러 군데 나온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부 얼굴에 하얀 마스크를 하고 다니며 이 때문에 마치 5년 전 사스가 창궐하던 중국처럼 보인다는 구절도 있다. 마카렌코 기자는 한국인들이 마스크를 쓰는 이유가 전염병이 아닌 바로 성형수술 때문으로, 상처가 아물 때까지 전부 마스크 속에 감추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아울러 기사에서는 여성들이 V라인을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서울에 있는 성형외과의 수는 맥도날드보다 많다고 전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여인들은 매일 하이힐을 세워서 6~10㎝ 정도 키를 높이고 있고, 심지어 서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는 하이힐을 신은 사람들에 대한 경보사인까지 제작해 게시하고 있다고까지 썼다.

 

이 기사에서 제시하는 한국 화장품 시장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기사에는 한국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60달러 이상을 화장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며, 한국은 유럽화장품의 전진기지가 된 지 오래라고 돼 있다.

 

한국 젊은이들은 황신혜 등 연예인의 사진을 걸어두고 외모를 가꾸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으며 더욱더 서구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늘씬한 다리와 가느다란 허리를 가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이처럼 이 기사에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포착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폴란드 독자들이 모든 한국 여성을 외모지상주의의 희생양으로 오해하도록 왜곡한 부분도 적지 않다.

 

가뭄에 콩 나듯 하던 한국 관련 보도가 두 페이지나 나온 이유는?

 

그렇다면 한국 관련 기사가 거의 게재되지 않는 폴란드에서 시의성이 거의 없는 이런 문제를 신문의 두 페이지를 빌려 (그것도 경제면에서) 다룬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 말미로 가면 그 궁금증은 금세 사라진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한국은 이제 유럽의 온갖 화장품 회사에서 눈독을 들여도 좋을 만큼 만만한 시장으로 변했으며 폴란드 회사들도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기사다.

 

기사 마지막에는 폴란드 화장품이 한국시장에서 벌이는 활동이 자세히 소개되어있다. 이 제품은 현재 한국 내 홈페이지에 주한 폴란드 대사관의 추천 화장품이라는 문구를 올리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놀라운 것은 폴란드에서는 최대 십여 즈워티(한국 돈으로는 6000원 이하)면 구입할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브랜드이지만, 한국 여성들은 이 브랜드의 크림 한 통을 최대 수십 달러를 주고 구입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기사에는 그 브랜드 광고를 위해 매년 3만~4만 달러치의 광고를 하기 때문에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한국 총판 담당자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폴란드의 저가 화장품이 몇 배의 가격으로 팔리는 한국의 현실도 안타깝지만, 기사에서 한국의 풍조를 논한 폴란드 기자가 한국 여성들은 턱없이 비싼 가격일지라도 유럽 화장품을 구입할 만큼 외모지상주의의 노예가 되었다고 폴란드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하다.

덧붙이는 글 | '매일 머리카락 세워서 키높이는 한국 여성들'이란 소제목의 단락에서 '머리카락'을 '하이힐'로 고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 바랍니다. 


태그:#폴란드, #가제타비보르차, #외모지상주의, #얼짱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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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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