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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을 떠나기 전의 마지막 사진 - 성 베드로 광장의 모습.
 바티칸을 떠나기 전의 마지막 사진 - 성 베드로 광장의 모습.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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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티칸을 떠나, 점심을 먹고 화려한 분수로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의 추기경 데스테의 별장이 있는 티볼리를 향해 간다.

점심은 이탈리아식 마르가리타 피자. 한국에서 생각하는 일반적인 피자와는 다르다. 이 마르가리타 피자는 한국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어본 적이 있기는 했지만, 현지에서 먹는 맛은 또 특별했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은 마르가리타 피자.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은 마르가리타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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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 머무르는동안 배낭여행을 간다면 상상도 못할만큼 호화로운 식단이었다. 아침은 호텔 부페, 점심은 이탈리아 현지식, 저녁은 한식. 한길사의 배려 덕에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 현지식을 먹는게 너무 즐거웠다. 새삼 놀라웠던 점은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가 정말로 전체요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로마에서 티볼리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가는 도중에 아피아 가도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아피아 가도의 푯말. 기원전 4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가도이다.
 아피아 가도의 푯말. 기원전 4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가도이다.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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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의 여왕" 아피아 가도

아피아 가도는 기원전 312년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로마 가도이다. 로마 가도를 상징하는 존재로써 당대인에게 "가도의 여왕"이라 칭송 받았던 길이다.

로마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격언(로마인 이야기의 1권과 10권 제목이기도 한),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모두 이 아피아 가도를 상징하는 문구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아피아 가도로부터 시작된 로마 가도는 그 후 수백년간 지중해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고, 가도는 로마와 속주를 잇는 혈관 노릇을 하였다.

성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 로마를 벗어나 달아나다가 이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전설도 유명하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d Vadis, Domine)?"라고 묻자 "네가 버린 양들을 보살피러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러 간다"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박혀 순교했다고 한다.

230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
 230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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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무르는동안 간간히 운동하는 사람이나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2300년 전 로마인들이 걸었던 길을, 오늘날 현대인도 걷고 있다. 23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

시대가 흐르는동안 아피아 가도의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일부분이 이렇게 남아있어 옛 흔적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화려한 분수대의 향연, 빌라 데스테

티볼리에는 16세기 추기경이었던 이폴리트 디 에스테의 별장(빌라 데스테) 뿐만 아니라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빌라 아드리아나)이 있다. 로마 황제중 가장 "근대적 면모를 갖춘" 인물로 꼽히는 하드리아누스가 만년을 보낸 곳이라 꼭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적으로 무리가 있기에 빌라 데스테만 찾아 가보게 되었다.

빌라 데스테를 대표하는 분수인 100의 분수.
 빌라 데스테를 대표하는 분수인 100의 분수.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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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기의 대표적 명가인 에스테 가(페라라 공작 알폰소와 공작 부인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로 유명한)의 일원인 추기경 이폴리트의 별장으로, 500여개의 화려한 분수를 자랑하는 곳이다.

길다란 100의 분수에서 일제히 뿜어내는 100개의 분수의 모습이 경탄을 자아낸다. 이어서 보는 분수의 형상은 고대의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이다. 가톨릭 사제의 별장에서 이교적 여신상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르네상스인의 정신인 것일까. 하기사 별장을 만들때 근처의 빌라 아드리아나에서 조각상을 많이 가져왔다고는 한데, 이것도 그것일까?

로마의 8월의 태양은 너무나 뜨겁지만 시원한 분수 덕에 더위를 싹 잊어버린듯한 기분이었다. 르네상스-현대의 그림이나 조각이 전시중인 별장 내부에서 바라보니 티볼리의 전경이 보인다. 소렌토에서 이곳 라치오 주(州)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는 자연조차 너무나 아름다운것 같다. 가능하면 북쪽으로 올라가 토스카나 주나 롬바르디아 주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한가닥 아쉬움으로 남았다.

많은 젖가슴은 고대의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많은 젖가슴은 고대의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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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저녁을 만끽하다- 좌충우돌 로마 탐험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모두 유적지나 관광지에 대한 것들뿐이었다. 로마도 엄연히 이탈리아의 수도요, 엄연히 사람 사는 곳인데 사람 사는 이야기가 빠져서야 되겠는가.

계속 감탄사만 늘어놓는 것은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지겨울 듯하여 로마에서의 일상을 이번 기회에 적어볼까 한다.

이번 탐방대는 한길사 이현화 팀장님의 인솔 아래, 청소년부에선 고3 김흥덕군, 고1 심재평 임승환군, 최수진양, 중학생 임준영군 5명, 대학일반부에선 필자, 임소정 누나, 권성욱 누나, 정희선 누나, 박성우 형과 이차석 선생님까지 6명, 도합해서 총 12명으로 구성되었다.

이탈리아 현지팀은 5일간 우리와 동고동락을 함께하며 지치지 않고 수많은 설명을 해주신 가이드 박 마리안나님, 폼페이에서 현지 가이드를 맡았던 까르밀라씨, 1, 3일째 버스 기사로 일본에서 26년간 살아 일본어에 능통한 로시씨와 잘생긴 용모로 누님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았던 4, 5일째 버스기사 마씨밀리아노씨가 있다.

5일간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로마 교외에 있는 스위스 계 호텔인 movenpeck 4성급 호텔로, 아침마다 아메리카식 부페의 풍성한 먹을거리로 우리를 감동시켜주었다.(여담으로 호텔 안내 데스크의 이탈리아 여성분, 참 미인이었다.) 다만 인터넷 사정이 워낙 열악해서 하루에 22유로라는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연결하는 데도 시간이 엄청 소요되었고 인터넷 사용중에 에러 메시지가 끊임없이 뜨는 바람에(호텔 측도 이유를 모른다니!) 현지에서 기사를 송고한다는 원대한 계획(?)은 결국 첫날을 끝으로 수포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넵투누스 분수.
 화려함을 자랑하는 넵투누스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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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여행의 한가지 단점은 계획대로 움직이다보니 자유 시간이 없다는 점인데, 젊은 층의 강력한 요구로 3일째 밤에 마침내 자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침내 얻은 자유 시간이라 호텔에서 쉬기로 한 3인을 제외한 9인은 로마의 야경을 기대하며 호텔을 출발.

그리하여 타게 된 로마의 지하철. … 웬걸, 아무리 저녁 시간이라지만 역무원은 모두 퇴근하고 없을뿐더러 아무리 찾아봐도 역 안에 노선도조차 없지 않는가! 서울과는 지하철 출입이 달라(타는 곳으로 바로 연결된다!) 무임승차를 해도 상관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 하는 법, 1인당 0.9유로의 표를 끊고 탑승했다.

지하철 한 대를 놓치자 다음 차는 무려 30분 뒤에야 왔다. 한국에서라면 난리 날 노릇. A선과 B선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전무했던 우리로선 목표지점인 산 피에트로 광장으로 추측되는 역에서 내렸는데, 내려놓고보니 한 정거장 전에서 내린 것이다. 알고보니 우리가 탔던 노선은 간선. 로마에는 A, B선 외에 7개의 간선이 더 존재했던 것이다. 한 정거장 더 가려고 해도 이미 지하철은 9시를 끝으로 운행이 종료된 상황(우리가 탄 차가 막차였다).

결국 지하철 밖으로 나와, 한 정거장 거리쯤이야 하고 걸으려 했으나 이미 어둠이 깔리어서 방향 감각도 없을뿐더러, 인적이 전혀 없는 탓에 불안한 마음에 결국 버스를 타고 로마의 중심가로 가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버스가 오기는 했는데, 이번엔 버스표를 사는 곳이 없는 것이다. 버스 기사는 현금은 안 받는다 하고… 결국 부득이하게 기사 아저씨의 협조 아래 무임 승차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넵투누스 분수대 위에서 바라본 빌라 데스테의 모습.
 넵투누스 분수대 위에서 바라본 빌라 데스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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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포폴로 광장에 도착. 이곳에서 비아 델 코르소를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스페인 광장과 베네치아 광장, 트레비 분수까지 갈 수 있다. 마침내 로마의 중심가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지도를 들여다보며 포폴로 광장에서 트레비 분수까지 유유자적 로마의 야경을 즐기기 시작.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 않는다든가.

그러나 의외의 곳에서 트러블이 생겼으니, 다름아닌 나의 복장. 당시 나는 인테르 밀란의 레플리카와 전날 산 AS 로마 모자를 쓰고 있는 기묘한(?) 차림이었다. 내 자신이 인테르의 팬이다보니 옷을 그렇게 준비해간 것인데, 오호라… 축구와 자기 고장을 사랑하는 로마 사람들, 이걸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전날 함께 샵에 갔던 김흥덕군은 AS 로마 80주년 기념 티를 입고 있었는데, 로마팬으로 추정되는 꼬마가 지나가며 김군에게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더니, 시선이 내게 돌아가자 표정이 싹 굳어버리는 것이었다. 인테르와 로마는 딱히 적대관계라고 생각치 않았기에, 이때까지만 해도 깨닫지 못했던 것을 트레비 분수 앞의 노천 주점에 들어간 다음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스페인 광장을 지나 트레비 분수에 도착하자 로마의 야경을 즐기려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낮보다 더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젤라또를 하나씩 먹으며 근처 노천 주점에 들어갔다. 각자 하나씩 주문을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알렉산더라는 칵테일을 주문하자, 갑자기 젊은 주인양반이 나를 흘겨보더니 "No Alexander~" 이러면서 주문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그가 웃으면서 "노 인뗄!" 이라고 하지 않는가.

빌라 데스테에서 바라본 티볼리의 전경.
 빌라 데스테에서 바라본 티볼리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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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자기가 로마니스타(AS 로마의 팬)라 인테르 팬에게는 팔 수가 없다나. 더욱이 그 다음 날은 밀라노에서 인테르와 로마의 슈페르 코파(세리에 A 우승팀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 팀이 단판 승부를 벌이는 것)가 있는 날이었다. 서로 누가 이길거라 짧은 영어로 축구 얘기를 하다보니 서로 금방 친해질 수가 있었다. 역시 축구는 전 세계 언어.

이 양반,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었다. 칵테일이 나올 때도 지나갈 때도 나를 보면 계속 눈을 흘기면서 안 주는 척을 하거나 로마 티를 입은 옆의 김군과 친한 척을 한다거나. 김군은 언제부터 로마 팬(밀란 팬이라고 하지 않았었나?)이었다고 함께 희희낙락. 내가 "델 루카(주점 주인의 이름), 부폰(이탈리아와 유벤투스의 주전 골키퍼) 닮았다"고 칭찬을 하자 그는 오히려 고개를 저으며 "유벤투스? 노노~" 이러는 것이었다. 아니, 부폰은 유벤투스 선수이기 전에 이탈리아 사람 아니었나? 정말 라이벌 의식이라는 것은 놀랍군.

어찌되었건 너무나 즐거웠던지라 헤어지기 전에 그에게 로마 모자를 씌어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옆을 지나가던 한 무리의 청년들이 나를 보면서 "Forza Inter!(인테르 이겨라!)"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적지(?)에서 만난 동지애로 웃음이 터져나왔는데, 이 사람들은 아마도 밀라노에서 온 모양이다. 아니면 로마의 인테르 팬이든지.

축구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게 끝이 아니었는데, 그 다음날은 경기 당일날이라 이번엔 편을 바꾸어(?) 로마 셔츠를 입고 나갔다. 그런데 기사 양반(앞에서 서술했던 잘생긴 마씨밀리아노씨)이 갑자기 옷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거 아닌가. 이 분은 누님들이 "너무 잘생겼어요~"라고 하자 "이미 결혼했습니다"라는 재치 있는 답변(물론 통역)을 할만큼 센스 만점. 이번엔 이유가 뭐냐 싶어 멀뚱 쳐다보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갑을 보여준다. 지갑에 떡하니 박혀있는 SS 나폴리의 엠블럼. 본인은 나폴리 팬이라 로마는 싫어한단다! 역시 크게 웃으면서 축구에 대한 담소.

이탈리아인들의 이 축구에 대한 애정과 건전한 라이벌 의식이 피상적이나마 이탈리아인의 단면을 본 것 같아 참으로 유쾌했었다. 이탈리아어만 할 줄 알았다면  좀 더 깊게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을텐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낙천적이고 즐거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이탈리아 사람들. 또 선남선녀가 많아 눈이 즐거웠던 이탈리아. 여행의 목적중 하나인 현지인과의 접촉이 적었던 점은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아, 다시 돌아가고 싶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이탈리아로.

* 디카 배터리가 다 나갔던 사정으로 로마의 야경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너무나 아쉽다.

로마인 이야기 역사 탐방대의 일원들. 사진을 찍으시느라 팀장님만 자리에 없다.
 로마인 이야기 역사 탐방대의 일원들. 사진을 찍으시느라 팀장님만 자리에 없다.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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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로마, #로마인 이야기, #티볼리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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