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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늘 내 일상 한가운데에 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무에 나이를 매기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는 봄에 태어난다. 겨우내 따뜻하고 부드러운 땅속에서 지내다 움틀 꿈틀 나무를 타고 올라와 싹을 틔운다.
 

3월에 태어난 나무는 껍질 속에서 잔뜩 움츠리고 찬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4월이 되면 열 살이다. 조금씩 황녹색 잎을 펴보이며 바깥바람을 가늠해본다.
5월이면 스무 살, 비로소 연두색 가녀린 잎을 펴보이며 햇살을 향해 활짝 기지개를 켠다.
6월이면, 삼십이다. 색이 점차 진해지면서 잎도 두꺼워진다.
7월이면 사십, 색도 더해지고 두께도 더해간다.

 

8월이면 50이고, 9월이면 60이다. 이젠 화장할 준비를 하는지 색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서서히 엽록소가 빠져나가면서 화려한 색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다해 공을 들이고 있다.

 

10월이면 70, 처음에는 새색시처럼 수줍어 발그레 볼에만 물을 들이더니, 점점 대담하게 화려한 색을 동원해가며 색칠을 한다.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황홀하다.

 

나무의 일생은 다 다르다. 찬바람을 피하지 못해 단명한 것도 있고, 감기 등 잔병치레를 하느라 고생하며 일생을 보낸 나무도 있다. 그런가 하면 너무 곱고 영양분이 많아 일찍이 벌레의 습격을 받은 것도 있다.

 

건조할 때 비가 오면 잎을 활짝 펴고 비를 받아들이지만 비가 자주 오면 잎을 적당히 오므려 빗방울이 스스로 아래로 내려가게 한다. 흐린 날이 계속돼 일조량이 부족하면 햇살을 전부 받아드리려 잎을 활짝 펴고 깊은숨을 쉬며 햇빛을 받아드린다. 그러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지면 잎을 부드럽게 숙여 외면하면서 햇살을 피한다.

 

나무는 늘 한 곳에 서서 그대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며 정화작용을 한다. 이 같은 대처가 그들에겐 일이다. 유전적인 것도 있고 조건적인 것도 있어서 자신들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받아들이며 일생을 가꾼다.

 

이제 가을, 얼마 안 남은 여생을 장식하기 위해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나, 또 그들의 운명이 어떠했나에 따라 그들에게 주어진 색상은 다르다.

 

자! 길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나무를 한 번 바라볼까요? 비록 움직일 수 없어 한 자리에만 서 있지만 그들의 일생이 얼마나 위대했나. 또 우리를 위해서 잎을 바람에게 내주며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나 가슴 깊이 느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화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화장술을 모두 동원해 쓸쓸한 가을을 아름답게 장식해 보려는 거지요. 각각 다른 화장술을 자랑하는 저들 정말 화장의 대가들입니다.

 

자, 모두 창 밖을 보세요. 그리고 칭찬 한마디 해 주세요, 황홀하다구!

덧붙이는 글 | 눈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가로수를 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태그:#나무, #단풍,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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