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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4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환송오찬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작별인사를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07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4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환송오찬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작별인사를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반도 평화체제'의 추진 절차와 방법을 놓고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같은 날 전혀 상반된 목소리를 냈다.

백종천 실장이 먼저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만나 '종전선언'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 개시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송민순 장관은 '일반적 원칙에 맞지 않는 얘기'라고 일축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진 것. 두 사람의 이날 발언은 '2007 남북정상선언'에 언급된 종전선언의 성격과 그 시점에 대한 해석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어 정부내의 혼선으로 비쳐질 소지가 다분하다.

청와대와 외교부간 이견은 '종전선언'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의중에 대한 해석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의 여세를 몰아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을 열어 종전선언을 하는 '빅 이벤트'가 가능하다고 보는 반면, 외교부는 미국이 이런 구상에 응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불거졌던 '종전선언'의 성격과 시기를 둘러싼 청와대와 외교부간 이견은 20여일이 지났는데도 전혀 정리되지 않고, 다시 확산될 조짐이다.

종전선언 후 평화협정 협상이냐, 협상 완료 후 종전선언이냐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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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천 실장은 24일 아침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남북정상회담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열린 제9회 SMI 안보경영포럼 강연에서 "남북 정상 선언문에 담긴 3,4개국 정상들의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을 이제 시작하자는 관련국들의 정치적, 상징적 선언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 가려면 평화협정이 맺어져야 하는데 그때까지 5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평화협정으로 가는 '터닝 포인트'로서, 그 문제에 대해 책임져야 할 정상들이 모여서 선언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종전선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11시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15주 만에 정례브리핑에 나선 송민순 장관은 '종전선언'의 성격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이든 어떤 형태든 관계정상화 문서 제1조에 나오는 것"이라며 "평화협정에 도달하려면 협상을 개시, 상당한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장관은 "오늘 자고 내일 아침 일어나서 '자 이제는 전쟁이 끝났습니다'라고 선언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평화는 말로만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 군사적, 법적 조건을 갖춰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이 일반적 원칙"이라며 "원칙에 맞지 않는 조치를 취할 때는 왜 그런 조치 취해야 하는지 분명한 논지와 근거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백 실장의 발언이 '원칙에 맞지 않는 논리'라는 얘기.

송 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날 오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유엔의 날' 기념행사에서 기자들을 만나서는 "일부에서는 공식적인 종전선언을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선언을 종전선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고 뉘앙스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청와대의 '기대'와 다른 미국측 분위기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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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 대통령 임기 내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실현을 기대하는 속내를 여러 차례 드러내왔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임기 내 성사는 어렵지 않겠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통령 임기를 염두에 두고 속도를 조절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임기 내에 이뤄진다, 아니다, 단정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11일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종전선언이 6자회담의 이행과 북핵 폐기를 촉진하는 상호작용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좀 더 빨리 갈 수도 있다는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임기내 '3자 또는 4자 정상에 의한 종전선언'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희망'과 '기대'가 이렇게 명백함에도 정작 실무선에서 움직여야 할 외교부 관리들은 '노 대통령 임기 내 종전선언' 가능성을 사실상 전면 부정하고 있다. 아무리 임기 말이라 하더라도 이례적 현상이다.

미국측과 직접 접촉하고 있는 외교부 당국자들은 "미국 분위기가 청와대의 기류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북핵 문제가 이제 겨우 대화 해결 쪽으로 방향을 틀어 초입에 진입한 상황에서 '종전선언' 운운하는 것은 전혀 물정을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측 관리들의 '육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8일 이재정 통일부장관을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외교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단정적인 어법이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도 최근 "북한이 보유중인 플루토늄 50㎏을 폐기해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착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대체로 현재 합의돼 있는 북한 핵 시설의 연내 불능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그 다음 단계로 핵 폐기에 대한 전망이 서야 비로소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설사 가까운 시일 내에 협상 개시를 선언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주체는 정상들이 되기 어려우며, 4자 외교장관 차원에서 이뤄지리라는 게 외교부의 지배적 분위기다. 다만 송 장관 자신은 이 부분에 대해 "누가 선언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자이툰부대 파병연장, '임기 내 종전선언'과 맞바꾸기?

지난 2월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에서 간부 226명, 사병 343명 등 총 569명으로 구성된 자이툰부대 6진 1차 교대병력 환송식이 열렸다.
 지난 2월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에서 간부 226명, 사병 343명 등 총 569명으로 구성된 자이툰부대 6진 1차 교대병력 환송식이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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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임기 내 종전선언'을 실현시킬 복안이 있는 것일까?

외교가 주변에서는 청와대가 그런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라크에 주둔 중인 자이툰 부대 파병기간 연장 카드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란 관측이 많다. 백종천 실장의 이날 발언이 노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 방침 발표 바로 다음 날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은 23일 대국민담화에서 파병연장 이유에 대해 "6자회담이 성공적 결실을 맺어가는 국면이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논의되고 있다"면서 "이 모두가 미국의 참여와 협력 없이는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일들이며, 그 어느 때보다 한미간 긴밀한 공조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파병연장의 대가로 미국의 '참여'와 '협력'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호주 시드니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답변을 재촉했던 장면과 연결시켜 보면 미국에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이 노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해올 가능성은 현재로선 커 보이지 않는다. 자이툰 부대 파병연장은 이라크 문제로 궁지에 몰려있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겠지만, 스스로 지금까지 천명해온 원칙을 무너뜨리는 이벤트에 동의해 줄 정도까지 고맙게 느끼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최근 여러 방면에서 '업적'을 남기는데 관심이 많은 청와대는 이 문제도 남은 임기 동안 전력을 다해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후 20여일이 지나도록 정부 내 입장도 하나로 정리하지 못한 것을 보면 미국을 설득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태그:#한반도 평화체제, #종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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