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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3일) 때 아닌 '김장' 으로 우리집 가족 모두 급작스럽게 움직여야 하는 일이 일어났다.

 

오전 10시 아내는 장보러 가고 애들은 학교에 갔다. 나는 모처럼 쉬는 토요일을 맞아 집 근처 저수지에 가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 운동복을 벗고 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내게는 어머니와도 같은 이모였다.

 

갑자기 들려온 때 아닌 김장 SOS


"아유 하현 애비가 집에 있었네."
"아 예~ 어쩐 일이세요?"
"아 글쎄 어젯밤에 청주에서 '배추'하고 '무'하고 김장거리를 잔뜩 보내왔지 뭐냐, 이모부는 출근하시고 혼자는 도저히 엄두가 안나서 하현 에미가 좀 도와줬으면 해서 전화했다."


몹시 난감해 하는 목소리셨다.

 

"아 예~ , 그럼 하현엄마 보낼게요."
"그러면 좋겠구나."
"당신 먼저 이모 댁에 가 있어요, 내가 애들 오면 점심 먹이고 데리고 갈 테니."


아내가 한시라도 빨리 가야 일이 진행될 것 같아 아내를 먼저 보냈다.


김장은 계획을 세워서 담그는 것이 당연하나 급작스럽게 배추가 수송되어 온지라 급하게 김장을 하게 된 것이다.


[기본재료 준비] 60포기 김장 걱정에 잠 못 이루신 이모님


사정은 이랬다. 청주에 사는 외사촌 누나가 배추 장사를 한다. 배추값이 비싸니 이모 김장비용을 덜어드리고자 어젯밤에 수원 사는 동생편에 질 좋은 김장거리를 한 차 가득 보내온 것이다.


그러니 요즘 같이 배추가 '금치'라고 할 정도로 귀한 때 배추를 받으셨으니 싱싱할 때 담그시겠다고 바로 김장을 시작하신 것이다.

 

이모집에 도착해 보니 배추 60포기는 소금에 절여지고 있었고 무, 갓 등 김치속 거리가 마루 전체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내는 이모가 절여 놓은 배추를 씻고 있었고 이모는 마늘과 생강을 빻고 계셨다.


"어제 밤 11시에 배추를 받아서 소금에 절이고 나니 새벽3시가 다 됐더라, 이걸 어떻게 할까 한 걱정 하다가 잠도 안 오지 뭐냐."


혼자 60포기 배추를 절이셨으니 오죽 힘이 드셨겠는가. 이모는 음식 솜씨가 좋아서 음식을 해서 나누는 재미에 사시는 분이다. 이모가 담근 김치 또한 맛있어 평소에 여기저기서 김치를 맛보고자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이모도 이제 나이가 나이(65세)인지라 배추를 혼자 절이며 벌써 반 녹초가 되어 있었다. 사태가 사태이니 만큼 나도 뭔가는 거들어야겠다 싶어 무채를 썰고 마늘을 다지는 등 기본재료 준비하는 것을 도왔다.

 

[속 버무리기] "이렇게 힘든 걸 어떻게 해왔죠?"

 

이제 기본 재료 준비는 끝나고 가장 중요한 속 버무리기와 배추 사이로 속을 넣는 일이 남아 있었다. 피곤함이 역력한 이모에게 힘이 많이 들어가는 속 버무리기는 무리였다. 젓가락 같이 가는 팔뚝을 지니고 있는 아내 역시 무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치 속 버무리기는 제가 해볼까요?"
"하현애비가?"
"한번 해보죠 뭐."


비상사태라 이모도 마다하지는 않으셨다.


"자기가 할 수 있겠어요?" 아내 또한 걱정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이래 뵈도 자취할 때 반찬까지 만들어 먹던 사람이야."

 

나는 본격적으로 옷을 갈아입고 썰어 놓은 무와 배·갓·새우·젓갈·마늘·생강·고춧가루를 넣고 김치속 버무리는 일을 시작했다.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구석구석을 훑으며 뒤섞노라니 힘이 여간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땀까지 날 정도였다.


"야~ 이 힘든 걸 어떻게 여자 힘으로 해왔죠?"
"엄마들이 팔뚝 두꺼워지는 게 괜히 그러는지 알아?"
"여태껏 그렇게 힘들게 만든 걸 먹었다고 생각하게."
"하하 그래요?"


[배추에 속 넣기] "엄마아빠, 우리도 해볼래요"

 


이제 속 버무리기가 끝났으니 소금에 절여놓은 배추에 속을 넣는 일이 남았다. 평생을 김치를 담가온 이모지만 혼자 속을 넣기에는 힘에 부치셨다.

 

일을 하겠다고 시작했으니 까짓 거 뭐 속 넣는 일도 못할 것이 없었다. 이모가 넣는 것을 자세히 본 다음 속을 넣는 일을 시도했다. 배춧잎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잘 버무려진 속 사이사이에 켜켜이 채워 넣어야 했다.


이모와 나 그리고 우리 아내 셋이서 척척 배추에 속을 채워나갔다.


"보기보다 잘 하네그려."
"험험~그렇죠."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 딸(11살)과 아들(8살)이 자기들도 한번 해보고 싶다며 졸랐다. 고무장갑을 벗어서 한번 해보라고 하자 "우와~"하더니 달려들어 즐겁게 속을 채웠다. 우리 가족의 합작 김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완성] 저릿저릿 뻑적지근... 그런데 이번엔 총각김치?

 

마침내 60포기 배추에 속이 채워지고 김치통에 속속 들어가며 마무리가 됐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뻑적지근했다. 초등학교 시절 모를 심어봤는데 그 때의 뻑적지근함이 생각날 정도였다.


다 끝났다 싶어 고무장갑을 벗으려는데 이모가 한 쪽 구석에 있던 총각무를 가리켰다.


"저걸 이 쪽으로 부리게나."


아뿔싸! 총각무까지 버무릴 계획이었다. 다 끝난 줄로만 알았던 나는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나섰다. 총각무에 젓갈을 붓고 쑤어 놓은 찹쌀풀을 함께 버무렸다. 그런데 배추 속을 버무리는 일은 걸리는 것이 없어 수월했으나 총각무는 버무릴 때마다 줄기가 얽히고설켜 꽤나 힘들었다.

 

이제 속이 들어간 배추김치와 총각무를 김치통에 넣어 김치냉장고 속으로 집어넣고 사용했던 그릇들까지 모두 닦고 나니 일이 마무리됐다. 뭔가 큰일을 해낸 뿌듯함이 몰려왔다.

[뒤풀이] 양념속 넣은 배춧잎, 이 맛에 김장 하지

 

일을 끝내고 나니 오후 5시가 되었다. 힘을 많이 써서 출출했다. 이모가 김치 양념속과 노란 배춧잎을  차려 놓으셨다. 정말 먹음직 스럽게 보였다.

 

예부터 "양념속 먹으려고 김장한다"는 말에 걸맞게 막 끝낸 김장김치의 양념속과 배춧잎 속은 정말 맛있었다.

 

43년을 살아오면서 김치는 매끼 안먹은 일이 없을 정도로 김치를 좋아한다. 그런 맛난 김치를 매번 누가 담가준 것만 먹다가 오늘은 난생 처음으로 내가 직접 담갔으니 꽤 의미있는 날이었다. 김치 담그는 경험도 경험이지만 김장김치를 담그며 가족애를 느낀 소중한 날이었다.

 

"숙련된 일꾼 하나 검증됐으니 다음에 김치 담그실 때 또 부르세요."
"그러시게나 하현애비."
"하하."

 

 


태그:#김장,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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