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운동도 잘 해요!"

 

함께 근무하는 어떤 선생님이 우스갯소리로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런 얘들이 요리도 잘 하고, 착하기까지 하다며 듣고 있던 모든 분들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사실 '흥부네 집 아이가 놀부네 집 아이보다 공부를 잘 할 수도 있었던' 그런 시대는 이미 전설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가난한 집 아이가 납 등의 중금속에 더 많이 오염돼 있다는 보고도 있는 걸 보면, 공부뿐만 아니라 건강조차 빈부에 의해 확연히 나뉘고 있는 셈입니다.

 

경제적인 여유를 바탕으로, 식탁 위에는 신선한 유기농 먹거리가 놓이고, 다양한 커리큘럼에다 쾌적한 교육 환경의 세례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타고난 능력과는 별도로 더 강력한 '무기'를 지니게 됩니다. 바로 '자존감'입니다.

 

반칙과 특권의 '아수라장'으로 몰리는 아이들

 

이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넘어서는, 후천적이면서도 그 무엇보다도 탁월한 재능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 자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픈 부모의 마음도 기실 그것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지닌 능력과 처한 환경에 대한 무한 신뢰와 존중감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닐 뿐더러, 아이들이 커가면서 보고 겪게 되는 현실은 자존감을 갖게 하기는커녕 지니고 있던 자존감마저도 허물어뜨리고 있습니다.

 

나아가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결과에 집착해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약삭빠른 아이를 길러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중심에 아이들의 '거울'이라는 부모와 교사가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듣자니까 일부 지역 특목고 입시에서 담당 교사와 학원이 짜고 시험 문제를 유출한 비리가 일파만파 번져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해당 학교 입학생들과 준비생들의 피해는 막대할 것이며, 당분간 특목고 입시에 관한 혼란도 가라앉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는 물론, 이런 요지경 속에서 '혜택'을 본 학부모와 학생들은 모르는 척 눈을 감았고, 탈락한 쪽의 '해코지'가 치부를 드러낸 발단이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들 역시 합격했다면 쉬쉬했을 것이고 보면, 수단과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천박한 우리 사회의 불문율을 아이들이 또 한 번 봐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어릴 적부터 넉넉한 환경에서 남다른 '대우'를 받고 자라, 굳이 특목고를 가지 않아도 제 '앞가림' 정도는 하며 성실하고 반듯하게 생활할 아이들입니다. 그런데도 부모의 허영과 우리 사회의 그릇된 편견이 그들을 철들기 전부터 반칙과 특권이 횡행하는 '아수라장' 속으로 자꾸만 밀어 넣고 있습니다.

 

아파트 평수와 성적이 정확히 비례하는 현실

 

특목고가 본래의 취지를 잃고 입시 명문고가 된 지 오래고, 중학교 3학년 교실에도 특목고를 준비하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물과 기름마냥 섞이지 못하고 소 닭 보듯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 차이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린 문제가 아닌, 부모의 '능력 차이'로 인해 갈린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고 자랐다고 해도, 스스로 어찌 해 볼 도리 없이 점점 또렷해져만 가는 그 차이는 열패감과 상실감을 안기며 자존감에 큰 생채기를 냅니다.

 

이러한 차이를 최대한 억제하고 가정 형편에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할 학교가 외려 특목고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앞서 배려하고, 심지어는 학교의 '자랑'이라며 특목고 진학생 수를 홍보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기실 이것은 오로지 경제적 여건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는, 차이가 아닌 엄연한 '차별'입니다.

 

비록 특목고 입시가 비리가 판치는 '진흙탕의 개싸움'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진학에 실패했다고 해도 그들의 처지는 여전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부 못 한다며 구박 받는 아이들과 견줘보면 특목고 진학을 '준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가난에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며 당당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찾아보기란 이제는 어렵습니다. 안타깝게도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와 아이들이 성적이 정확하게 비례하는 현실에서 그들에게 특목고는 분명 남의 나라 얘기일 뿐입니다.

 

전문계 고등학교 진학=낙오자?

 

지금 중학교 교무실에서는 인문계 고등학교와 전문계 고등학교의 원서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조금 이른 듯 하지만 정원의 미달이 우려되는 몇몇 전문계 고등학교의 입학 담당 교사들은 이미 중학교 순례(?)를 시작했고, 아이들을 보내달라며 애걸하다시피 머리를 조아립니다.

 

3학년 아이들, 그것도 성적이 낮은 아이들의 경우, 중학교에서의 마지막이 될 기말 시험을 앞두고 잔뜩 긴장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번 시험을 망치면 자칫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성 검사와 적성 검사의 결과가 한낱 휴지조각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 전문계 고등학교 진학은 가정과 사회의 따가운 편견이 덧씌워지는 '주홍글씨'임을 그들은 모르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할 요량으로 '실업계'라는 이름을 버리고 '전문계'로 바꿨다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일 뿐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진학 상담을 하는 교사도 아예 대놓고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인문계 못 간다'며 을러대고, 아이들도 '전문계 고등학교 진학=낙오자'라는 등식에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부모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입학 원서를 쓸 때쯤 교무실로 찾아와 어떻게든 자녀를 인문계를 보내야 한다면서 울먹이기까지 합니다.

 

'나랏님도 구제 못하는' 무한 경쟁 사회

 

좋든 싫든 누군가는 전문계 고등학교엘 가야 합니다. 문제는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학하기도 전에 갖게 되는 편견과 열패감입니다. 교문에서 아무리 엄하게 단속을 해도 교복을 입기조차 꺼려할 만큼 그들은 깔보는 듯한 주변의 시선을 못 견뎌 합니다. 그 어떤 말로도 다독일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상처는 큽니다.

 

그들은 비리로 얼룩진 특목고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분명 같은 또래가 당한 일이라 관심을 갖고 지켜봤을 테지만, 그들의 잘못을 꾸짖기보다는 외려 '떨어져도 인문계는 가지 않느냐'며 부러워하지는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사회, 같은 학교 안에서 고정돼 가는 양극단의 아이들을 오늘도 지켜보면서, 전문계 고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겪어야 할 좌절감에 저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괴롭습니다. 가만히 보니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나랏님도 구제 못하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손 놓고 있는 모습이기에 그렇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전문계 고등학교, #김해외고 입시비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