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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에서 내려다 본 영국사.
 천태산에서 내려다 본 영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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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보다 가을이 더 아름다운 절집 영국사

봄에 가야 아름다운 절이 있고, 가을에 가야 아름다운 절집이 있다. 봄에 가면 아름다운 절집으로는 봄이면 몇 백 년 묵은 영산홍이 섬뜩할 만큼 아름다운 꽃망울 피워내는 선암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을에 가면 좋은 절집은 어디를 꼽을 수 있을까. 가을 하면 자동연상작용으로 나뭇잎이 아름답게 물든 절집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단풍이 좋다는 것 한 가지만으로 과연 그 절집이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까. 가을을 만끽하려면 가을빛이 고우면서 한편으로는 고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필요충분조건이다. 단풍 빛이 아름다운 건 경치다. 고적한 것은 정취이다. 가을 절집은 경치와 정취가 조화를 이룬 곳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충북 영동 천태산 영국사야말로 경치와
정취가 버무려진 대표적인 가을 절집이 아닐까 싶다.

영국사는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했다 한다. 영국사로 부르게 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 홍건적의 난을 피해 남하하던 공민왕이 이곳에서 나라의 안녕을 빈 뒤부터 절 이름을 영국사라 불렀다고 전한다.

영국사로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명덕리로 해서 올라가는 길이요, 두 번째는 누교리로 올라가는 것이다. 명덕리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훨씬 호젓하다. 오늘(10일)은 명덕리에서 오르는 길을 택한다. 길이 억새꽃을 보여줬다가는 지우고 들꽃을 보여줬다가는 또 금세 지운다. 길은 내게 "한 풍경만 편식하지 마라"고 주의를 주면서 한쪽 눈을 찡긋한다.

나무도 늙으면 사후 준비를 하는가

망탑봉 가는 길에 바러본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
 망탑봉 가는 길에 바러본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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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입구에 이르자, 은행나무가 먼저 마중나온다. 영국사는 그렇게 천 년이 넘도록 나라의 안녕을 빌며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권력으로부터 그리 혜택을 받진 못했는지 전각이 단출하고 수수하다. 그 흔한 천왕문도 없다. 그 대신 나이가 1000살 정도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사천왕처럼 절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은행나무는 오래되어 줄기 가운데가 텅 비어 있다. 늙은 나무라고 해서 왜 골다공증이 없겠는가. 사람이나 나무나 나이 들면 사려가 깊어지기 마련이다. 제 사후를 걱정했는지 은행나무는 일찌감치 후계자를 지정해 놓았다. 서쪽으로 뻗은 가지 하나가 땅에 닿더니 뿌리를 내려 마치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발 아래 잔뜩 잎을 쌓아두고 있다. 은행나무 할아버지, 왜 이리 잎을 잔뜩 쌓아 놓으셨어요? 응, 나이 먹으니 발이 차고 무릎이 시려서 그래. 헤, 전 또 할아버지가 멋 부리시는 줄 알았잖아요? 요새 젊은 것들이 어디 나 같이 나이든 나무 속사정 헤아려주나?

영국사  대웅전( 충북 유형문화재  제61호).
 영국사 대웅전( 충북 유형문화재 제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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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석탑(보물  제533호)과 절 입구를 지키는 만세루. 답사객들이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있다.
 3층석탑(보물 제533호)과 절 입구를 지키는 만세루. 답사객들이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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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를 지나 2층 누각인 만세루 아래를 통과해 돌계단을 오르면 눈앞에 두둥실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국사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두 단의 높은 축대 위에 세워 실제 크기보다 훨씬 당당한 느낌을 준다.

마당 가운데엔 삼층석탑이 서 있다. 기단에 비해 몸돌의 크기가 너무 작다. 전체적으로 보면 체감 비율이 커 안정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몸돌이 좀 왜소하게 느껴지는 게 흠이다.

몸돌 1층 정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까지 있는 문짝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네 귀퉁이는 살짝 치켜 올라갔다. 탑의 규모가 작고 양식도 매우 간결한 것을 보면 아마도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절에서 가장 먼곳에 있는 영국사 부도(보물 532호).
 절에서 가장 먼곳에 있는 영국사 부도(보물 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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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경내를 나와 남쪽 계곡인 낭골을 따라 300m가량 가면 왼쪽 언덕에는 부도 한 기가 외로이 서 있다. 재작년 4월 말 산불이 났을 때. 바로 코앞까지 불이 덮쳐오는 바람에 손상 위협을 받았던 부도다.

2년 반 정도 세월이 흐른 탓인지, 주변 경관이 많이 복구된 것 같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부도 몸돌을 들여다보니, 한 면에 직사각형의 문짝이 새겨져 있고, 그 안에 자물쇠 모양이 돋을새김 돼 있다.

신라 말에 유행했던 팔각원당형을 한 이 부도는 규모가 작다. 그에 따라서 기단부의 조각도 안상 정도를 새기는 데 그쳤다. 그러나 목조건축을 흉내낸 지붕돌의 기왓골만은 뚜렷하다. 마침 기왓골에 이끼가 끼어 마치 실제 지붕 같은 느낌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한다.

연리지는 현상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사상이다

석종형부도와 원구형부도 (충북 유형문화재 제184호와 185호).
 석종형부도와 원구형부도 (충북 유형문화재 제184호와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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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와 소나무 연리지.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와 소나무 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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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국사 경내로 되돌아오다 비각과 두 기의 부도가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가장 위쪽에 있는 석종형 부도부터 둘러본다. 종 모양의 몸돌 꼭대기엔 종을 매달 때 쓰이는 고리를 떠올리게 하는 구멍이 있을 만큼 실제의 종과 거의 비슷한 형태다. 다른 탑에서는 보지 못한 아주 독특한 모양이다.

그 아래엔 원구형 부도가 있다. 하대석과 중대석 및 상대석을 갖춘 위에다 몸돌을 놓고 옥개석을 덮었다.

2기의 부도 아래에 있는 비각 안에는 점판암에 새긴 원각국사비가 서 있다. 비는 고려시대 중기에 이곳에 주석했던 원각국사를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고려 예종 때 태어난 원각국사(1119~1174)는 9살 때, 대각국사 의천의 제자인 교웅에게 출가했다. 스승에게서 장차 천태종을 일으킬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라니 그의 뛰어남을 미루어 알 수 있겠다. 그가 입적하자 명종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게 하였다고 한다.

원각국사비 비각 옆에 서 있는 소나무들을 주의 깊게 살피다 보면 소나무 두 그루가 가지로 연결된 연리지를 발견할 수 있다.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하나가 된 것이 연리지는 열렬히 사랑하는 남녀 사이를 상징하기도 한다. 참나무 계통 수종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소나무 연리지는 흔치 않다.

연리지는 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사상이다. 사랑에 대한 모든 생각을 집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발치에 서서 두 나무가 엮어낸 사상집을 차례로 읽어 나간다. 사랑을 지탱하는 것은 열정이다. 그리고 열정의 속살은 안타까움이다. 얼마나 마음이 간절해야 저렇게 상대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연리지의 사상이 적용되는 건 비단 남녀 사이만은 아니리라. 연리지의 마음을 갖고 열심히 간구하고 수도하면 부처되기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터. 원각국사가 내게 자신의 비 바로 옆에 연리지가 서 있는 깊은 뜻을 헤아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원각국사가 얼마나 위대한 생애를 사신 분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비가 한 사람이 살았던 정신을 기리려는 것이라면 저 연리지 역시 한 기(基)의 비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영국사의 수호신 같은 망탑봉 삼층석탑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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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경내를 지나쳐 영국사 동쪽 500m가량 되는 곳에 있는 망탑봉이라는 작은 봉우리를 향해 간다. 봉우리 꼭대기에는 삼층석탑이 서 있다.

망탑봉 봉우리 삼층석탑은 말없이 영국사를 굽어보고 있다. 기단은 따로 만들지 않은 채 자연 암석 윗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나서 그 중앙에 돌출된 자연석을 기단으로 이용했다. 그 위에다 바로 몸돌을 얹었다. 체감률을 일정하게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몸돌의 상부를 기단보다 훨씬 좁게 만들어 바라보는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도록 세웠다.

이 높은 봉우리에다 탑을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 아들 낳기가 소원인 사람이 원력을 다해 여기에다 탑을 세운 건 아닐까. 탑 아래 자연석에 남아 있는 여근 모양의 흔적은 내 머릿속에서 바삐 원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탑이 아들 낳는 데 얼마나 효험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 올라  삼층석탑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이 탑이 '영국사의 수호신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재작년 4월 말에 일어났던 산불에서 영국사를 지켜낸 것은 이 탑이 가진 영험함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영국사가 감춘 '숨은 꽃' 요사

작아서 아름다운 영국사 요사.
 작아서 아름다운 영국사 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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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산신각 뒤편 옛 영국사 자리에서'숨은 꽃'을 찾고 있다.
 한 여인이 산신각 뒤편 옛 영국사 자리에서'숨은 꽃'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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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내려가도 좋다"는 스승의 인가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제 하산할 때가 되었다. 그래도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는지 영국사로 되돌아와 한 번 더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감나무와 연립정부를 구성한 요사의 지붕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영국사에 올 때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걸 생각한다. 누군가 내게 영국사에서 가장 끌리는 것 두 가지만 꼽으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외따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보물 제532호 영국사 부도? 대웅전 앞 삼층석탑?

아니다. 단촐한 요사야말로 영국사가 감춘 '숨은 꽃'이다, 지붕 기왓골에 몇 그루 와송을 키워 악센트를 주는 것도 무생물인 영국사 요사가 발휘하는 감각적인 센스 가운데 하나다. 여행의 맛은 숨은 꽃을 찾는 데 있다. 내내 드러난 꽃들이나 쳐다보다가 "숨은 꽃' 한 송이 찾지 못하고 떠나버린다면 그처럼 밋밋한 일이 또 있을까. 

이제 영국사의 가을을 들여다보려면 일 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꽃이 피고 지고, 다시 잎이 생겨나고 지는 무상을 겪은 후에야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영국사 은행나무에 작별 인사를 고한다. 부디 더욱 아름답고 우아하게 늙어가시기를.


태그:#천태산 , #영국사 , #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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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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