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다가동을 지나가다 보면 다가동 우체국 사거리에서 낯선 차량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외제차인가 싶어 차 뒤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왼쪽에 적힌 회사명은 'HYUNDAI(현대)', 오른쪽에 적힌 차 이름은 'PONY2(포니2)'다. 1982년에 첫 출고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현대자동차의 그 포니2다. 차량 교체주기가 많이 늘어났는데도 6년 5개월이라는데, 아직도 단종된 지 20년이 돼가는 차를 계속 타는 사람은 누구일까?

포니2에 타고 있는 곽효무 할아버지
 포니2에 타고 있는 곽효무 할아버지
ⓒ 선샤인뉴스

관련사진보기


바로 다가동에서 한약방을 운영 중인 곽효무(65)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올해로 26년째 포니2를 타고 있는 '단일 차종 최장 운전자'다. 작년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선정한 '한 차량 가장 오래 탄 고객'으로 선정돼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하기도 했다.

82년 9월, 포니2를 만나다

포니2는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구입한 자가용이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이 차가 너무 정이 들어서 아끼고 있는 거야. 안 팔고 계속 간직할 거야.”

포니2와 할아버지의 인연은 지난 8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자가용은커녕 포장도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중교통도 열악했다. 한약방을 운영하던 할아버지는 전국 곳곳을 다니며 약재를 구입해야 했지만 버스는 너무나 불편했다.

“그 때는 약재를 사러 진안이고 무주고 여기저기 다녀야 했어. 버스를 타려니까 배차시간도 1~2시간에야 한 대씩 있고, 타고 나서도 너무 불편했어. 한 번은 진안까지 가는 동안 버스가 6번이나 펑크가 난 적도 있었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경운기를 얻어 타고 온 적도 있었어.”

교통이 불편하니 약재를 구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자가용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 때 당시로 650만원 줬어. 내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 하는데 너무 효율성이 떨어져서 큰맘 먹고 구입한 거야.”

할아버지가 차를 구입할 시기엔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포니2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그런데 차가 있으니까 좋긴 좋더라구. 어디 다니기도 편하고. 처음에 차를 사니까 교통경찰들도 와서 구경하고 그랬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경하려고 모여들었어. 영화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니까.”

할아버지는 유명인이 된 것 같아 “어디서 나쁜 짓도 못하겠더라”며 웃으신다.

할아버지는 여러 가지 취미를 가지고 있다. 서예부터 양궁에, 사냥에, 승마까지 다양하다. 포니2 구입 전에는 말을 타고 거리를 누비기도 했단다. 주위에서 할아버지를 가리켜 '독특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튀고 싶어서”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편해서”였다. 차를 사고 나서는 말을 팔았다.

“내가 차를 살적에 말을 타고 다녔었어. 둘 다 있었는데 차를 택했어. 말이 유지비가 많이 들더라고. 차는 한 달에 4만원 드는데 말은 12만원씩 들었거든.”

말을 팔아버린 순간부터 포니2는 할아버지의 발이 되어 전국 곳곳을 누볐다.

곽할아버지의 포니2는 아직도 '현역'이다
 곽할아버지의 포니2는 아직도 '현역'이다
ⓒ 선샤인뉴스

관련사진보기


26년의 비법, 철저한 차 관리

오후 5시가 되자 할아버지는 주차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주차돼 있는 포니2에 시동을 걸기 위해서다.

“어디 안 가더라도 2~3일에 한 번씩이라도 시동을 걸어줘야 돼. 그래야 고장이 안 나지.”

포니2를 이렇게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있던 것도 다 할아버지의 꼼꼼한 성격 덕분이다.

“지금껏 이 차 타면서 한 번도 사고 난 적이 없어. 딱지 떼거나 견인된 적도 없어. 차 관리를 철저하게 하거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간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니 검정색 포니2가 주차되어 있다. 할아버지의 차는 사람 나이로 쳐도 웬만한 대학생보다 많은 26살이지만 상태는 요즘 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검정색 차체는 깨끗하고 눈에 띄는 흠집 하나 없다. 히터도 있다. 다만 에어컨은 없다. 차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차가 배기량이 작아서 에어컨까지 달면 차가 힘들어해. 히터는 추우니깐 어쩔 수 없지만.”

시트도 깨끗하다. 상태가 좋아 이것저것 고쳐 단 것이 아닐까했지만 하나도 새로 바뀐 것이 없다. 출고될 때의 모습 그대로다. 할아버지는 트렁크를 열고 차량용 걸레를 꺼내 차를 닦기 시작한다.

“차가 안 상하려면 비나 눈, 서리 같은 걸 안 맞아야 돼.”

자식을 어루만지듯 깨끗하게 닦는다. 잘 닦여진 차가 반짝인다. 차 상태가 좋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그랜저 얘기'를 꺼낸다.

“몇 년 전에 경남 마산에 사는 어떤 사람이 그랜저를 한 대 사줄 테니까 포니를 팔라고 했어. 근데 안 팔았어. 그랜저는 돈만 주면 살 수 있지만 이 차는 돈 주고도 못사는 거야. 내가 팔 이유가 없지.”

할아버지는 차를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으신다.

포니2를 운전하면서 돌아다니면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단다. 몇 년 전에는 한 기자가 포니2가 신기하다면서 쫓아온 적도 있었다고. 할아버지는 시동을 건 김에 주차장 한 바퀴를 돌았다. 옛날 모델이라 매연이 나긴 했지만 부드러운 움직임이다. 할아버지가 차에서 내리며 한마디 하신다.

“아직 멀쩡하지?”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처럼

할아버지는 5년 전 쯤 다른 차를 한 대 구입했다. 포니2에 대한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좀 더 아껴 타기 위해서다. 포니2는 1990년 1월에 단종된 이후, 더 이상 차는 물론 부품도 생산되지 않는다. 이 점이 가장 큰 고민이다.

“차가 고장 나면 카센터 가서 고치면 되는데, 부품이 망가지면 단종돼서 고치기가 어려워.”

최근에는 머플러가 고장 나서 서울에까지 주문했으나 구하기가 쉽지 않았단다. 작은 부품조차 귀해져 더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게 됐다.

“차가 귀해져 버렸으니 더 아껴야지 어떻게 해.”

곽할아버지는 “이제는 ‘관리하는 차'로 만들어야 한다”며 “평생 보물로 간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포니2를 평생 간직하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포니2를 평생 간직하겠다고 했다
ⓒ 선샤인뉴스

관련사진보기


곽효무 할아버지와 포니2는 어느 새 반평생을 함께했다. '차(車)'가 아니라 '친구'같고, '자식'같다. 함께 한 세월이 곧 30년이 된다. 흔히 쓰는 말로 “내일 모레면 서른”이다. 혹시 전주 시내 한복판에서 신차들과 함께 달리는 포니2를 만난다면 반갑게 손을 흔들어도 좋다. 아마도 틀림없이 곽효무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동반자일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포니, #자동차, #선샤인뉴스, #전주, #곽효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