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19일 밤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당사를 떠나면서 의원 및 당직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19일 밤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당사를 떠나면서 의원 및 당직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정동영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이 대패했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유례없는 차이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에게 패배를 당했다.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세 요소를 구도·이슈·인물이라고 할 때, 신당과 정 후보는 세 가지 모두에서 우세를 보이지 못했다.

[① 구도] '정권심판'선거에서 어정쩡한 관계... 단일화도 실패

이번 대선은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했다. 보수세력의 두 후보인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60%가 넘고, 이명박 후보에 대해 셀 수 없이 심각한 의혹과 문제점들이 제기됐음에도 정 후보를 2배 정도 앞선 표를 얻은 것이 이를 입증한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번 대선은 보수대세론의 구도였고, 이를 뒤집으면 역으로 '노 정권 심판'과 같은 의미"라면서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가 2006년  5·31 지방선거 이후로 계속 40%이상인 데 비해, 신당은 한번도 15%를 넘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금 더 확장하면, 여론에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주장이 인정된 측면이 있다. 정치컨설팅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이번 선거를 "보수가 (호남 등 지역까지 포함한) 진보의 책임을 물은 첫 선거"라고 표현한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오른쪽)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4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 '버마 민주화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오른쪽)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4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 '버마 민주화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런 상황에서 정 후보는 지난 4월 27일 열린우리당의 진로를 놓고 설전을 벌였던 '청와대 격론’으로 노 대통령과 사실상 갈라선 이후, 후보 확정 직후에는 관계개선을 시도했다가 다시 비판하는 등 대선이 끝날 때까지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했다.

선당 선대위의 최재천 대변인은 사견을 전제로 "노 대통령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찍겠다는 상황에서, 초기부터 확실한 대립각을 세우지 못한 것이 최대의 패인"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유시민 의원 등은 "참여정부 계승을 분명히 해서 지지세력부터 분명하게 결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 실장은 "노 대통령을 안고 가든지 아니면 밟고 가든지 분명했어야 했는데 정리를 못 하면서 노무현 정권 심판이라는 선거 구도에 묶이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그나마 이런 구도에 변화를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카드였던, '범여권 후보 단일화도’ 정 후보가 판의 주도권을 잃으면서 결국 무산됐다. 합치면 이길 수 있는 상황까지 갔다면, 단일화에 대한 압력은 더욱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②이슈] 네거티브성인 BBK만 몰두... '가족행복'도 진보개혁 결집에는 한계

강한 '반 노무현 정서’가 이번 대선의 기본적인 한계요인이었다면, 이를 넘어설 정책과 비전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선거운동 기간 내내 신당이 집중한 것은 BBK의혹사건이었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상대진영을 흔들 수 있지만, 표심을 받아오려면 포지티브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정 후보가 내세웠던 가족행복은 진보개혁세력을 모으기에는 어정쩡한 구호였다. 한귀영 실장은 "가족가치 강조는 전통적으로 보수세력의 개념 아니냐"고 말했다.

신당은 '개성동영'이라는 말을 통해 '평화대통령’론을 내세웠지만 남북관계가 이미 상당히 진척된 상태에서, 이슈가 되기 어려웠다. 박성민 대표는 "정 후보가 오랫동안 평화이슈를 끌고 왔지만, 대북문제가 이슈가 안 되는 상황에서 경제문제를 중시한 수도권 30~40대에게는 호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가 오히려 변화의 이미지를 선점했다. 이는 신당의 대선전략상의 문제점이다. 정 후보의 한 핵심 관계자는 "사실상 다음 날 아침 신문에 어떻게 나오게 할까만 고민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BBK사건 연루의혹 등에 대한 특별검사법안이 1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98명 중 출석의원 16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BBK사건 연루의혹 등에 대한 특별검사법안이 1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98명 중 출석의원 16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③ 인물] 개혁? 중도? 독자적인 색깔 못 보여

1997년 김대중 후보에게는 '민주화의 화신’이라는, 2002년 노무현 후보에게는 지역주의에 대항하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분명하고 집약적인 이미지가 있었다. 반면 정동영 후보는 모호한 이미지였다.

한귀영 실장은 "'이명박' 하면 경제와 추진력의 이미지가 있는 데 비해, 정 후보의 정체성은 개혁인지 중도인지 모호했다"면서 "정 후보의 약점에 대한 조사를 해보면, 정체성 모호와 약해보인다는 점이 지적되는데, 이번 대선에서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박성민 대표도 "정 후보는 노 대통령을 조심스러워했고, DJ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독자적인 색깔을 갖지 못하고 유약하게 비쳐졌다"며 "또 유력후보 중 가장 젊은 후보인데 이 부분도 호소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이 겹치면서 이해찬 전 총리는 선대위 회의에서 "제1당임에도 전혀 대선판을 주도하지 못하고 힘겹게 가고 있다"고 말하는 선거가 됐다.


태그:#대선, #정동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