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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벽체 사이딩 작업이 끝나고 몰딩작업을 남겨논 오두막 전경
▲ 외부벽체가 마감된 오두막 외부벽체 사이딩 작업이 끝나고 몰딩작업을 남겨논 오두막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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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필가 야마오 산세이씨는 무슨 일을 하거나 삶을 통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기쁘고 보람 있는 생활은 '첫째 서두르지 않는다, 둘째 집중한다'라는 원칙을 지키면 가능하다고 하였다.

지리산 오두막에서 기쁘고 보람 있는 삶을 위해 서두르지 않고 수행과 보살행(菩薩行)에 집중한 생활을 하겠다는 나의 생활신조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12월 겨울철에는 대전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봐야 7시이고 오두막에 도착해 공구를 정리하고 일할 준비를 마치면 11시다. 도중에 남원이라도 들려야 하는 경우에는 거의 점심시간이 되어 현장에 도착한다. 오후 5시가 되면 날이 어두워져 하던 일을 중단해야 한다. 결국, 하루에 5시간의 작업시간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계획량의 절반도 못하고 대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야마오씨의 말 뜻을 인생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서두르지 않아야겠지만 하루하루의 일은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부지런히 일에 열중하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대전에서 매 주말을 보낼 음식과 필요한 건축자재를 나르는 집사람 자가용
▲ 화물차 대전에서 매 주말을 보낼 음식과 필요한 건축자재를 나르는 집사람 자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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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가 조금 넘으면 잠자리에 드니 책 읽을 시간이 충분하다. 나는 오강남의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라는 책을 준비했고, 집사람은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준비해 갔다. 저녁에는 피곤해서 많이 읽지도 못하지만 책을 준비해가는 마음은 월동준비를 끝낸 농부마냥 마음이 여유롭다.

이번 주말에 할 일은 지난 주말에 짜놓은 출입문을 달고 바닥 난방공사를 하는 것이다. 집사람이 사온 옛날식 경첩은 암수를 하나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둘이서 들기조차 어려워  문을 달기가 매우 힘들다. 암수가 하나로 붙어 있는 신형 경첩으로 대체하여 다시 시도해볼 것이다.

바닥 난방설비는 전기패널로 시공할 생각이다. 그동안 전기담요를 사용하였으나 이제 싱크대가 설치되었으니 더 이상 전기패널 설치를 뒤로 미룰 이유가 없다. 출입문만 제대로 설치된다면 오늘 중으로 끝낼 계획이다.

외부 벽체 마감자재인 삼나무 루바는 편백나무 루바보다 두께도 두껍고 넓이도 넓다. 외부 합판 위에 부착하려면 기존의 못보다 적으면서 실타카 못보다 조금 큰 못이 필요하다.

지방 도시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어려움은 현금을 내지 않으면 10% 부가세금을 추가로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금을 지불해도 현금영수증을 발행해 주지 않는다. 판매가격도 서울이나 대도시에 비해 비싸다.

 간이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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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에 도착해 한쪽으로 치워 놓은 무거운 문을 달려 하자 집사람의 얼굴빛이 흐려진다. 문짝에 붙어 있는 암톨쩌귀와 문틀에 불어 있는 수톨쩌귀 3개를 동시에 맞추는 작업의 악몽이 되살아난 모양이다. 새로 사온 경첩을 내보이면서 이것은 암컷과 수컷이 붙어 있으니 전 같이 고생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자세한 설명을 하고서야 작업을 시작했다.

실은 나도 무거운 출입문을 달 일이 얼마나 걱정되었던지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떤 문이라도 열고 닫을 때마다 문에 달린 경첩의 모양새와 그 작용을 유심히 보아왔다. 우선 무거운 문을 위한 받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 경첩 한쪽을 미리 고정한 무거운 문을 올려놓았다.

경첩의 나머지 반쪽을 문틀의 정확한 위치에 신중하게 고정한다. 나사못이 너무 약해 약간 걱정하였으나 3곳의 경첩에 24개의 나사못을 박고 나서 문을 움직여보니 훌륭하게 움직인다. 일주일 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던 문짝 다는 문제가 예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이제 밖에 일보러 나갈 때마다 출입구에 막아 놓은 합판의 못을 빼고 다시 박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만든 문이 제대로 열리고 닫힌다. 투박하지만 튼튼하고 분위기 있는 문이다. 집사람이 듣기 거북한 칭찬을 해준다. 매우 흡족하다. 다만, 큰 돌쩌귀를 뺀 자국들이 흉물스럽게 남아 눈에 거슬린다. 문을 닫고 외풍이 없는 방에 앉아 차를 마신다.

내일은 종일 외부 사이딩 작업을 하기로 하였으니 오늘 오후에는 실내에서 전기패널과 선반, 그리고 밥상을 만드는 작은 작업을 하면 된다. 내 기분을 맞춰주려는 듯 오전에 포근하고 좋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거세지고 기온이 내려간다.

좁은 공간을 넓게 쓰기위한 집사람의 착상에 의해 설치된 작은 물건 보관장소
▲ 통창선반 좁은 공간을 넓게 쓰기위한 집사람의 착상에 의해 설치된 작은 물건 보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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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한 집사람의 기발한 감각이 진가를 발휘한다. 2m 길이 통창에 마감을 겸한 10cm 폭 선반을 달았다. 작은 물건들을  선반 위에 정돈하니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방바닥을 어지럽히지도 않는다.

오두막 뒤쪽은 싱크대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물건들을 정리하여 보관할 선반을 만들어 온갖 잡다한 부엌 살림살이 용품을 진열했다. 지금은 창고가 없어 집 짓는 각종 공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산만하다. 곧 공구 및 농기구들을 보관할 창고가 만들어지면 도자기 한 점이나 난 분 하나라도 가져와 목공구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채워야겠다.

이동이 가능하도록 가변식으로 만든 선반
▲ 부억용품 보관선반 이동이 가능하도록 가변식으로 만든 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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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위에 만든 두 단 선반 위쪽에는 술 한두 병을 보관하는 장소를 만들었다.  저녁 휴식시간에는 낮에 힘들었던 작업과 다음날 일정을 의논하며 서로의 고생을 위로할 때 마실 술을 보관하는 곳이다. 나와 집사람은 술을 아주 좋아한다.

두단으로 만들었으며 윗부분에는 술과 술잔을 놓을 자리를 만들었다.
▲ 싱크대선반 두단으로 만들었으며 윗부분에는 술과 술잔을 놓을 자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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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은 많아야 두 잔, 나는 무조건 한 잔이다. 당뇨병 때문에 한 잔 이상 마셔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나와 집사람은 술의 분위기를 즐긴다는 편이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작년에 나와 집사람은 우리나라 정통의 술인 막걸리가 성인병에 좋다고 하여 손수 담아 2개월 동안 거의 매일 저녁 한두 잔씩 마신 적이 있다.

어차피 한 잔씩이니 각자 큰 뚝배기 사발을 골랐고 몸에 좋다는데 물로 희석시킬 필요 있겠느냐 싶어 원주를 마신 것이다. 물에 희석시키지 않은 막걸리 원주는 알코올 함유량이 20%가 넘는다.

2개월 뒤 둘 다 위장에 탈이 났고 위내시경을 한 결과 집사람은 홍반성 위장염, 나는 미란성 위장염 판명을 받았다. 그 후 4차 막걸리 담기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술이 익는 동안을 기다리고 원주를 한 잔씩 마셨던 재미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두막에서 사용할 용도로 제작한 밥상
▲ 다탁과 식탁을 겸한 밥상 오두막에서 사용할 용도로 제작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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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도 서둘러 만들었다. 투박하고 큰 못 자국이 들어나 모양이 매끄럽지 못하지만 각목 위에 합판 조각을 얹어놓고 밥상으로 사용하던 때에 비하면 아주 좋아진 편이다.

나는 이런 실내 가구들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비유하여 엉뚱한 논리를 전개한다. 오두막이 좁고 불편한 공간이지만 처음 여기 올 때의 황무지 타향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나날인가?

또 오두막에서 지내다가 대전집으로 돌아가면 그곳은 얼마나 고마운 우리의 보금자리이던가? 우리에게 맞는 방편이겠지만 이러한 인식은 오두막 짓기에서 출발하였으며 이를 통해 진아(眞我)를 찾아갈 수 있는 길에 이르질 않는가?

힘든 오두막 짓기를 통해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고 이미 부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 오두막을 짓기는 우리에게 맞는 수행이다. 힘들고 어려움이 겹치더라도 시련으로 알고 꿋꿋이 견뎌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나를 집사람은 빤히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면서 이제 그만 하라는 손짓을 한다. 검은 내 속을 다 들여다봤다는 표정이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날고뛰었다는 느낌이다.

머쓱해져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는 오강남씨의 책을 펼치나 종일 작업 때문에 피곤한 나는 곧 잠들었다.

덧붙이는 글 | 실제 생활이 가능한 규모의 목조주택을 짓기 위한 실습과정입니다.



태그:#목수, #오두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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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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