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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6일 과거 노래운동을 했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12월 6일 과거 노래운동을 했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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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네."

1992년부터 5년 동안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대표를 맡았던 김보성(47)씨가 12월 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회의실에 들어서면서 한 말이다. 그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79학번으로 서울대 연극반 출신인 손태도씨,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으로 지금 솔로 활동을 하고 있는 문진오씨, 전교조 서울지부 노래패 '해맑은 웃음을 위하여'에서 활동한 이순이씨, 서울지역대학노래패협의회(서대노협) 출신인 최정배씨, 대중예술평론가로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서태지와 꽃다지> 등을 쓴 이영미씨 등 노래운동판에 있었던 많은 이들이 이날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인사를 하며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했다. 이순이씨는 지금 교직을 그만 두고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고 인사를 했다. 대학노래패 운동을 한 고경미씨는 "포항에서 올라왔다"고 말해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건축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음악평론가인 김형찬씨는 "과거 부산에서 노래패 활동했다"며 자신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들이 이 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기념사업팀이 최근 <2007 노래는 멀리멀리>(1987-1989)를 펴내면서 보고대회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사업팀은 1987년부터 89년까지 민중가요 노래책에 실린 악보 333곡, 가사 158곡을 뽑아 책에 담았다.

왼쪽부터 김창남, 문진오, 김보성씨.
 왼쪽부터 김창남, 문진오, 김보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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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팀은 당시 민중가요 현장에 있었던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광야에서'를 작곡한 문대현, '전대협진군가'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작곡한 윤민석, 노래극 <노동의 새벽> <노래판굿 꽃다지> 등을 연출한 박인배,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건용 교수 등이 이번 책자 발간에 도움을 준 구술자들.

사업팀은 구술과 채록연구자로 이번 조사 작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보고대회 참가를 요청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참가하지 못했다. 사업팀 관계자는 "김민기 선생을 모시고 싶어 연락드렸다. 거기 열심히 하고 나는 학전(김민기가 대표로 있는 극단)에서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완곡히 거절하시더라"며 참가하지 못한 이들의 근황을 전했다.

노래집 제작에서 대표연구원으로 참여한 이영미씨는 "활동을 열심히 한 사람일수록 물건(테이프)이 없었다"면서 수집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운동가들은 보안 유지를 위해 중요한 물건을 버리거나 태우는 습관이 있었다"면서 "오히려 한 발 짝 옆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더 잘 보관하고 기억한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이라고 말해 사람들 웃음을 자아냈다.

80년대 후반 민중가요를 집대성한 책 <2007 노래는 멀리멀리>

<2007 노래는 멀리멀리>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나온 책이다. 지난해는 1977년부터 1986년까지 민중가요를 정리했다. 사업팀은 올해 책자를 만들면서 1987년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가 발행한 <메아리 8집>을 비롯한 노래책자 42권, 팸플릿 160권 등 1만2228쪽, 정태춘 공연 '누런 송아지', 노래를 찾는 사람들 공연 등 민중가요 음원 1944곡을 디지털화했다.

제작처는 대략 네 종류. 서울대 '메아리', 서강대 '맥박', 경원대 '까치마당', 숭실대 공대 학생회, 동덕여대 제20대 총학생회, 고려대 '노래얼', 연세대 중앙노래패 등 대학 노래패와 학생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문화국 음악분과, 시티은행 노동조합 문화부 등 노동조합, 노동자노래단, 노래를 찾는 사람들, 전국노동자문화운동단체협의회 등 전문문화단체, 윤민석 등 작곡가로 나눌 수 있다.

1차 노래집에 비해 널리 알려진 곡들이 많은 편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마을 등 인기 민중가요 그룹과 윤민석과 김호철이라는 쟁쟁한 민중가요 작곡가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흩어지면 죽는다',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 '한열아 부활하라', '전노협 진군가', '타는 목마름으로',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동지여 내가 있다', '너를 부르마',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 '저 평등의 땅에',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 푸르른 솔아',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등이 이번 노래집에 실렸다.

재미있는 점은 1집처럼 민중가요 외에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실린 점이다. 남궁옥분이 부른 '꿈을 먹는 젊은이'를 비롯 김세환이 부른 '길가에 앉아서', 라나 에 로스포가 부른 '사랑해', 임종님과 들고양이들이 부른 '십오야', 리리 시스터즈가 부른 '짝사랑' 등이 실렸다. 이유는 당시만 해도 민중가요노래책에 학생들이나 노동조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를 다함께 실었기 때문이다.

대중가요 외에 동요도 여러 곡 실렸다. 돌림노래인 '돌과 물'을 비롯 '둥글게 둥글게', '섬집아기', '앞으로', '텔레비전', 전래동요 '볕나라' 등을 볼 수 있다. 민요도 많이 실려 강원도 민요 '정선아라리', 제주도 민요 '이야홍타령', 경북 예천 민요 '에이용', 경상도 민요 '징금이타령', 진도민요 '강강술래' 등을 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곡은 '건국행진곡'. 월북작곡가 김순남이 1945년 작곡한 해방가요로 김순남이 강장일과 공동발의로 음악가대회를 소집하여 조선음악건설본부를 결성할 때 지은 노래다. 칠레곡인 '리베르타'라는 곡도 있는데, 이 노래는 프랑스 가요제에서 발표한 노래다.

연대 앞 카페 '씨저스' 벽 낙서에 윤민석이 곡을 붙인 '추운 이 겨울에'나 '현대중공업 서울결사대 격문'에 김호철이 곡을 붙인 '진짜 노동자2', 지하철 노조 조합원이 쓴 가사에 김호철이 작곡한 '해방역에 닿을 때까지'는 가사 출처가 재미있다.

'고 양영진 열사 추모가' '이석규 추모가' '이한열 추모가' '김의기 열사 추모곡-일어나 동포여' 등 당시 시위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열사들을 추모하는 곡도 몇 곡 있다. 단 인물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점이 아쉽다. 부산대생이던 양영진은 1988년 전방 입소 거부 투쟁을 벌였고, 방위병으로 입대한 뒤 1988년 10월 10일 학교 재료관 5층 난간에서 투신, 목숨을 던졌다. 이한열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이석규는 대우조선 노동자로 그의 죽음은 8월 노동자대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청산리 벽폐수'...민중가요의 맛 '풍자'

1987-89년 민중가요를 담은 노래책 <노래는 멀리멀리>
 1987-89년 민중가요를 담은 노래책 <노래는 멀리멀리>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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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노래 가사를 읽는 재미는 역시 '풍자'에 있다. '이웃집 순이'라는 곡을 살펴보자.

"이웃집 순이 우리 아빠 보고 할배라고 불렀다. 잠이 안온다 내일 아침 먹고 따지러 가야겠다."

손풍산이 글을 쓰고, 이일권이 곡을 지은 '거머리'라는 곡은 불로소득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부자영감 논에서 놀고먹는 거머리 거머리 배를 찔러라 찔러라 찔러라"라는 게 가사 내용이다.

김민기가 작사 작곡한 '건달행진곡'은 성적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 마음을 대변한 곡이다. "제발 제발 제발 툭툭 때리지 좀 마세요 무슨 칠판 지우갠가 뭐 이건 하면 안돼 저것도 하면 안돼 그저 뭐든지 안돼 밖에 모르시나봐"라며 학생을 칠판지우개에 비유했다.

'공장엔'이라는 곡은 한편으론 서글프다. 회사 급식 반찬이 하루 종일 단무지라는 내용이다.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불과 20년 전 공장 식단이 그랬음을 알 수 있다.

'청산리 벽폐수야'라는 테이프 이름도 재밌다. 이 테이프는 '청산리 벽계수야'를 살짝 비틀었다. '내가 한 살 때'라는 곡은 과장이 심하지만, 그 과장 때문에 싱긋이 웃게 만든다.

"한 살 때 한 살 때 우유를 줬더니 막걸리를 달래 / 두 살 때 두 살 때 사탕을 줬더니 짱돌을 달래 / 세 살 때 세 살 때 악수를 하쟀더니 스크럼을 짜네 / 네 살 때 네 살 때 콜라를 줬더니 꽃병을 달래 / 다섯 살 때 다섯 살 때 연필을 줬더니 각목을 달래…"

이번 책자 총괄담당을 한 서정민갑(대중음악평론가)씨는 "자료를 조사하는 게 아니라, 그 분들의 정신을 담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소회를 밝혔다. 이어 "문승현씨 같은 경우 워낙 관련된 곳이 많이 10시간이나 인터뷰했다"며 이번 노래집 발간에 도움을 준 구술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편 사업팀측은 내년에 1990-1992년 민중가요 자료집을 발간하고, 민중가요쪽 정리가 끝나면 민중연희, 민중미술 등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민중가요, #노래는멀리멀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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