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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공원 뒷편에 있는 박물관. 그림같이 아름답다.
 성해공원 뒷편에 있는 박물관. 그림같이 아름답다.
ⓒ 조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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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 아름다운 항구도시 대련에서 맞은 아침은 상쾌하였다. 어젯밤 단동에서 대련까지 태워다 준 기사가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어서 흥정이 잘된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루 동안 대련관광을 도와주는데 500원으로 흥정을 하려 하였는데 기사는 650원을 불러서 흥정이 성사되지 않았었다. 기사가 온 것으로 보아 그리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제 타고 간 봉고차가 아닌 다른 봉고차를 타게 되었다. 단동기사는 잘 가라는 인사를 거듭하며 봉고차에 우리 일행을 밀어 넣었다. 기사 한 명과 조수석에 또 한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다. 관광가이드가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를 하자 그들은 ‘돈은 필요없다’는 말을 하며 잠시 후에 또 한 명의 여자를 태웠다. 꽤 세련되고 깔끔하게 생긴 여자분이었다.

우리 일행이 가고 싶어한 곳은 여순감옥이었다. 그러나 여순감옥은 관광객이 많은 여름 한 철에만 한시적으로 개방을 할 뿐더러, 외국인들은 절차가 까다로워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곳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그들이 이끄는 대로 포대(炮台)로 향했다. 그곳은 일본과 러시아군이 맞서 싸운 전쟁터였다. 해발 197미터에 자리 잡은 이곳에는 전쟁 당시 쓰였던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련 시내와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30분 정도 산을 오르내리니 몸도 마음도 가뿐해진 것 같았다.

이어서 관람한 곳은 ‘세계화평공원’이었다. 그들은 ‘포대’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외국인처럼 한국말을 쓰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이었다. 외국인은 관람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외국인이 관람할 수 없는 세계평화공원이라니! 황당하였다. 관람료는 50원이나 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 앞에서. 김상무님과 김교수님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 앞에서. 김상무님과 김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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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에 기여한 세계 각국 지도자의 동상이 진열되어 있었다. 반갑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도 있었다. 힘 있게 오른팔을 들고 뭔가를 역설하는 듯한 예의 그 표정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었다. ‘김대중 선생님’이라며 한마디씩 하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여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으로’라는 세계화평성시(世界和平聖詩)도 있다. 짓궂은 이 교수님은 ‘김정일’의 동상도 있는지 확인한다며 96개국 정상들의 동상을 하나하나 보았다. 그러나 김정일의 동상은 없었다.

바닷가라 그런지 몹시 추웠다. 황량한 세계화평공원을 찾은 관람객은 우리 일행 외에는 없었고, 동상 외에는 달리 볼 만한 것이 없었다. 공원 한쪽에 있는 놀이기구를 보니 더 썰렁하였다. 그렇지만 공원을 끼고 있는 해안선은 참 아름다웠다. 여름에는 피서객과 놀이기구를 타는 어린이들로 쾌 북적거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그들은 여순에 있는 ‘역사박물관’과 ‘뱀박물관’을 추천하였지만 중국통인 이 교수님은 안 봐도 될 것 같다며 대련 시내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자고 하였다. 그들은 여러 번 박물관 견학을 추천하였다. 아니, 강권을 하였다. 가는 길에 여순감옥을 지나쳤다. 지나가면서 ‘이곳이 여순감옥이다’는 말도 없이 그냥 지나쳐서 사진도 한 장 찍지 못하였다. 감옥 앞에서 차를 멈추면 안 된다는 말만 하였다.

잠시 후에 허름한 식당 앞에서 봉고차가 멈췄다. 우리는 분명히 깨끗한 대련 시내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겠노라고 몇 번 이야기 했는데 그들은 우리의 요구를 단번에 묵살하고 여순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게 했다. 음식값은 연대보다 갑절이나 비쌌다. 기가 막혔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 아침부터 일어난 일을 정리해 보니 분명히 ‘중국 여행단에 팔려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동 기사가 대련 관광단에 우리를 넘긴 것이었다. 중국통인 이 교수님도 혀를 차며 분노하였다. 올해 3월부터 ‘나홀로 여행’을 줄기차게 시도했던 김 교수님이나 나 역시도 이런 일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봉고차는 또 한 번 멈추었다. 우리에게는 말도 없이 진주를 파는 기념품 가게에 간 것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나는 움직이기도 싫고, 물건을 사는 것에도 흥미가 없어 차 안에 있겠노라고 하니까 억지로 내 등을 떠다밀며 진주 가게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진주를 파는 사람들도 물건을 팔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여자 가이드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 대련으로 들어가서 성해공원(星海公園), 중산광장까지 둘러보고 저들을 떼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저들한테 끌려다니다가는 저녁 배를 타기 전까지 저들이 짜 놓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일 것 같아서였다.

성해 공원의 화표광장.
 성해 공원의 화표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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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공원은 규모가 굉장하였다.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원이라고 한다. 공원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청소년, 연인끼리 가족끼리 산보하는 사람 등 아주 많았다. 푸른 바다가 보이고, 마천루가 둘러 있고,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뾰족한, 이국적인 박물관이 멀리 배경이 된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대련의 백년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1999년에 백세 이상 된 노인, 어린이, 각계각층의 대표 인물 1000명의 발자국을 조형화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해공원의 한 가운데 있는 화표광장도 근사하였다. 화표는 기둥모양의 표식이다. 이것은 요순시대 때 백성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처음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신문고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화표의 밑부분인 저좌(底座)에는 여덟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고, 몸통인 주신(柱身)에는 아름다운 채색룡이 새겨져 있다. 화표 꼭대기에는 개 모양의 짐승이 조각되어 있었다. 이러한 화표는 북경, 심양, 개봉 등의 공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중국 건축 양식의 하나인 듯하다. 세련된 도시적 감각과 깨끗하고 이국적인 신선함을 아울러 갖춘 성해 공원과 바닷가의 풍광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전혀 중국적이지 않았다.

성해 공원 주위에는 세련되고 이국적인 건물들이 많다.
 성해 공원 주위에는 세련되고 이국적인 건물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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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공원에서 즐거워하는 아들
 성해공원에서 즐거워하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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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공원을 둘러본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중산광장으로 향했다. 우리를 태워다준 그들에게 “더 이상의 안내는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들은 중산광장에 도착하기 전에 또 어떤 건물 앞에 차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입장료가 30원인데 10원까지 할인해 줄 테니 가서 보라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인데 대련 시내가 다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도 좋고 당신들도 좋은 것 아니냐’는 노골적인 말까지 하면서 우리를 유도하였다. 그러나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우리는 중산광장에서 짐을 챙겨 봉고차에서 내렸다. 속이 후련하였다. 중국통인 이 교수님과 중국어는 몰라도 중국여행에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는 김 교수님도 졸지에 이렇게 당하였는데,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오늘 우리가 당한 것처럼 중국 관광단에 팔려 끌려다녔을지 상상이 되었다.

중산광장 주위에 있는 고전적인 건축물들이 인상적이다.
 중산광장 주위에 있는 고전적인 건축물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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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시내 중심에 있는 중산광장. 둥근 광장을 중심으로 팔방으로 길이 나 있어 차량 통행이 많은 번화가였다. 광장 주위에는 호텔과 은행이 대부분이었는데,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인상적이었다. 학구적이고 박학하신 김교수님께서는 벌써부터 전자사전을 꺼내서 ‘로코코 양식’, ‘바로크 양식’, ‘르네상스 양식’ 운운하면서 건축물과 건축 양식을 확인하고 계셨다. 지긋하신 그 연세에도 여전히 세상과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늘 수불석권(手不釋卷)하시는 모습이 곁에 있는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우리 일행은 깨끗하고 맛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청도 맥주를 마시면서, 여권을 잃어버린 일, 아들 잠바를 단동에 놓고 온 일, 얼떨결에 중국 여행단에 팔려 끌려다닌 이야기를 하며 단동, 대련 이틀간의 답사를 마무리 하였다. 대련에서 연대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내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중국인의 모습을 본 것도 기억될 것이다.


태그:#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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