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25일 동안 매일매일 기록한 12월 일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25일 동안 매일매일 기록한 12월 일기
ⓒ 김윤주

관련사진보기

"야호! 35일 남았다~~~~~!"

12월이 다가오면서 매일 매일 크리스마스까지 남은 날들을 세고 잠드는 6살, 9살 두 딸을 위해 특별한 달력을 만들었다. 

아이들 방 벽에는 각자 자기 소유의 작은 화이트보드가 하나씩 걸려 있어서 평소에도 기념할 만한 일이나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각자 기록 하거나 그림을 그려넣는다.

어느 날인가 부터는 이 보드에 숫자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까지 남은 날짜를 세며 적고 있었던 것. 그러더니 또 어느 날부터는 매일매일 그 날의 캐롤을 골라 제목이나 가사를 적어 넣고 있는 두 딸. 밤에는 동생이랑 언니랑 나란히 앉아 그 캐롤을 부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를 향해 달려가는 매일매일의 설렘을 꼬마들이랑 함께 기록해 보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리고는 바로 특별한 달력 만들기 작업 시작!

미술용품점이나 사무용품 가게에 가면 신기하고 예쁜 소품들이 넘쳐나는 미국땅이지만, 집 책꽂이 한 켠에서 잠자고 있던 빈 노트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마침 종이 재질이 도톰한 것이 아주 맘에 드는 까만 노트가 놀고 있었다. 한국에 들어가는 친구가 주고 간 노트인데 한 2년간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고 있었던 것. 마침 내지가 딱 13장. 한 면에 하루씩 날짜를 적으면 26일. 크리스마스까지 25일치을 담아내기에 딱 적당했다.

날짜는 뭘로 적을까 고심하다 역시 또 쓰다남은 폼페이퍼를 찾아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계집아이 둘이 있는 집이다 보니 구석구석 쓰다남은 미술 재료들이 넘쳐났다. 기왕이면 크리스마스 색깔로 빨강이나 초록이면 좋겠는데 얼마 전 둘째딸 생일날 쓰고 남은 분홍색 계열만 잔뜩 있다.

집에서 잠자고 있던 까만 노트에 폼페이퍼를 오려 숫자를 만든 후 한 면에 하루씩 날짜를 붙였다. 자유분방한 모습의 탁상 달력 완성.
 집에서 잠자고 있던 까만 노트에 폼페이퍼를 오려 숫자를 만든 후 한 면에 하루씩 날짜를 붙였다. 자유분방한 모습의 탁상 달력 완성.
ⓒ 김윤주

관련사진보기


아쉬운 대로 그 중 색감이 희거나 은색 계열에 가까운 분홍색 종류로만 골라내고, 숫자를 오리기 시작했다. 1일부터 25일까지 수많은 숫자를 오려내다 보니 나중엔 가속이 붙어서 숫자들이 가위 끝에서 팍팍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완성된 건 없는데 오려낸 숫자들을 정리하면서 우리집 두 딸은 벌써부터 신이 났다.

날짜를 붙일 땐 각 면마다 가지런히 붙일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좀더 낫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뒤죽박죽 붙여 넣었다. 어떤 숫자가 제일 예쁜지 경연대회도 해 가며 날짜 붙이기를 다 끝내고 나니 얼추 탁상 달력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이름도 붙였다. 크리스마스 일기! 매일매일 무슨 얘기를 쓸 건지 무슨 사진을 붙일 건지 재잘거려가며 '달력'을 넘겨보는 딸들의 기대가 보통이 아니다.

12월 첫날은 빨강색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미리 잔뜩 내 봤다.
 12월 첫날은 빨강색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미리 잔뜩 내 봤다.
ⓒ 김윤주

관련사진보기


12월 첫날. 크리스마스 분위기 낸다고 오래된 카드 뒷면에 있던 빨강색 종이를 오려 첫 페이지 장식을 했다. 마침 그 날은 친구들 생일 선물 사러 쇼핑도 나가고,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이기도 하고, 큰딸 피아노 연주회도 있던 날이라 채울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

뜨게질로 즐거웠던 3일 저녁 일기.
 뜨게질로 즐거웠던 3일 저녁 일기.
ⓒ 김윤주

관련사진보기


3일의 주제는 뜨게질. 학교 다녀온 꼬마들 둘이 갑자기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어설픈 뜨게질을 하는데 그 모양이 하도 깜찍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과 일기를 간단히 적은 후 꼬마들이 완성한 뜨개질 작품(?)을 스프링에 살짝 묶어 주니 까만 달력 일기장이 갑자기 환해졌다.

마침 그날 딸들이랑 같이 들척인 잡지에 바늘과 실을 이용해 카드를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길래 오려붙였다. 나중에 한 번 만들어 보라고….

(상) 16일은 생일파티, 17일은 컴퓨터 앞에 앉아 과학 숙제에 몰입한 큰딸 (하) 도서관 풍경, 빨간 봉투 안에는 대출 영수증
 (상) 16일은 생일파티, 17일은 컴퓨터 앞에 앉아 과학 숙제에 몰입한 큰딸 (하) 도서관 풍경, 빨간 봉투 안에는 대출 영수증
ⓒ 김윤주

관련사진보기


4일은 학교 마치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한참 동안 놀며 책도 많이 읽고, 대출도 많이 해 왔는데 그 날 일기에는 빨간 봉투를 붙여 그 안에 그 날 빌린 책 목록이 적힌 대출 영수증을 접어 넣었다. 이다음에 커서 이 빨간 봉투를 열어 보며, "맞아! 그때 우리 이런 책을 좋아했지? 와~ 책도 많이 빌렸었네?"라며 추억할 날이 있겠지.

5일은 첫눈이 내려주었고, 그 날 딸들은 산타 할아버지한테 심각하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물론 그 날 일기는 첫눈 사진이랑 딸들이 쓴 편지로 채워졌다.

마침 큰딸 생일도 있어서 하루 날잡아 반친구들이랑 집에서 파티를 했다. 작은 나무 액자를 색칠하고 꾸민 후 사진을 찍어 끼워가는 미술활동을 했는데 유쾌했던 파티 사진들이랑 엄마의 감회를 적어 주니 그 날 일기도 금세 꽉 채워졌다.

(상) 큰딸 발레공연, 사진을 들추면 일기가 나온다. (하) 둘째딸 피아노 연주회
 (상) 큰딸 발레공연, 사진을 들추면 일기가 나온다. (하) 둘째딸 피아노 연주회
ⓒ 김윤주

관련사진보기


12월은 학기말이라 미국 학교에서도 행사가 많다. 피아노, 발레 공연, 소풍 등등.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옴에 따라 동네에서 하는 크고 작은 행사들도 많은데 영화를 보기도 하고, 산타할아버지랑 사진을 찍는 날도 있다. 그런 소소한 행사 사진 한 두 장에 간단한 느낌 메모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꽉 차곤 한다.

사진 없이 일기만 쓴 날.
 사진 없이 일기만 쓴 날.
ⓒ 김윤주

관련사진보기

그렇다고는 해도 매일매일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일이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니어서 어떤 날은 사진 없이 간단한 일기만 쓰기도 한다.

아이들과 그 날 읽은 그림책에서 재미났던 표현들을 적어보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한다.

아이들더러 잡지에서 맘에 드는 그림이나 사진들을 오려 붙여보자고도 하고, 꼬마들이 직접 일기를 쓰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밤에 가족들이 함께 불렀던 캐롤 악보를 붙이기도 했다.

매일매일 학교 식당 메뉴 중 무얼 먹었나 동그라미 표시를 하기도 했는데 우리집 두 꼬마는 이 동그라미 치는 일을 특히 좋아했다.

학교 갔다오자마자 "오늘은요~~~"라며 동그라미, 밤에 잠자리 들기 전엔 "엄마! 내일은요~ 뭐 먹을 거냐 하면요~~~"하면서 수다를 떨곤 했다.

먹거리 얘기는 학교 점심 메뉴에서 그치지 않았다. 온가족이 모여 앉아 만두를 빚은 날도, 아빠가 특별히 스파게티를 만들어 준 날도 12월 일기 속에 있다.

하루하루 그냥 사라질 뻔 한 일상의 순간이 모두다 우리의 '12월 크리스마스 일기'속으로 들어와 곱게 곱게 쌓여가고 있었다.

11일 점심에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핫도그를 멀었다고 동그라미 표시를...
 11일 점심에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핫도그를 멀었다고 동그라미 표시를...
ⓒ 김윤주

관련사진보기

24일 밤 산타 할아버지에게 줄 쿠키를 신나게 구웠던 일, 바삭바삭 구워진 쿠키를 루돌프에게 줄 당근이랑 같이 가지런히 올려 놓고 잠든 이야기, 마침내 25일 아침 산타가 놓고 간 선물을 풀어보며 폴짝폴짝 뛰던 순간의 모습과 이야기로 '12월 크리스마스 일기'는 마무리 되었다.

처음 만들어 본 12월 달력과 크리스마스 일기는 생각보다 의미롭고 소중한 작업이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연신 사진은 찍어대지만 한 번 열어보면 그만, 컴퓨터 안에 내리 쌓여만 가곤 했는데 손으로 사진을 만지며 꾸미며 느끼는 감동은 새로웠다.

게다가 자판만 두드려댔지 펜으로 글씨 쓸 일 좀처럼 없는 요즘, 25일 동안 매일매일 꾹꾹 눌러 일기도 쓰고 편지도 쓰는 과정이 새삼 포근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남편은 내년 달력은 아예 모두 '필사본'으로 우리끼리 만들어 보잔다.

평온한 하루하루가 되길 소망하며...
 평온한 하루하루가 되길 소망하며...
ⓒ 김윤주

관련사진보기

6살, 9살 딸내미들이랑 함께 채워온 12월 달력은 지금도 식탁 옆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다.

크리스마스야 벌써 지나버렸고, 마침내 12월도 끝나가고 2007년도 저물어가지만 우리 가족의 12월 일기는 당분간은 계속 그 자리에 세워져 있을 듯하다.

아이들은 지금도 문득문득 그림책 보듯 그 일기를 들척이며 재잘거리곤 한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산타를 꿈꾸는 것도 다 한순간일 텐데, 먼 훗날 징그럽게 자라 버린 딸들이랑 살다가  문득 세상에 하나뿐인 2007년 12월 이 달력을 꺼내 보게 되면 얼마나 감회가 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달력 응모글



태그:#달력, #크리스마스, #12월, #다이어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