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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로 들어가는 길목 작은 포구, 잔잔한 바다 위로 검은 오리발이 하늘을 향해 쏟아 오르더니 어느 순간 밑으로 사라진다. 물수제비처럼 퍼지던 물결을 뚫고 수경을 쓴 잠녀가 불쑥 나타난다.

 

수경 속 잠녀의 얼굴을 본 순간, 놀란다. 오랜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 잠녀의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다. 숨비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할머니 잠녀. 그 고난한 삶이 바다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할머니가 물 속에서 건져 테왁에 담는 것은 해삼이다.  작은 고기잡이배 두 척이 여수엑스포의 성공을 기원하는 깃발을 달고 바다에다 세월을 묻어버린 나이 든 잠녀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바다가 잠녀인지, 잠녀가 바다인지 그 경계마저 사라져 버린다.

 

 

2007년 세밑, 바다의 두 얼굴

 

머지않아 이곳에 각종 전시관과 이벤트시설 등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장이 만들어진다. 여수엑스포의 주제는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다. 여수엑스포의 경제적 효과가 10여 조, 부가가치 4조, 고용창출효과가 8만 9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엑스포의 주요 행사는 여수신항을 중심으로 개최되지만 그 파급 효과는 순천, 광양을 넘어 인근 서남해역까지 확산되길 기대하고 있다. 바다와 연안의 가치에 관심이 높아질 무렵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의 원유유출로 바다와 어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7년 세밑 우리나라 ‘바다의 두 얼굴’이다.

 

 

여수엑스포는 국제적으로 해양과 연안의 역할 및 위기 인식과 극복, 문화적 다양성 교류, 국내적으로 해양 산업․기술의 발달과 지역균형발전, 지역적으로 여수를 중심으로 해양관광의 중심을 꿈꾼다.

 

여수는 광양만, 여수만, 가막만, 순천만, 여자만으로 둘러싸인 반도지역이다. 광양만의 갯벌과 섬 그리고 바다는 제철과 정유산업으로 사라졌지만 나머지는 어류의 산란과 서식처로 어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생활과 생업의 터전이다.

 

여수반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317개의 섬들이 산재해 있으며 가막만과 여자만 등은 잘 발달된 리아스식 해안선과 넓은 간사지로 이루어져 있다. 엑스포의 메인행사장인 오동도 일대는 1968년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경상남도 거제시 지심도에서 여수 오동도에 이르며 6개 지구(거제, 통영, 사천, 하동, 남해, 여수오동도)로 구성된 해상국립공원은 ‘한려해상’이라 부른다. 즉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300리의 아름다운 뱃길을 가리키는 한려수도(閑儷水道)"에서 유래되었다.

 

 

경계가 없는 바다, 삶의 공동체

 

여수엑스포와 함께 주목을 받는 곳은 여수․순천․고흥을 연결하는 여자만과 보성․고흥․장흥을 둘러싼 득량만이다. 특히 여자만에는 람사습지로 지정된 순천만이 있다. 순천만은 지난 2003년 12월에 해양수산부로부터 습지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2004년 동북아 두루미 보호 국제네트워크에 가입하였으며, 2006년 1월 연안습지로는 전국 최초로 람사협약에 등록되었다.

 

여자만과 득량만은 남도의 질펀한 갯살림을 대표하는 곳이다. 겨울철 술꾼들의 입맛을 돋우는 꼬막, 속풀이의 으뜸인 매생이, 찰진 숭어도 이 갯벌과 연안에서 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남도음식의 ‘간’을 맞추는 일도 바다와 연안에서 비롯된다.

 

어디 그뿐이랴 바다와 연안에 기대어 살아온 어민들의 삶은 그대로 신화와 전설이요, 문학이다. 인류가 바다와 더불어 문명의 터를 닦고 진화의 역사를 써왔듯이, 전라도 사람들은 갯벌과 바다에 삶을 새겨왔다.

 

경계가 없는 연안과 바다를 두고 마을과 마을이, 도시와 도시가 다양한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 왔다. 삶의 씨줄 날줄이 그대로 갯벌에 새겨지고 지워지길 수백 년, 전라도 사람들은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삶을 살았고 그대로 자연이 되었다.

 

여수엑스포를 통해 국제적으로 해양환경에 대한 재인식, 국내적으로 해양산업의 발전, 지역적으로 해양관광의 메카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함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덧붙여 지난 한 세기 동안 인간의 삶의 가치를 지배해 온 ‘육지 중심의 가치’에서 벗어나 ‘바다와 섬’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다가 ‘희망’이고 ‘미래’가 되기 위해서다. 2008년은 바다와 섬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원년이 되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남도에서 발행하는 [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수엑스포, #해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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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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