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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나흘 째인데, 괜히 더 바쁘고 마음 뒤숭숭하여 늦은 새해인사드립니다. 새해 첫 날에 첫 그림으로 소개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새해에 감상하면 제 격인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독일, 1774~1840)의 낭만적인 그림으로 올해의 첫 인사를 대신합니다.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사진을 대하는 것보다도 더 실제같은 느낌으로 그림 속,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함께 감상할 프리드리히의 그림들이 그렇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에 압도되어 숙연해지기도 하며, 그 아름다움이 경이롭기도 하고,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오늘의 그림과 글, 그리고 프리드리히의 약력은 아래 목록들을 참고하였으므로 더 관심있는 분들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의 선구자, 프리드리히

1810, Black chalk, Staatliche Museen, Berlin, Germany
▲ 프리드리히의 자화상(Self Portrait) 1810, Black chalk, Staatliche Museen, Berlin, Germany
ⓒ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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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독일 낭만주의의 화가(Romantic painter), 프리드리히는 광활하고 신비한 느낌의 풍경화나 계절을 바탕으로 한 풍경화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이런 그림들을 통해 자연의 힘 앞에 직면한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워주었으며, 낭만주의 운동의 주요관심이었던 숭고한 인상을 확립하였습니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독일, 1774. 9. 5 - 1840. 5. 7) 는 독일의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州)에 있는 도시인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에서 태어났습니다. 1794년에서 1798년까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Copenhagen)에 있는 코펜하겐 아카데미(Academy of  Copenhagen)에서 그림공부를 마쳤습니다.

1798년 이래로는 독일 남동부 작센주(州)의 주요도시인 드레스덴(Dresden)에 정착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낭만주의 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던 1816년에는 드레스덴 아카데미(Academy of  Dresden)에서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1824년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1807년까지 수채화를 주로 그렸던 그는 그 이후로는 전통적인 종교그림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순수한 풍경화나 산의 일출과 일몰 등 매혹적인 독일 풍경과 고딕 전통으로 귀환하였습니다. 해가 갈수록 그의 풍경화에는 상징적 요소들이 점차 풍부해집니다.

1840년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미술교수로 재직하던 드레스덴에서 사망하였습니다. 펜을 이용해 윤곽을 그렸던 그의 초기작품과 중기작품 대부분은 드레스덴, 베를린, 함부르크 등지의 미술관에 많이 소장되어 있으며, 자연풍경에 대한 감응을 더 많이 반영했던 후기작품들은 오히려 러시아 각지에 산재되어 있습니다.  

풍경 소재 가운데에서도 특히 가을, 겨울, 새벽, 안개, 월광 등의 정경을 독특한 고요함과 정적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독특한 화풍은 드레스덴 지방 이외로는 거의 전파되지 않아서 독일화단에서도 잊혀졌었으나, 20세기 초 이래로 재평가되었습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19세기 전반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순수한 독일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습니다.

Oil on canvas, 1822, Musee du Louvre, Paris, France
▲ 까마귀들이 나는 나무(The Tree of Crows) Oil on canvas, 1822, Musee du Louvre, Paris, France
ⓒ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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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canvas, 1830-1835, Private collection
▲ 해넘이, 형제(Sunset, Brothers) Oil on canvas, 1830-1835, Private collection
ⓒ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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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과학혁명과 18세기의 계몽사상이 발전하면서 교회의 압도적인 지배력과 엄격한 교리가 느슨해지기 시작합니다. 18세기 이후의 미술가들은 점차 새로운 종교적 영감에 관심을 돌리게 됩니다. 특히 미국과 독일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에 깃든 신을 묘사합니다.

범신론적 종교관을 표현

낭만주의가 등장하면서, 특히 독일문화에서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와 같은 화가가 대안적이고 주관적인 종교체험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작품에 꽃과 나무, 물 공기 등 자연에 깃든 신성한 존재에 대한 범신론적인 종교관을 표현합니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와 같은 독일 낭만주의 시인처럼, 프리드리히도 "무한"이라는 개념에 매혹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관찰자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시선은 화폭 안의 햇살이나 달빛을 가로질러 수평선에 떠오르는 노을 속으로 사라지며, 마찬가지로 관객들의 시선도 저멀리 노을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의 그림에는 신비한 정신, 위대한 보편 정신이 자연에 스며들어 있으며, 그런 신비감을 경험하고 직관하기 위하여 그는 스스로를 버리는 절제된 생활을 실천합니다. 프리드리히의 완벽할 만큼 고요한 오늘의 풍경그림들은 상징주의가 스며든 영적인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Oil on canvas, 1819-20, Private collection
▲ 달을 관찰하고 있는 두 남자(Two Men Contemplating The Moon) Oil on canvas, 1819-20, Private collection
ⓒ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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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canvas, 1830-1835, Staatliches Lindenau Museum, Berlin, Germany
▲ 달을 관찰하는 남녀(Man and woman contemplating the moon) Oil on canvas, 1830-1835, Staatliches Lindenau Museum, Berlin, Germany
ⓒ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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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canvas, 1822, Nationalgalerie, Berlin, Germany
▲ 바닷가의 달맞이(Moonrise By The Sea), Oil on canvas, 1822, Nationalgalerie, Berlin, Germany
ⓒ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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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폭풍이나 눈덮인 산, 해돋이나 달맞이와 같이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강력한 자연현상에 직면할 때, 경이로움과 함께 무력함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바로 위 세 그림 가운데 위 두 그림과 바로 아래의 두 그림은 같은 장소에서 하루 가운데 다른 시간대의 강렬한 느낌을 그렸습니다.

또한 같은 장소에서 여러 해(1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다른 영감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햇빛이나 달빛과 그림자는 지구의 움직임과 대기 중 수분의 양, 특정 장소의 반사되는 빛의 특성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인해 지속적으로 변화합니다.

그는 동일한 풍경이 여러 시간대의 빛의 조건에 따라 연출되는 차이점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작으로 묘사해냈습니다. 이러한 연작을 그릴 때는 이젤 옆에 한무더기의 캔버스를 쌓아놓고 빛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캔버스를 사용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우주의 섭리를 상징적, 비유적으로 묘사

특히 풍경화에서 빛과 어둠은 그림의 주제를 깊은 상징의 의미로 물들입니다. 밤에서 낮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을 화폭에 담아 유한한 인간의 존재보다 위대하고 영원한 우주의 체계나 신의 계획 등을 비유합니다.

빛과 어둠을 더욱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할 경우, 오늘 그림과 같은 태양은 적극적이고 남성적인 힘을 나타내며, 자연계에 생명을 주는 힘과 에너지로 그려집니다. 반면에 차가운 은빛의 달은 휴식과 잠, 꿈, 정신적 명상과 관련하여 그려지며, 더 적극적으로는 죽음의 시간을 나타내는 밤과 함께 여성적이고 조용하고 억제된 것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작품을 통하여 프리드리히는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존재의 나약함을 상징적으로 동시에 표현하고 있으며, 어둡고 차분한 색조로 그러한 암시를 지그시 억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프리드리히는 독일의 관념주의(idealism, 이상주의)와 낭만주의(romanticism) 개념들을 화폭에 성공적으로 옮겨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Oil on canvas, 1821,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바닷가의 달맞이(Moonrise By The Sea) Oil on canvas, 1821,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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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canvas, 1821,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바닷가의 달맞이(Moonrise By The Sea) Oil on canvas, 1821,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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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canvas, 1818-20, Private collection
▲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여인(Woman Before The Rising Sun) Oil on canvas, 1818-20, Private collection
ⓒ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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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그의 다양한 풍경그림들 가운데에서 해넘이와 달맞이, 그리고 해돋이와 관련한 경건한 느낌의 작품 8점을 감상하였습니다. 광활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의 바다와 수분을 머금은 대기, 무한한 하늘 공간을 묘사한 그림들입니다. 그 안에 묘사된 인물들은 종종 고독한 자태를 보여주며 생각에 잠긴 관찰자로 묘사되었습니다.

오늘의 그림 안에 묘사된 인물들은 한결같이 뚜렷한 윤곽의 뒷모습으로 햇빛과 달빛을 향해 다가서있는 경건한 모습입니다. 자연의 위대함을 배경으로 한 차가운 색채, 밝고 깨끗한 채광, 선명한 윤곽은 깊은 사색과 고독, 인간의 무력함을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숭고의 미학으로 황홀한 전율을 선사한 풍경화

특히 위 그림의 "달맞이 관련 풍경화"는 다른 어느 화가의 그림을 통해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소재이며, 이는 그가 낭만주의 화가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주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기에 충분한데, 이는 그의 자연에 대한 면밀한 관찰력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위엄과 신의 존재를 상징합니다.

그의 저술에서 밝힌 것처럼, 산은 신앙을 상징하며, 지는 태양광선은 기독교 이전세계의 종말을 상징합니다. 또한 나무(특히 전나무)는 희망을 향해 일어섬을 상징합니다. 이런 상징을 통하여 인간과 신이 깃든 자연과의 소통을 암시합니다.

그는 거대하고 신비스러운 자연의 힘에 비하면 인간은 한없이 무력한 존재임을 일깨우며, "숭고의 미학"을 낭만주의 운동의 주요개념으로 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여 후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관념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독일, 1724-1804)가 당시 유럽의 문학과 예술을 탄생시킨 감정을 "숭고"라는 낱말로 기술하였습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당시에는 그의 명성이 쇠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그림을 재평가한 20세기 관객들은 그의 비유적인 표현에 또다시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가깝게는 태안 기름유출 사건이나 경부운하 문제에 던지는 경고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의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경이롭기도 하며, 분명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마음까지 덩달아 숙연하고 경건해지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를 맞아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데에 위 프리드리히의 그림들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저에게도 조용히 계획하고 묵상하며, 새롭게 마음 다잡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무자년, 새롭게 시작된 올 2008년에도 강건하시고, 모두에게 신나고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참고 목록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인명사전(http://www.biography.com), "Caspar David Friedrich and the Subject of Landscape(Joseph Leo Koerner 지음, Yale University Press)", cgfa(http://cgfa.sunsite.dk/friedric/), ARC Museum(http://www.artrenewal.org), "Mark Harden's Artchive(http://artchive.com/ftp_site.htm)",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



태그:#숭고, #해, #달, #미학, #프리드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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