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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전경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전경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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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으로 자연사 박물관에 가다

그동안 학교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 버스를 타면, 매번 내리는 정거장이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이었음에도 언제 한번 가봐야겠다라는 생각만 하고 막상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오늘도 아침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마침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자연사박물관을 물으며 버스를 타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내내 조잘대는 아이들이 귀엽기도 하고 자연사박물관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기에 나 역시 아이들을 따라 내리게 되었다.

200m 정도 걸어 언덕을 오르니 아담한 3층 건물이 보였다. 2005년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3000원의 입장권(어린이는 1000원)을 구매한 후 들어가 보니, 자연사 박물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이곳은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서대문구)가 설립한 '종합' 자연사 박물관이며 천명이 넘는 인원이 동원돼 오랜 준공기간을 거쳐 완성되었고 유아와 초등학생을 주 대상으로 하는 교육 및 전시공간이라고 한다.

3층부터 관람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대략 전시 흐름을 보니 3층은 우주공간에서 지구가 탄생하는 모습이 담겨진 '지구환경관', 2층은 각종 생명체들의 진화과정과 화석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생명진화관', 1층은 환경오염 및 개발로 피폐해진 지구 곳곳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하는 '인간과 자연관' 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 역시 우리가 '박물관'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생각, 즉 '교육적'이긴 하지만 발품을 팔아야 하고 눈으로만 보는 게 대부분이어서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약간의 씁쓸함이 들었고, 홈페이지에 방문해서는 또 약간의 화가 났다. 그래서 결국 오랜만에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중앙홀에 있는 공룡화석. 이제 너무 식상한가?
 박물관 중앙홀에 있는 공룡화석. 이제 너무 식상한가?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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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자연사 박물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당연히 이곳이 정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간인가하는 점이다. 관람하는 동안 몇 번씩 가이드가 있는 아이들 일행과 마주쳤지만, 가이드의 설명에 집중하는 아이들을 찾기 힘들었다. 그도 그런 것이 대부분의 설명물은 어른 키 높이에 맞춰져 있을 뿐더러, 설명 역시 도저히 집중하기 어려운 온갖 학문적 용어(가뜩이나 일본식 조어로 만들어진 학명들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인지!)로 '장식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물관 측은 다양한 최신 전시기법을 활용한 생동감 있는 전시공간을 갖췄다고 자랑했지만, 버튼을 누르면 마치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영상과 음성이 '갑자기' 습격하는 낡은 영상들로 가득한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약간의 번쩍이고 아름다운 보석 광물들(아이들도 보석종류는 줄줄 꿰고 있었다), 거대한 공룡(이곳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생명체인 것 같다)과 코끼리들을 실물에 가깝게 모형화한 곳처럼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시각적이고 화려한 자극에만 반응하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경험한 가장 최신 공간은 입체 안경을 쓰고 영화를 관람하는 소규모 극장이었는데, 공간의 협소함은 둘째치고 내용은 더 황당했다. 무리와 떨어져 길을 잃게 된 꼬마 공룡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공룡(당연히 티라노사우루스다)의 위험을 무릅쓰고 위기를 헤쳐나가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적이기도 한 다른 공룡과는 친구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약육강식의 냉혹함을 가르쳐 주려는 영화가 아닌 이상, 관람 내내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협동을 강조하며 생태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자연사박물관에서 철저히 '육식동물'을 악인화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또 무슨 이치인지!

집에 와서 자연사 박물관의 홈페이지를 살펴보고서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 홈페이지는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철저히 학부모를 위한 '공지'와 '눈요기'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게시판 가운데 '자연사 백문백답'이라는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공간이 있었는데 글 몇 개를 읽어보니 정말 '공무적인' 공간이었다. 하나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Q : 저기, 코끼리 코에 뼈가 있나요? 관람 학습지에 나와있는 문제있데, 빨리 알려주세요.
A  : 코끼리 코에는 뼈가 없습니다.

이건 완전히 코미디다. 질문하는 사람도 다분히 학부모적이고 대답도 얼마나 간결 정확한가!

내가 어릴 적 살던 중소도시에도 소위 '어린이회관' 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주 가던 때가 90년대 초반이었으니 여전히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세계에서 수집했다고는 하지만 '실물'은 하나도 갖춰놓지 못한 '화석', '광물', '곤충' 등 다양한 표본들….

차라리 그곳에는 놀이공원이라도 붙어 있었지만, 이 자연사 박물관에서 아이들은 어떤 즐거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이 궁금한 점을 집에 가서, 학교에 가서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커서 어른이 되었는데 시설과 패러다임은 여전히 옛날 낡은 모습 그대로다.

자연사박물관 3층 천장에 있는 별자리 전시시설
 자연사박물관 3층 천장에 있는 별자리 전시시설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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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님, 박물관 운영은 잘 되십니까?

1시간 남짓 관람을 마치니, 출구 바로 옆에는 스낵바와 기념품 가게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 역시 절대 저렴하지 않은 패스트 푸드들로 메뉴판이 가득했고(커피 한 잔이 2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연히 내린 커피도 아니었고) 기념품 가게는 그야말로 '파리가 날리는 형상' 이었다.

기념품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아 구경만 하고 있는데 상점 아주머니들이 하는 말소리에 귀가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얼핏 들어보니 이곳이 장사가 안 되는 이유는 위치가 좋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주 고객(?)인 아이들이 방학 숙제를 위해 찾을 만한 박물관이 이 근처에만 3∼4개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여기가 시설이나 화려한 유인책을 갖춘 곳도 아니니 관람만 하고 바로 대절한 차를 타고 떠나버리는 게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박물관 홈페이지에는 운영방향으로 '인력운영, 시설관리 등 모든 분야에 경영개념 도입' 이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혀 있다. 심지어 '경영을 생각하는 박물관'이라는 소제목도 있다. 어르신들이 자원봉사로 안내하고 일하는 모습은 좋아 보였지만, 그것 외에는 어떤 요소가 '시민들의 부담은 줄여주고 기쁨은 크게 하는 박물관'을 만드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생기있는 지식'이 가득한 박물관을 만들어보자

여기서 굳이 외국 박물관의 우수사례나 운영방안들을 인용해서 기죽일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다른 외국 박물관'도 비슷하다는 말 또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자연사박물관에 몇 개인지 찾아보니, 서울과 가장 가까운 '분당'에 있었던 자연사박물관이 얼마 전에 없어져서 헛수고했다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설령 지자체의 차별화 전략이라는, 자연사박물관을 만들게 된 순수하지 않은 전략이 숨어 있다 해도 이런 공간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나마 긍정적 모습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마지막으로 미국의 교육학자이자 철학자인 '화이트 헤드'의 '생기있는 지식'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화이트헤드는 교육에 대한 정의에서 두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데, 첫째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르치지 마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르쳐야 할 것은 철저히 가르치라'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그의 시각에서 비판받아야 할 교사의 유형은 '활용되지 않은 채 사장되는 류의 지식을 대량으로 주입시켜 자기 만족도에 도취하는, 현학적 인간'이라고 보았다. 화이트헤드는 학생들은 이미 충분히 '활기찬 삶은 살아간다'고 말했는데 이런 입장에서 교육의 목적은 당연히 학생들이 자기 능력을 개발할 수 있게 북돋아 주는 것인다.

여기서 도출되는 개념이 '생기있는 지식'인데 이것의 전제는 '생기 없는 관념, 즉 죽은 지식'과 대비되는 사고이다. 1920년에 활동한 화이트헤드이지만, 정보 범람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교육 종사자들에게 던지는 그의 엄중한 경고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박물관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수집된 동식물을 표본으로 제작하는 '표본제작실'이나, '전시되지 않은 표본들을 보관하는 수장고' 등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차라리 이런 공간을 적극적으로 개방하거나 관람하게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좀 더 체험적이고 살아 있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교육방법을 많이 개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태그:#자연사박물관, #생기있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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