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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책이 여러 권 있다.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이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두 가지 선물을 부탁한다. 방문하는 나라의 전통의상 2~4세 크기 한 벌과 그 나라 고유어로 쓰여진 아동용 책을 한 권 사다달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인 내가 읽어줄 수 없는 여러 나라 언어로 쓰여진 그림책을 갖고 놀게 됐다. 옆나라 일본어로 쓰여진 그림책부터 동유럽 나라들의 그림책, 스페인어로 된 책, 캄보디아 말로 쓰여진 책까지.

여담이지만, 서점에 들르지 못해 옷만 사다주는 경우도 많은데 지난 2년 간 아이가 입어본 다른 나라 전통의상은 일곱 벌이나 된다. 평소에도 그 옷들을 입히는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에콰도르 인디헤나들의 전통 옷은 자수 무늬가 화려해서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좋고, 중국 공단 드레스는 볼록 나온 아이의 배를 D라인으로 만들어, 보는 이들의 배꼽을 잡게 한다. 일본에서 사온 유카타에는 방울 소리가 나는 허리띠가 있어 아이가 어디에서 노는지 금세 알 수 있어 좋다.

가장 많이 입히는 옷은 내가 네팔에서 사온 꾸르따 쓰루왈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산지 네팔에서 사온 모자 '토피'는 목 뒤로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만들어졌는데, 이 옷은 봄가을에 감기예방 하기 딱 좋다. 물론 얕은 산에 올라갈 때도 늘 이 옷을 입혔다.     

꾸르따 쓰루왈(위, 아래 옷)과 토피(모자)를 쓰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바람이 부는 날이나 아침 저녁으로 기온 차가 큰 날에는 저만한 옷이 없다.
▲ 네팔 옷을 입은 딸아이 쿠하 꾸르따 쓰루왈(위, 아래 옷)과 토피(모자)를 쓰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바람이 부는 날이나 아침 저녁으로 기온 차가 큰 날에는 저만한 옷이 없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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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살 된 딸아이에게 가장 많은 외국어 책은 역시 영어책이다. 영어를 잘해서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아쉬움 없이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엄마가 영어 교과서를 만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영어 울렁증이 있기 때문에 생긴 바람이다) 영어책을 많이 사주게 된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알파벳을 가르칠 생각은 없다. 그저 세상에는 여러 가지 말과 문자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으면 좋겠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서 즐겁게 주늑 들지 않고 배웠으면 좋겠다. 쿠하가 노래로 따라 부르면서 배우는 영어 오디오 북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베스트 5'를 소개한다.

주변 모든 사물들에게 잘자요~라고 인사하는 <Goodnight Moon>
▲ 자기 전에 읽어주면 좋은 그림책 주변 모든 사물들에게 잘자요~라고 인사하는 <Goodnight Moon>
ⓒ 문진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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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잠이 없는 아기를 키우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제발 이제 그만 자주었으면!'하고 짧은 화살기도를 드리게 된다. 임신을 했을 때 불면증에 시달린 기간이 있는데, 그 때문에 아이가 잠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는 가정환경 때문인지. 두 가지 이유 모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쿠하는 잠이 별로 없다.

보통 아이들이 하루에 12~15시간을 잔다는데, 돌 전에도 낮잠을 포함해 12시간을 채우는 날이 별로 없었다. 요즘도 밤 12시쯤에 자서 오전 8시쯤에 일어나고, 낮에 한두 시간 자주면 다행인 아이다.

돌이 지나면서 의식적으로 틀어준 노래가 <Goodnight Moon>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잘자요 달님>이 있지만 자기 전에는 주로 이 책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초록색 방에 있는 액자, 그 안의 곰 세마리, 달을 뛰어넘는 소, 옥수수 죽 한 그릇, 전화기 등 모든 사물에게 잘자라는 인사를 하는 내용이다. 꼭 끌어안고 전등을 끈 뒤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주면 자장가 중에 제일 효과가 좋았다.

영어권 동요를 주제별로 모아둔 <Wee Sing>은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영어를 친하게 해 주는 좋은 선물이 됐다.
▲ 영어 동요 시리즈  영어권 동요를 주제별로 모아둔 <Wee Sing>은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영어를 친하게 해 주는 좋은 선물이 됐다.
ⓒ Pamela Conn Beall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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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에서 자주 부르는 동요들을 모은 동요모음집 <Wee Sing> 시리즈는 노래를 좋아하는 쿠하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 타면 꼭 "엘리뇨랑 위씽 틀어줘"라고 한다.

윈디 시티가 부른 '엘리뇨 프로디고'라는 가요를 몇 소절 따라부를 정도로 좋아하는데, 차 안에서 일부러 <Wee Sing>을 몇 번 틀어줬더니 그 차에 타면 반드시 그 노래들만 들려달라고 한다. 차에서 들려준 지 1년이 지난 요즘, 쉬운 발음은 조금씩 따라한다. 가사를 따로 가르치거나 부모용 안내 책을 보여주지 않고 그냥 노래만 틀어둔다.

인도의 정글에서 만나는 동물들이 춤을 추는 책.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장애아 등 다양한 사람이 등장해 동물들이 추는 춤을 따라한다.
▲ 춤추며 따라하게 되는 노래 인도의 정글에서 만나는 동물들이 춤을 추는 책.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장애아 등 다양한 사람이 등장해 동물들이 추는 춤을 따라한다.
ⓒ 문진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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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글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동물들이 각자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The Animal Boogie>는 책장을 넘기다가도 팽개치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듣는 노래다. 정글에서 만난 동물들의 춤을 똑같이 따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주연급 조연인 이 책에는 몸을 흔들어대는 곰, 나무에 매달려 스윙하는 원숭이, 쿵쾅쿵쾅 발 구르기 하는 인도 코끼리, 큰 날개 짓하는 독수리 등 여러 동물들이 등장한다. 아이들 피부색도 다양하다.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장애인 등 쿠하가 평소에 보기 어려운 친구들에 대해 엄마가 따로 설명해 준다.

보드북을 보면서 동요로 책 내용을 따라부르고, 원어민이 읽어주는 책 내용을 페이지를 넘기면서 듣는 동화책.
▲ 노래로 배우는 첫 영어 보드북을 보면서 동요로 책 내용을 따라부르고, 원어민이 읽어주는 책 내용을 페이지를 넘기면서 듣는 동화책.
ⓒ 에릭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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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칼이 그린 베어 시리즈 3권도 쿠하가 거의 매일 틀어달라고 하는 노래 책이다.

처음에는 보드북만 보여주고, 어느 정도 흥미를 갖게 된 뒤에 노래를 틀어주기 시작했다. 노래 먼저 들려주면 책을 아예 안 보게 될 것 같아서, 책을 가지고 놀게 방에 아무렇게나 두었다가 며칠이 지난 뒤에 무릎에 앉혀 놓고 읽어줬다.

그런 다음 열흘쯤 지나 완전히 책 내용을 알게 된 후에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책장을 넘기는 신호를 알려주니 며칠 간은 책장을 넘기며 차분하게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브라운 베어, 판다 베어, 폴라베어를 차례대로 틀어달라고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책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음악을 들으면서 따라 부른다.

영어를 언제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이나 교육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원회가 기획하고 있는 영어 교육이 사회적 이슈가 된 지금, 영어 교육에 대한 고민은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아이가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기는보다 그저 영어 공부에 주눅들거나 영어를 못해서 남들로부터 상처 받지 않을 수준으로만 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영어가 재미있는 다른 나라 말이라는 걸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제도 시내 대형 서점에 들러 쿠하가 직접 고른 영어 그림책 세 권을 사줬다. 외국서적 코너에서 아기가 꺼내 보고 맘에 들어하는 책 중에 "세 개만 골라"라고 해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영어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태그:#영어그림책, #오디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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