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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엔 좋아하던 등산을 별로 해보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산을 좋아하는 세 여인이 의기투합해 작정을 했다. 2박3일 일정의 지리산과, 1박 2일의 태백산 눈꽃축제를 놓고 갈등하다가 함백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태백산은 많이 알려져 사람이 많고 민박도 없다기에, 홍보가 많이 안 된 함백산으로 잡았다. 마침 며칠 전에 폭설이 와서 경치도 그만이란다. 일행의 막내가 늘 총무를 맡고 있는데, 이번에도 일정이며 교통편을 책임졌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었다. 친구 남편이 태워다 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기차여행을 고집했다. 모처럼 가족과 떨어져 가정주부로서의 의무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4시간 가량 걸려 도착한 곳은 고한역. 조사한 바에 의하면 버스가 하루에 7번 정도라 했는데, 잘 맞을까? 걱정도 잠시.  버스가 바로 와서 차비 내고 앉자 5분 가량 지났을까? 정암사란다. 정말 눈이 많이 와서 온세상이 하얗게 보인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정암사 일주문이 보인다.

 

거의 10여년 전에 문화유산답사가 한참 붐일때 와봤으니 꽤 오랜만에 다시 와본 셈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제법 북적거렸다. 테마캠프니 뭐니 하면서 여행사, 체험학습 등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다. 등산객들을 싣고 온 관광버스도 몇 대 보이고. 크게 넓지도 않은 절이 번다해보였다.

 

 

일단 우린 기도하러 왔는에 하루 묵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사람 좋아 보이는 총무스님이 친절히 방까지 안내해주신다. 2시반 쯤이니 등산하기엔 시간상 무리일 것 같고 여유롭게 절을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수마노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마당 한쪽 구석에 난로가 있다. 마치 군고구마라도 들어있을 듯한. 스님께 여쭈었다. 사람들이 수마노탑 갔다오면서 추울 걸 생각해 난로를 지펴 놓으신다고 했다. 난로보다도 정암사 스님들의 훈훈한 마음 쓰심이 감동적이다. 탑은 절마당에서도 잘 보인다.

 

정암사의 가장 높은 곳, 적멸보궁 뒤쪽으로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만든 대지 위에 서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마노석으로 만든 탑이라 하여 마노탑이라고 한다. 마노 앞의 수(水)자는 자장의 불심에 감화된 서해 용왕이 마노석을 동해 울진포를 지나 이곳까지 무사히 실어다주었기에 '물길을 따라온 돌'이라 하여 덧붙여진 것이란다.

 

언뜻 보면 마치 벽돌로 쌓아올린 듯 보인다. 적별보궁은 조촐하고 단아해보인다. 오대산 상원사,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석가의 정골사리를 모시고 있는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이며, 창건 설화로 자장율사와 문수보살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저녁법회를 마치고 마당에 내려서선 하늘을 보았다. 주변이 다 산인지라, 절에서 밝히는 불빛 외에는 빛이 전혀 없어 별빛이 너무 맑고 밝았다. 마당에 누워 한참동안 별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추운 탓에 무작정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들어가려는데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탑이 하늘에 떠있었다. 마치 연말연시에 교회에 늘어놓은 꼬마전구 불빛처럼 탑이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사진에 담으려 했지만 카메라가 똑딱이인 탓에 친구 어깨를 삼각대삼아 셔터를 눌렀지만 좋은 사진 못 얻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방에 들어와 자려는데 적막강산이다. 그야말로 '절간같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라는 느끼이 왔다. 방안에 걸린 시계바늘 움직이는 소리, 친구배에서 들려오는 시냇물소리, 숨소리, 이불 젖히는 소리 등 모든 소리가 들려온다. 외부 소리는 전혀 없이. 잠이 안 온다.

 

아침 공양을 마친 후 해가 좀 뜬 후에 걸음을 해야겠다 싶었다. 9시가 좀 넘어 절에서 일하시는 처사님께 인사를 한 후에 함백산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찻길에 간간이 차가 지나가긴 하지만 호젓했다. 눈이 엄청나게 왔다더니 길가에 눈을 보니 족히 1m는 될 듯하다. 산으로 접어드는 순간 별세계같았다. 눈세계.

 

설국. 온통 하얗다. 지팡이로 찔러 보니 한참 들어간다. 눈내린 후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은 고생 많이 했겠다. 우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발길을 따라 걸었다. 인적은 없지만 발자국은 어느 등산로 표시보다도 확실했다.

 

촌스러운 포즈든 짖궂은 포즈든 다양한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눈을 만끽했다. 언제 또 이런 푸짐한 눈을 즐길 수 있으랴! 신의 축복이었다. 기온은 낮았지만 바람이 안 불어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눈이 녹지 않은 곳은 그대로 있어서 발바닥에 닿는 촉감이 울퉁불퉁했다. 때론 빠지기도 하고 일부러 얼만큼 눈이 쌓여 있는지 궁금해 발로 딛는 순간 무릎까지 푹 빠졌다. 2쉼터까지 올라가자 주변 산들의 설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슴 설레는 감동. 마치 360도 파노라마를 보는 듯했다. 한 발짝 뗄 때마다 감동이다. 정상부근에 가니 주목군락지가 있고, 죽은 나무들도 있고 보호 및 치료를 받고 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군락지 둘레로는 철책도 쳐져 있었다. KBS중계소도 보였다.

 

 

드디어 정상이다. 바람이 약간 있었으나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감동의 순간을 커피로 건배를 하며 한바퀴 빙 둘러 보았다. 360도 한바퀴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눈으로 덮힌 경치는 환상 그자체였다.

 

하산길은 무지 짧았다. 30여분 만에 만항재로 내려왔으나 차가 없어 걸어내려오다가 지나가는 승용차 1대를 세웠다. 고한읍내까지 태워다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 하고는 목욕탕을 찾는데 1군데 있는 탕이 하필이면 기계고장으로 쉰단다.

 

 

신발이 젖은 탓에 양말도 젖어 발이 불어 있었다. 할 수없이 기차 타기까지 남은 2시간을 숙박시설에 가서 2만원을을 주고 들어가 샤워를 하고, 가져간 우동을 끓여 저녁으로 먹고, 신발 속엔 종이를 넣어 물기를 좀 빼내고 양말까지 갈아신었더니, 기분은 하늘로 날아오를듯하다.

 

6시 9분에 도착한다는 기차는 10여분 늦게 도착했다. 청량리역에 10시 넘어 도착하기에 해단식은 기차 안에서 맥주로 가볍게 목을 축였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덧붙이는 글 | 정암사, 함백산 가는 길
청량리역에서 고한역까지 무궁화호로 약 4시간 가량 걸린다. 
고한역에서  정암사까지는 버스가 있긴 한데 하루에 몇 번 안다닌다고 한다.
함백산 등산은 정암사에서 20분 정도 만항재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등산로가 보인다.
적조암 시점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이 길로 들어서서 등산을 하는 것이 경치감상을 하기엔 그만이다.
만항재에서 오르면 1시간 이내에 빨리 오를 순 있으나 큰 감흥은 얻기 어려울 듯하다.


태그:#정암사, #함백산, #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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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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