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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4일)이 입춘이라고 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골짜기엔 아직 눈이 가득하고, 마당에 쌓인 눈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봄이 온다고 한다. 봄이 들어오길 바라며 문을 열어 두면 찬 바람만 몰려 오는데 입춘이 되었다고 한다.

 

봄을 찾아 보았지만 봄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전히 발목까지 빠지는 대지의 눈은 녹을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봄의 기운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가리왕산 골짜기. 목이 마른 개는 눈을 핥아 먹고, 뒤늦게 주인이 채운 물은 그릇에 담긴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얼어 붙었다. 이런데도 입춘이란다.

 

눈 가득한 정선 땅도 정녕 봄의 길목에 들어선 것일까. 봄의 기운을 찾아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가리왕산 골짜기는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날선 바람 속에선 어디서도 봄을 만날 수 없었다.

 

큰 강인 동강에 가보았지만 동강은 두터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정선거리에도 봄은 흐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봄은 얼음장 밑으로 몰래 흐르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인간에게 들키면 안 되기에 술래되어 산그늘이나 햇볕은 쬐고 있는 얼룩송아지의 겨드랑이 밑에 숨기라도 했던가.

 

 

봄은 아지랑이처럼 몰래 온다고 했지만 강원도 정선의 들판은 눈밭임으로 아지랑이를 피워낼 재간이 없어 보였다. 봄은 모이를 찾는 장닭의 부리에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나른하게 하품을 늘어 놓는 누렁이의 몸에서도 봄은 느낄 수 없었다.

 

개울에 몰래 숨어 피는 버들강아지, 네가 있어 봄이로구나

 

하다 못해 읍내에 다녀오는 이웃집 할아버지의 지팡이에서도 봄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린아이 오줌발 같은 물기를 만들며 녹아들고 있는 눈물이, 지붕의 눈이 녹아내리며 떨어지는 낙숫물이나 그것이 얼어 붙은 고드름이 봄은 아닐 것이다.

 

산자락을 걸어 올라 나무들을 살폈지만 가지 끝에 머물러야 할 봄 눈은 달리지도 않았다. 하, 이럴 수가. 대체 봄이 어디에 있기에, 눈으로 덮인 골짜기에서 입춘을 맞이 한단 말인가. 기가 막혔다.

 

봄을 찾아 헤매길 두어 시간. 봄의 느낌을 발견한 것은 졸졸 물흐르는 소리를 내는 작은 개울에서였다. 아직 때가 일러 개구리알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개울엔 물과 함께 겨울을 보낸 푸른 이끼가 생명으로 살아 있었다.

 

그와 함께 개울물을 빨아 들인 버드나무엔 뽀얀 솜털을 피워 올린 버들강아지가 눈에 띄었다. 오, 봄. 네가 있어 입춘이로구나. 버드나무는 억센 추위를 밀어내고 봄을 만들고, 더디게 오는 봄을 마중 나가고 있었다.

 


태그:#입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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