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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한누리(가명, 23)양은 그날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수치심과 함께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 당했다는 생각에 불쾌함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그녀는, 동아리 친구들의 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친구의 홈페이지 방명록에 있던 후배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된 것이 화근의 시작.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나 아직은 서로 홈페이지를 왕래했던 적이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후배의 사진첩을 열어보게 되었는데 ‘신기해요’라는 제목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링크되어 있는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고, 자신의 이름과 함께 한때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그리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고 있던 선배들의 이름을 적어 ‘calculate’이라고 표시된 단추를 눌렀다.

 

약 30초 후, 눈 앞에 나타난 결과에 S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터넷 화면에는 사랑하는 이성과의 관계 예측은커녕, 자신이 입력한 명단이 후배의 이메일로 발송되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안내문만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제가 1년 넘게 짝사랑했던 동아리 후배였어요. 많이 좋아했지만, 친한 동기들 빼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게다가 나머지 두 명도 (홈페이지 주인이) 모두 알 만한, 같은 동아리 선배들이었거든요. 그날 밤은 잠도 못 이루겠더라고요. 전화해서 사정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이게 소문이 나느니 차라리 후배한테 부탁이라도 한 번 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더라고요.”

 

“장난” vs “사생활 침해”

 

한누리 양이 접속했던 ‘CrushCalculator’라는 곳은 외국 사이트이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친구들의 짝사랑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이 사이트를 이용하여 그것을 알아내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짓궂은 장난을 해 보고자 하는 방문자들은,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하면 자신만의 고유한 인터넷 주소를 받게 된다. 이 주소를 이메일이나 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 개인 블로그 등에 링크해 두면, ‘희생자’들이 이름을 입력하는 즉시 ‘000’님의 ‘짝사랑자 명단’이 도착했다는 이메일이 도착한다. 이때 자신의 링크로 다시 접속하면 그 명단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당해 본’ 사람들은 처음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곧,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일종의 보복심리와 호기심에, 반대편에 서서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이 사이트에서는 속은 피해자들에게 ‘이제는 당신이 속일 차례’라며 링크 생성을 유도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피해자들은 직접 링크를 만들지 않는 대신, 링크가 게재되어 있는 사진 밑에 “이거 정말 신기하네요!”, “어쩜 이렇게 잘 맞죠?” 등, 다른 이용자를 접속하도록 유도하는 댓글을 남겨놓기도 한다.

 

한 네티즌은 “처음엔 세상 다 산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자신의 짝사랑들을 알고 있는) 친구 입단속 시키고 자신이 직접 ‘낚시질’ 중”이라며 “296명 접속에 240명을 낚았다. 그들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저만 알고 있을 거예요. 장난이죠, 재미있잖아요”라고 말했다.

 

한편, 관심 있는 이성의 ‘명단을 제출’한 피해자들은 당황스러움과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다.

 

피해자 김재민(가명, 24) 군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친구에게 당했는데도 당황스럽고 창피했다”며 “솔직히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생각해보고 이름 적는 것인데, 누가 장난 하겠어요. 정말 진지한 마음으로 잘 생각해보고 적었는데 속은 거라니… 오래 전 일인데 아직도 창피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라며 2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일주일째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는 한누리 양도 말한다.

 

“이게 어떻게 장난이에요. 그 쪽 입장에선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가장 은밀한 사생활 중 하나를 적나라하게 공개 당한 거잖아요. 앞으로 후배들 얼굴 어떻게 볼지…. 동아리에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명백하게 사생활을 침해 당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개인의 ID와 비밀번호 등 ‘수치적’ 정보의 노출에 머물지 않고 ‘마음’의 정보까지도 노출될 수 있는 인터넷 환경. 피해자가 손 쉬운 방법으로 다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상황이 더욱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김명은 기자는 <오마이 뉴스> 7기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피싱, #PHISHING, #CRUSH, #CALCULATOR, #사생활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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