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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유는 '스포츠'가 좋아서였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글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과 다듬을수록 멋져지는 기사를 보면서 내심 뿌듯하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아니,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을 다수의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다니? 나는 기자가 아닌데.

 

편집부에 송고 버튼을 처음 눌렀던 그날, 마치 수능 날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듯 했던 그때의 느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설마 하는 마음과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반반이었으니까. 쿨하게 “기사가 안 올라가면 어때? 나는 상근기자도 아닌데 뭘”이란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받아쓰기 채점을 기다리는 초등학생 때처럼 동동거리고 있었다.

 

“뭐 대단한 거라고”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기자를 꿈꾸는 나에게는 그 어떤 일보다 더 큰 일이었고, 행여나 나의 모자란 부분이 탄로날까봐 두려웠던 마음도 있었다. 안 올라갔더라면 나는 나의 능력에 대한 한탄을 며칠 동안 계속 했었을 것이다.

 

낙서라고 생각했던 나의 글이 처음 빛을 본 순간

 

 

첫 기사 <이것이 대한민국 여자농구!>는 여자농구가 선사한 벅찬 감동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서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을 보고 썼던 기사였다. 편집부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나의 응원 기사는 그날 잉걸로 채택되었다. 낙서라고 생각했던 글이 처음 빛을 본 순간이었다.

 

기쁨도 잠시 내 글에 대한 반응이 알고 싶었던 나는 몇몇 친구들에게 내 기사의 평가를 부탁했었다. 말이 좋아 평가지 사실은,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었다.

 

다들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상근기자들이 쓰는 그런 기사의 느낌은 없지만 나만의 색깔이 묻어 있는 기사라고 평가했다. 나쁘지 않은 평판이었다.

 

그렇게 첫 기사를 시작으로 시간 날 때마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 가며 기사를 만들어 보고 취재 아이템을 생각해 보며 성취감에 취해 있었다. 마감의 제한도 없고, 꼭지의 제한도 없는 나그네 같은 시민기자는 내게 희망 이상의 결과를 갖게 해주었다.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무어가 그리도 창피했는지 가족들에게 “내 기사 읽고 평가 좀 해줘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컴퓨터만 가지고 노는 내게 엄마가 “너 뭐하는데 밥도 안 챙겨 먹고 하루종일 컴퓨터만 해!”라고 걱정 섞인 잔소리를 했었다. 차마, “글 쓰니까 방해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말하면 이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물으실까봐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섣불리 말하기에는 내 능력이 부끄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몰래 먹는 떡이 더 맛있는 법이라고 가족들 몰래 비밀요원(?)인 양 글을 쓰는 내가 왠지 모르게 기특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조금 더 그럴 듯한, 기사다운 기사를 쓰게 될 때 멋지게 말하자고 스스로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비밀요원 행세를 하는 내게 기회가 왔다

 

 

그렇게 비밀요원 행세를 하는 내게 기회가 왔다. 그것은 바로 스포츠 섹션 기획 기사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내가 너무 일을 크게 만든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목을 아우르는 외국인 선수 기획기사에 내심 내가 좋아하는 배구가 빠진 것이 아쉬워 의견을 냈던 것인데, 그 배구를 내가 담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걱정으로 시작했던 기사는 몇 번의 검토를 거쳐 마침내 다른 시민기자님들과 함께 스포츠 섹션 외국인선수 기획기사(<한국 배구의 르네상스 이끈 '꽃미남'>)로 올라가게 되었다.

 

포털사이트로까지 게시된 덕분에 친구의 남자친구가 내 기사를 보고 신기하다며 연락까지 하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제야 이제는 가족들에게 말해도 괜찮겠다 싶어 슬쩍 운을 띄우며 말했다.

 

싸늘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내심 막내딸을 흐뭇하게 쳐다봐 주시는 아빠의 모습과는 반대로 그동안 방안에서 혼자 몰래 떡을 먹었던 딸의 수수께끼를 이제야 풀었다는 듯 엄마의 모습은 개운해 보이기까지 했다.

 

여전히 나는 가족들 몰래 떡을 먹고 있지만, 내가 하루종일 방 안에 앉아 키보드를 만지작거릴 때면 방문을 열었다가도 조용히 닫아주시는 엄마의 마음 씀씀이에 살짝 감동을 받기도 한다. 몰래 먹는 떡 체하기 전에 올해는 좀 당당히 가족들에게 말하고 싶다.

 

“저 지금 글 쓰는 중이에요.”


태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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