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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8일,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 5개 과거사위원회가 모여 '과거사정리 활동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회를 가졌다.
 지난해 11월 28일,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 5개 과거사위원회가 모여 '과거사정리 활동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회를 가졌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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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서는 그간 벼르고 있던 과거사위를 대부분 정리할 모양이다.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을 비판했던 가수 신해철을 두고 언어문화의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왈가왈부한다고 비난했던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글이 생각난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국문학을 전공한 내가 과거사와 관련된 언급을 하려니까 조금 머쓱하긴 하다. 그런데 정치학을 전공한 이경숙 숙대 총장이나 행정학과를 나온 김대중 고문이나 모두 언어문화의 전문가도 아니면서 언어교육에 대해 일가견을 개진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피차 주제넘게 남의 동네 일에 참견하는 셈이어서, 주눅 들지 않아도 될 것 같기는 하다.

과거사 없는 대한민국은 '1%'의 미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지나치게 과거에 매몰되는 것은 그들의 논리대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과거보다 중요한 건 아무래도 미래일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그 미래가 어떤 미래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미래가 구체적으로 제시되기 보다는 수사적인 차원에서 언급되고 있는 까닭에 나름대로 궁리해 보자면, 파란 미래, 희망 미래, 새로운 미래 그리고 함께 가야 할 미래, 밝은 미래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 대한민국 상류층 1%의 미래, 그러한 미래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이제 그만 온갖 과거를 묻어버려도 좋은 것일까, 아니 저들의 오랜 바람대로 과거사위를 모조리 없애 버리면 과거가 정말 지워지는 것일까.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도 눈이 멀게 된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는 자는 또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

이는 1985년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한 구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동안 서독에서는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그들의 범죄에 대해 모르는 척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히틀러와 그 일당일 뿐, 독일 시민계급은 오히려 피해자였다는 사고가 그들을 지배했다.

그러나 망각을 비판하는 지성과 시민적 용기가 살아있었기에 전후 독일은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유럽의 지도적 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언제나 끊임없이 기억되면서 현재화된다. 그런 점에서 과거는 역사를 잉태하고 있다. 아무리 과거의 기억을 망각 속에 봉인하고자 하여도 그것은 전승되고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집단적 기억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불행했던 우리 현대사의 '과거 극복'을 위해 독일의 사례는 매우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일제 강점기의 반민족적 친일 행위에 대해, 한국 전쟁 당시 좌우를 막론하고 저질렀던 비인간적 행위에 대해, 민주화 운동 과정 및 군대에서의 의문사 등에 대해 덮어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한 불행했던 과거를 극복해야만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과거... 비리와 의혹의 종합선물세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파헤쳐 그 과거에 모두 함께 매몰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치유하기 위해서 과거를 엄정하게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거사위원회들의 활동은 늦었고 더디지만 잊혀지고 봉인된 진실들을 수면 위에 끌어올린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것일까. 혹시나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과거사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있어서가 아닐까. 국보위 출신 인수위원장과 국무총리에 이어 새 정부 각료와 청와대 수석들의 면면을 보면 그런 의혹이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할 지경이다.

부동산 투기와 병역 관련 특혜 의혹, 논문 표절과 자녀 이중국적 문제 등 비리와 의혹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만한 그들이 온갖 의혹으로 얼룩진 '과거'를 덮어버리고자 하는 까닭을 이해 못할 건 없겠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논리와 다른 의미에서 '잃어버린 5년'과 '과거로의 역주행'을 미리 감상하는 씁쓸함을 느낀다. 불행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예감이 나 혼자의 궁상으로 끝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태그:#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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