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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게으른 사람이다. 이 글을 시작하려 맘 먹은 게 정확히 서른 살이 되던 지난해 1월. 벌써 1년하고도 2개월이 훌쩍 지났다.

 

당초 '서른살의 다이어리'라는 타이틀로 내 인생 곳곳 발생되는 황당 경험, 30대 여성 동지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을 대책없이 털어놓으려고 했다. 이 글을 보는 이들이 "나는 행운아네" 뭐 그런 정도의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편하게 수다를 떨고 싶었다.

 

이제 제목을 살짝 바꿔(게을러 죄송), 나의 황당망당한 시트콤 인생을 나누고자 한다. 지갑을 잃어버려도, 버스가 안와도, 넘어지고 부딪쳐도, 집에서 계속 사고가 터져도 난 별로 놀라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너무 흔한 일이니까.

 

주변에서 꼭 시트콤 한 편 쓰라한다. 소재 걱정은 없단다. 그저 하루에 한 가지, 있었던 일을 적으면 되니까. 운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게으르고, 덤벙대고, 지저분하고, 뭔가 타이밍을 못맞춰 생기는 일일뿐 누굴 탓하랴~

 

연속 3일째 일이 없다. 바쁠 땐 밤을 잊지만, 한가할 땐 눈 빠지도록 컴퓨터와 대화하는 게 프리랜서 인생. 컴컴한 방에서 은둔칩거하다 드디어, 나의 친구들과 만날 생각을 하니 머리는 무거워도 가슴은 두근거린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다. 음주, 빚, 결혼, 여행, 살사, 사고뭉치 가족, 지저분 떨기 까지…. 할 얘기가 너무 많다.  

 

우선, 간단히 내 소개를 하자면

 

나이:  31살(한국) 그리고 미혼  

직업:  방송작가

가족관계: 딸 셋 중 둘째

혈액형: B형

외모:  큰 키에 덩치좋고, 까무잡잡~

인상:  매우 강해, 소개팅시 성사 가능성 10% 내외

 

[첫 번째 에피소드] 7살 어린 동생 결혼시키기

 

동생이 다음주에 결혼한다. 24살, 꽃다운 나이에 10살 차이 나는 분(?)과. 시작부터 시비조? 이게 내 진심은 아니니 오해마시길 바란다. 축하는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사실 난 일찍 결혼하는 게 꿈이었다. 심하게 감성적이고, 외로움을 많이 타서 누군가의 곁에 딱 달라붙어 있고 싶었다(결국 누군가를 사귀는 게 더 외롭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지만). 하지만 맘처럼 안 되는 게 인생살이 아닌가. 30살 생일날, 혼자 와인 마시며 축구보고,

크리스마스에는 오후 6시까지 여기저기 연락해보다(추했다) 최장 수면 시간 기록했다.

  

지난해 나는 마음이 몹시도 급했다. 소개팅, 선 마다하지 않고 나가며 짝 찾기에 눈이 벌갰다. 이유인즉슨, 세 자매 회합 시 암암리에 정해진 규칙이 있었기 때문.

 

결혼한 언니네 식구랑, 동생과 남자친구, 나… 그렇게 1박2일 놀러간 적이 있다. 동생이 남자친구가 나이도 있으니 당장 결혼해야 겠다고 선포한 것. 나름 고집있는 형부는 (불쌍한) 언니 앞서 가면 식장도 안 들어가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바늘방석이었던 나는 결국 한 가지를 제안하고 만다(입방정).

 

"그럼 내가 1년 안에 결혼 못 하면 너가 먼저 가. 그럼 돼죠? 모두들…."

그렇게 엄했던 분위기는 풀리고 즐거운 술판이 시작됐다.

 

나, 나름 노력했다. 소개팅으로 만난 분, 정말 느낌 없었지만 심지어 사랑하려 노력했다.

좋은 점만 보자고 최면을 걸고 또 걸고. 하지만 느낌 없는 만남, 하루 하루 지날 수록 울화통만 치밀고 마니, 결국 실패! 1년이 다 되도록 주말에 방구들하고 친구하고 있으니 모두들 눈치챘나보다. 어느날 아빠, 엄마가 좋은 옷 빼입고 동생과 함께 나가는 모습 포착. 나중에 알고보니 상견례였다.

 

날짜가 잡히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해지며 해방의 기쁨까지 찾아왔다. 난 1년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기 위해 결혼하려 했던 게 아니라, 동생보다 빨리 결혼하기 위해 남자를 찾았던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사회적 통념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나름 똑똑한 척 해온 나지만 헛똑똑이라는 말이 딱이다. 결국 동생이 먼저 가게 됐고 난 이제 결혼해야 할 이유를 잊었다. 드디어 해방이다. 만만세!(이러면 안될 텐데...쩝)

 

동생 청첩장 문구 써주고, 웨딩촬영 따라가고, 가전제품 사주려 돌아다니고…. 주말마다 심심치 않아 좋긴한데 주변에선 나보고 성격 좋단다. 가끔씩 가슴 한 쪽이 욱신거리지만, 사랑하는 동생 축복하며 보내주고 싶다. 농담삼아(반 진담) "언니를 혼수로 데려가라"고 했지만… 웬 청승. 이제 썰렁한 집에서 부모님과 나, 셋이서 지내야 한다. 왠지 낙오자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내게는 또 다른 출발이다. 일도, 결혼도, 부모 봉양도 모두 건전한 목적으로 실천하련다. 최종 목적이 중간의 과정과 시련으로 인해 변경되서는 안된다. 모르는 것 빼고, 알 것 다 아는 서른 한살의 미스…. 내겐 어떤 내일이 펼쳐질까?

 

P.S. 내일 동생이 짐 싼단다. 이쁜 옷 못 찾게 꼭꼭 숨겨놔야지.  


태그:#다이어리, #노처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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