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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순례길에 나서야 이명박 장로의 귀가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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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강변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말라 비틀어진 물풀 가득한 강변입니다. 강변을 따라 한 줄로 걷는 스님들의 앞과 뒤엔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목사님, 교무님들이 동무가 되어 함께 걷습니다. 거룩한 모습입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이토록 모든 종교계가 하나된 마음으로 길을 걷는 일은 아마 처음이지 싶습니다.

대운하 반대에 나선 성직자들, '생명의 강을 내버려 두라'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조계종과 개신교, 원불교, 천주교, 성공회 소속인 이들 성직자들은 암울하기만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지난 2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대운하 반대 순례길을 나섰습니다.

순례단엔 성직자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단체 회원도 있고, 시인도 둘이나 있습니다. 순례단의 식사와 잠자리를 챙겨야 하는 지원팀엔 평범한 부부도 있습니다. 이들은 올 초부터 살 집을 지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집짓는 일이 급하다 싶지만 생명의 강을 죽이는 짓거리를 지켜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결국 집짓는 일을 뒤로 미루고 부부가 함께 순례단에 합류했습니다.

순례단을 지원하는 팀이 타고 다니는 1톤 트럭은 시골 마을로 장사를 다니는 이동구멍가게와 다르지 않습니다. 트럭 안에는 쌀도 있고 김치를 비롯한 부식들이 가득합니다. 잠자리로 준비한 세 개의 천막도 트럭에 실려 있습니다. 순례단보다 먼저 도착해 식사를 준비하고 순례단보다 늦게 떠나는 이들은 마치 삶터를 잃은 유랑민 같습니다.

이들이 순례길에 오른 지 오늘로 한 달이 되었습니다. 지난 달 12일 한강 하구인 김포 애기봉을 출발하여 대운하 건설 예정지인 한강을 거슬러 올라 양평, 여주, 충주 등을 지나 지금은 낙동강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검게 탄 그들의 얼굴엔 지난 한 달간의 여정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귀와 눈엔 죽어갈 한강과 낙동강이 다 기록되고 저장되어 있습니다.

한 달 동안의 순례길에 함께 한 이들도 많습니다. 순례 구간에 있는 주민들이 바쁜 일손을 놓고 참여 했고, 휴가를 낸 직장인도 있었습니다. 더러는 멀리 부산에서 온 여교사도 있었고, 부끄러운 아비로 남기 싫다는 어느 가장은 부인과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순례에 참가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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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녀님들도 나섰다. 운하 반대 순례에 수녀님들도 나섰다. 누가 이들을 걷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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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들이 운하 반대에 나서는 까닭을 이명박은 알까?

이들만 걷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적 문인들의 조직인 '리얼리스트 100'은 이들보다 앞서 길을 떠났습니다. 김하돈 시인을 대표로한 걸음도 대운하 반대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엔 '생명의 강을 모시기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연대' 소속 회원들이 낙동강을 찾아 갑니다. 이들은 운하 건설 예정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생태계를 작품으로 승화합니다.

그는 강에게 빌었을 것이다
올 한해 벼농사 콩농사 고추농사 감자농사 고구마농사 들깨 참깨 농사 복숭아 농사
잘 짓게 해달라고
자식들 무병무탈하게 자라게 해달라고
그리고 또 빌었을 것이다
올해에도 여강 갈대숲 모래톱에
고라니 오소리 수달 큰고니 왜가리 검은댕기해오라기 종다리 물총새 개똥지바퀴 두루미
누치 피라미 치리 쏘가리 버들치 동자개 각시붕어 모래무지들
그이들 맘놓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여강에 돌아와
우리와 함께 세세년년 살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그때 아주 낮은 목소리
강의 말씀 들려왔을 것이다
경부대운하 건설은
그저 재앙이 아니오 흉측한 범죄요 대범죄란 말이요
아아 우리 어머니의 죽음이란 말이요
그러나 이순을 바라보는 그는
강물께서 흐느끼며 조용히 들려주는
강의 말씀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큰고니 두 마리 푸드득
여강 너머 서쪽 하늘을 향해 고단한 날개를 펴고 있었을 것이다
노을은 또 슬프도록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루가 또 그렇게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 홍일선 시 '우리 이제 강물 앞에 무릎 꿇어야 하리' 일부

환경단체인 녹색연합도 오늘(12일)부터 열흘간의 일정으로 대운하 계획 백지화를 위한 녹색순례에 오른다고 합니다. 대체 누가 이들을 길 떠나게 하는 것인지요. 어떤 사람의 명이 있었기에 스님이 길을 떠나고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교무님과 목사님, 시인 소설가들이 걷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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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의 기도. 부디 생명의 강을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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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억겁의 세월을 흘러온 '자연유산', 누구도 손 댈 수 없어

강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 물려 받은 것이기에 우리도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와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강에 손 댈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상들이나 후손들 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 누구라도 대통령에게 강을 죽이라는 명을 부여한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많은 이들이 강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억겁의 시간을 흘러온 생명의 강에 대운하라니요. 정신병자가 아니고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 않습니까. 정상적인 사람이 그런 발상을 한다면 '뺨'을 쳐서라도 마음을 돌리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례길에 나선 이들만 운하 반대를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지성의 요람인 서울대학교 교수 381명도 나섰습니다. 그들은 지난 10일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모임' 이름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반경제적, 반환경적, 반문화적인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대통령에게 요구했습니다.

시국이 혼란스러울 때 마다 시국성명을 내고 거리로 나왔던 서울대 교수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시절만 해도 종교계와 교수들이 나서면 흔한 말로 '말빨'이 먹혔습니다. '지성과 양심'을 대표하는 이들이 나서면 폭압정치를 펼친 독재정권도 '움찔'하면서 발을 빼고는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떻게 된 것이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록 이들의 말빨이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어인 일일까요.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말빨은커녕 걸음빨도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왜 대한민국의 지성과 양심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시쳇말로 '약빨'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철학의 부재가 그 원인이 아닐까요. 철학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보면 이명박 정부에겐 '장사꾼'의 기질만 있지 '정신적 철학'은 없는 듯 보입니다. 철학이 있다면 양심과 지성의 외침을 듣지 않을 수 없거든요.

언젠가부터 체육관 선거로 치러지던 군사독재 정권과 달리 대통령 직선제로 당선된 요즘의 대통령들은 지지세력의 뒷배를 믿고 있는 것인지, 정책을 세우기만 하면 밀어부치기들의 명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 또한 대운하 반대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강변을 따라 걷고 있는 백성들을 보며 "저 사람들 할 일 없이 와 저리 걷고 있노?"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한반도 대운하는 다 결정난 일이라며 짐짓 딴청을 피우는 이명박 정부는 운하와 관련된 법령까지 몰래 만들었다고 합니다. 국민들이 운하 반대 목소리를 높히고 있는 순간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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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강. 남한강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강인 여강. 저토록 아름다운 강에 운하를 만든다니. 정신병자가 아니고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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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건설... 드디어 군부독재의 망령이 살아났다

대단한 이명박 정부입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군부독재의 망령이 살아난 느낌입니다. 대운하 건설을 민간 주도로 하겠다지만 기실 민간은 조용한데 정부만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총선만 끝나면 곧 바로 대운하 건설을 밀어부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알고도 모른척 하는 이들은 또 누구이던가요.

서울대 교수들이 운하와 관련해 공개 토론을 제안해도 나서는 이가 없는 이명박 정부입니다. 운하에 대한 이론이 분명하지 못하니 나서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대통령 입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니 머리속에 든 것이라도 있겠는지요.

더 웃기는 것은 한 대중가수는 운하를 찬성하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발빠르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여름도 아닌데 해바라기 하나가 피었다고 국민들의 조롱이 큽니다. 차라리 '운하저지 국민행동'에서 만든 '운하철도 999'라는 개사곡이 훨씬 정감있고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지 않던가요.

정신보다 물욕이 앞선 천민자본주의가 제 세상을 만났습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돈만 벌면 최고라는 인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대운하 반대를 외치는 성직자들의 '양심'이나 교수들을 비롯해 시인 소설가, 시민단체들의 '지성'이 이명박 정부의 외면으로 인해 외로운 걸음이 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언제까지 고개 돌리고 있을까요. 시중엔 이런 말이 돌더군요. '국민 요구 외면해? 그러다가 정신병원에 간 이가 한 둘이 아니야'라는 독설 말입니다. 세상살이에 독불장군이 어디 있겠는지요. 대화하고 토론하고, 그런 다음에 합의점을 이끌어 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인 것을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대화도 토론장에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국민의 힘은 위대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외침을 듣지 않고 끝내 대운하를 밀어부친다면 전두환 독재처럼 그런 꼴 나지 않겠는지요. 그런 날 곧 오지 않겠는지요. 암요. 국민의 '약빨'이 팍팍 듣는, 그런 날 곧 오고 말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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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 운하가 만들어지면 철새들은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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