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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뚫고 전진하는 정어리 떼를 보았는가

고만고만한 것들이 어떻게 말도 없이 서로 알아서

제각각 한 자리를 잡아 어떤 놈은 머리가 되고

어떤 놈은 허리가 되고 꼬리도 되면서 한몸 이루어

물길 헤쳐 나아가는 늠름한 정어리 떼를 보았는가

난바다 물너울 헤치고 인도양 지나 남아프리카까지

가다가 어떤 놈은 가오리 떼 입 속으로 삼켜지고

가다가 어떤 놈은 군함새의 부리에 찢겨지고

가다가 어떤 놈은 거대한 고래 상어의 먹이가 되지만

죽음이 삼키는 마지막 순간까지 빙글빙글 춤추듯

나아가는 수십만 정어리떼,

끝내는 살아남아 다음 생을 낳고야 마는

푸른 목숨들의 일렁이는 춤사위를 보았는가

수많은 하나가 모여 하나를 이루었다면

하나가 가고 하나가 태어난다면

죽음이란 애당초 없는 것

삶이 저리 찬란한 율동이라면

죽음 또한 축제가 아니겠느냐

영원 또한 저기 있지 않겠는가

 

-100~101쪽, <축제> 모두

 

김해자 시인의 시에는 부정과 긍정이 사이좋게 이마를 맞대고 있다. 부정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찢어지는 가난 속에 숱하게 스러져간, 지금도 스러져가는 동료 노동자들의 고된 삶이요, 긍정은 그 힘겨운 삶을 안으로 안으로 삭이고 우려내 마침내 새롭게 열어젖히는 용맹정진의 세계다.

 

까닭에 시인의 시의 빛깔은 회색이다. 고뇌와 절망 속에 허덕이는 현장 노동자들의 앞을 가리고 있는 깜깜한 어둠과 그 어둠을 보금자리로 삼아 기어이 환한 대낮을 맞이하고야 말겠다는 새로운 희망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가오리떼와 군함새, 고래 상어의 먹이가 되면서도 “끝내는 살아남아 다음 생을 낳고야 마는/ 푸른 목숨들의 일렁이는 춤사위”처럼 그렇게.

 

사실, 글쓴이는 그동안 김해자 시인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시인의 시도 읽어보지 못했다. 사업에 실패한 뒤 오랜 세월 지방을 떠돌다보니 그저 귀동냥으로 ‘김해자란 시인이 있는데, 그이는 시다 미싱사로 오래 일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만 어렴풋이 듣고 있었다.

 

글쓴이가 김해자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지난해 11월 끝자락이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꼼꼼하게 읽지 못했다. 자그마한 주간지의 책임자로 일하다보니 늘상 기사마감에 쫓겨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까닭에 이 자리를 빌어 귀한 시집을 보내주신 김해자 시인에게 그동안 지고 있었던 마음의 빚을 털어놓는다.

 

“지난 날 시는 내게 어렵고 황송한 손님이었다. 그래서 그가 오는 찰나에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다 받아 적지 못했다. 몇 조각 부서진 거품꽃일 뿐인 족적을 내려놓는 지금에 와서야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도 늘 찾아오고 있었던 손님을 환하게 맞고 있다. 시를 쓴 적이 없다. 이제야 시작이다.” - ‘시인의 말’ 몇 토막

 

지난 1998년 민족문학작가회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해자(48)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축제>를 펴냈다. 첫 번째 시집 <무화과는 없다>를 펴낸 이후 6년만이다. 모두 4부로 나뉘어진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시인의 아픈 자화상이자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다.

 

인연, 영아다방 앞에서, 내 사랑은 오류, 시어머니, 조는 하느님, 목각 기러기, 몸꽃, 겨울 편지, 어떤 시인, 벼랑 위의 사랑, 만월과 초생달, 구겨진 생을 펴다, 휘파람새의 노래, 거미 여자, 사랑초, 씨방, 공단 길, 깍두기론, 강물의 끝은 어디인가, 바다가 다 받아주리, 지중해의 달, 바람의 경전 등 68편의 시가 그것.

 

김승희 시인은 “김해자 시인의 시는 끝없이 ‘미싱을 돌리는’ ‘거미여자’의 말이자 더러운 물의 부패를 제 한몸으로 정화시키고자 하는 ‘부레옥잠’의 말이며 ‘거대한 대동(大同)인’바다의 말”이라며 “그녀의 사랑은 감상적인 정서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가늘고 긴 용맹정진의 사랑’”이라고 말했다.

 

너덜너덜한 걸레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또 망설인다

이번에 버려야지, 이번엔 버려야지, 하다

삶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또 한 살을 먹은 이 물건은 1980년 생

연한 황금색과 주황빛이 만나 줄을 이루고

무늬 새기어 제법 그럴싸한 타올로 팔려온 이놈은

의정부에서 조카 둘 안아주고 닦아주며 잘 살다

인천 셋방으로 이사 온 이래

목욕한 딸아이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수천 번 젖고 다시 마르면서

서울까지 따라와 두 토막 걸레가 되었던

20년의 생애,

 

- 13쪽, ‘인연’ 몇 토막

 

이 시집의 첫 페이지에 실려있는 시다. 시인은 1980년 “연한 황금색과 주황빛이 만나 줄을 이루고/ 무늬 새기어 제법 그럴싸한 타올로 팔려”왔다가 마침내 걸레가 되어버린 너덜너덜한 수건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된 삶을 더듬는다. 시인 또한 저 걸레처럼 처음에는 그럴싸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쳤다.

 

시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져 현장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안아주고 닦아주며” 힘겹게 살아왔다. 인천으로 이사를 한 뒤에도 그랬다. 근데, 서울이란 거대 도시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시인의 삶 또한 저 걸레처럼 두 동강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20년 동안 조카들과 “딸아이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수천 번 젖고 다시 마르”다가 마침내 두 동강 나 걸레가 되어버린 시인의 삶.

 

시인은 자화상 같은 걸레를 더렵혀진 그대로 버릴 수가 없다. 20년 동안 함께 했던 걸레를 그대로 버린다는 것은 곧 시인의 20년 삶을 그대로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까닭에 시인은 자신의 거덜 난 삶과 같은 걸레 위에 “비누칠을 하고 또 삶는다”. “화염 속에서 어느덧 화엄에 든 물건/ 쓰다쓰다 놓아버릴 이 몸뚱이”의 거듭남을 위해.

 

무쇠솥 달구는 장작불도

구겨진 종이 한 장부터 시작한다는 걸

눈보라 치는 아궁이 앞에서 배운다 소리 없이

오래 타는 참나무도 저 혼자는 불붙지 못하나니

잘 마른 잎과 잔가지들이 몸을 태우고야

장기전에 들어갈 수 있나니 숱한

불쏘시개들의 분신을 보며 다시 배운다

 

- 28쪽, ‘불을 피우다’ 몇 토막

 

어느날 시인은 무쇠솥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살아온 날들을 차분히 더듬는다. 시인도 처음 노동운동을 할 때 “구겨진 종이 한 장”같은 작은 꿈을 안고 시작한 듯하다. 하지만 혼자서는 노동의 불꽃을 활활 태우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눈보라 치는 아궁이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저 불꽃들도 “잘 마른 잎과 잔가지들이 몸을 태우고야”오래 오래 타오르고 있지 아니한가.

 

시인은 무쇠솥 아궁이에서 불쏘시개가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바라보다가 문득 분신한 열사들을 떠올린다. 그 열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노동자들이 그나마 저 아궁이 불꽃처럼 오래 타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궁이 속에도 “어떤 놈은 조용히 어떤 놈은 시끌벅적하게/ 모두 저 생긴대로 어우러져 불꽃 찬란히 타오르”는 것처럼 이 세상살이에서도 저마다의 할 일이 따로 있지 아니한가.

 

시인은 아궁이 속 불꽃을 바라보며 이 세상 사람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현장노동자들의 힘겹고 고된 일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노동운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부지깽이 휘저어 함부로 쑤석거리지 말”라고. 그리고 시인은 “잊지 말 일이다 뜨거운 금빛 혀와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 푸르게 빛나던 불의 눈물방울을/ 이미 사위어간 불쏘시개들의 소신공양을”(불을 피우다) 다시한번 일깨운다.       

 

오래 된 브라더 미싱 앞에서 떨어진 헝겊조각들을 깁네

형형색색 밥상보 잇고 발걸레 붙이다 보면

내 몸 어디에선가 구멍이 뚫려 실이 풀려 나오는 것 같네

딸을 잉태했던 뱃구레 어디선가 진액이 흘러나와

내 배꼽 낳은 그물코에 닿기도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실타래채 곤두박질치기도 하네

이승에 몸을 부리는 일,

제 꽁무니에서 실을 뽑는 짓인지도 몰라

 

- 63쪽, ‘거미 여자’ 몇 토막

 

삶이 너덜거릴 때면 덜덜거리는 미싱 앞에 앉는다는 여자. 오래 묵은 미싱 앞에 앉아 떨어진 헝겊조각들을 깊다 보면 자신의 몸 어디선가 구멍이 뚫려 미싱에서 뽑혀져 나오는 실처럼 실이 풀려나오는 것만 같다는 여자.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미싱처럼 “제 꽁무니에서 실을 뽑는 짓”이라고 여기는 여자.

 

시인 김해자는 스스로를 ‘거미여자’라 부른다. 오랫동안 조립공 시다, 미싱사로 일한 시인은 실을 줄줄 잘도 뽑아내는 미싱도 일종의 거미요, 이 세상에 부대끼며 끝없이 무언가를 뽑아줘야 하는 자신도 일종의 거미로 여긴다. 이 세상살이는 모두 “움츠렸다 솟구치며 허공에 한 땀 한 땀 집을 짓는 일”을 하는 저 거미의 삶과 무에 다르겠는가.

 

시인은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미싱 앞에 앉아 이리저리 조각 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깁는다. 그렇게 깁다보면 “삐거덕거리는/ 내 운명 또한 결국 내 마음이 택한 길”이란 것을, “마음따라 움직인 길이, 나를 옭아매는 덫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몸이 지은 집이 어찌할 수 없는 업이 되”면 그 업까지도 깁는다. 그야말로 시가 진혼가가 되는 순간이다.

 

시인 김해자의 이러한 체험을 통한 거듭남은 시집 곳곳에 사리알처럼 박혀 있다. “시궁이 그의 거처/ 더러움 걸러 푸르디 푸른 목숨 피워냈다”(부레옥잠)라거나, 시어머니를 “詩어머니”, “영원들의 무덤을 죽여 다시, 살리고 있는 것일까”(목각 기러기), “오 저들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고서야 어찌/ 상처가 저리 찬란한 무늬가 될 수 있는가”(만월과 초생달) 등.        

 

오늘밤 당직은 보름달,

밤새 눈감지 않는다

만 개의 밝은 눈이 어둠을 껴안으며 간다

천 개의 따스한 손이 바다를 쓰다듬으며 간다

 

눈 한번 찡긋할 때마다

달님이 내건 은빛 다리가 내 가슴에 닿는다

이 길 따라 걸어가면 그의 환한 볼을 만질 수 있다

 

저 둥근 中心(중심)에로 들어가

나도 쉬어가야겠다

 

- 113쪽, ‘지중해의 달’ 모두

 

김해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축제>는 자신과 자신 주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혹은 산업현장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분신한 노동자들에 대한 진혼가에 다름 아니다. 시인이 부르는 시의 진혼가는 몹시 힘겹고 고독한 것 같으면서도 이 세상살이를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이른 바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그의 문학이 때로는 연애시의 외양을 띠고 때로는 선시(禪詩)의 깊이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겨울편지’나 ‘2004년 봄, 광화문’ 같은 탁월한 정치시의 지평을 포괄하는 것은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시의 세계로 귀환하는 데 성공한 김해자의 놀라운 재생을 입증한다”며 “단언하거니와 이 시집은 한국시의 새로운 희망의 하나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시인 김해자는 1961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랐으며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8여 년 동안 조립공 시다 미싱사로 일했다. 그 뒤 우유 학습지 배달, 학원 강사 등을 하며 노동자들과 함께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998년 작가회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무화과는 없다>를 펴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처장 부총장, 노동자잡지 <삶이보이는창> 발행인, 노동문화복지법인 상임이사 등을 맡았다. 지금은 중앙대 예술대학원에서 시창작을 강의하고 있으며, 장애인, 노동자, 사회운동가들과 더불어 예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전태일문학상> 받음.


축제

김해자 지음, 애지(2007)


태그:#김해자 시인 , #축제, #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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