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선 이후 일간지에 나온 칼럼류 중에 가장 인상적인 글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명박을 도와주자'는 요지의 글이었다. '국민을 위하여'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하며 민주화세력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도와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잠시 쉬면서 길게 준비하자는 '진정성을 담고 있어 공감가는 글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이 '윈윈의 철학'을 가지고 공존할 수 있다면 '국민을 위하여'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착한 진보'가 되고픈 열망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정파적 아픔을 삼키며 그 글에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후 넉 달,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 달은 국민 모두에게 인내심을 강요한 시간이었다. 더 나아가 '착한 진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도 닦기'를 강요한 하루하루였다.

 

이미 세간엔 "한 달도 못돼 레임덕"이라거나 "대통령은 실패 중"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미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6개월이 지난 것 같다"는 피로감을 고백했다. 대통령은 '6개월'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인수위 시절에 "노무현 정부 5년을 겪은 것 같은 피로감을 느낀다"는 말이 나온 바도 있다.

 

착한 진보들이 하루하루 도 닦아야했던 지난 넉달

 

어제(24일) 일간지 지면을 장식한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는 박근혜 전 대표의 참언이나 "더 이상 누구도 공천결과에 대해 시비 걸지 말라"며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강재섭 대표의 대응, 여당 수도권 공천자 55명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씨에 대해 '출마 말라"고 공개 요구한 것, 지역구에서 문국현씨에게 밀리고 있는 이재오 의원의 이상득씨와의 '동반불출마설' 파동 등등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얼마나 심각한지, 한나라당이 느끼는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500여만표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을 이 지경으로 '추락'시킨 것일까. 10년 만에 드디어 '내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 일부 보수신문들의 확고한 혹은 일정한 '엄호'에도 불구하고 인수위 시절 지지율이 50%대로 추락했고, 급기야 한 여론조사에서 50% 미만대로 급락하더니 눈에 띄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경계해야할 것은 사태의 원인을 한나라당 내부의 권력투쟁 문제로 왜곡하려는 시도들이다. 국민의 시선을 집권여당 내부의 이전투구로만 집중시키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이명박 구하기'의 또다른 버전에 다름 아니다. "따 당한 박근혜 전 대표가 반격을 개시했고 이재오 의원이 이상득 의원에게 물귀신작전을 썼으며 강재섭 대표는 어떻고 정몽준 최고위원은 어부지리했다"는 식의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집권 초 레임덕'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영어몰입교육으로 서민가정을 영어 사교육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대한민국 내각의 권위를 실추시켰으며, '형님공천'을 밀어붙여 한나라당 공천의 공정성에 찬물을 끼얹어 국민들의 정치혐오증을 가속화한 '태풍의 눈'은 무엇인가.

 

그 태풍의 눈의 중심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말 바꾸기' '안되면 폐기하기'가 '실용'인가

 

그는 일개 샐러리맨에서 시작해 우리나라 최고 건설회사의 최고경영자까지 된 사람이다. 성공을 위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의 성공신화는 아마 '직선'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기업에서의 그의 직선적 성공신화를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직선적 성공신화'는 지방자치단체장까지는 통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대통령직은 결코 '직선적 경영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나라를 기업 운영하듯 밀어붙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스타일에 기인한바 크다는 게 중론이다.

 

인수위 시절 설익은 정책을 남발하고, 정부조직개편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으며, 총선에서 급하게 한나라당을 '이명박당'으로 만들려는 듯한 공천 행태 모두 정치를 하려하기보다는 나라를 경영하려 하며 '지시한 데서' 온 결과로 보인다. 아무리 도덕적 흠결과 업무능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받아도, 청문회에서 부적격 의견이 제시되어도 장관 임명을 밀어붙이는 것 또한 정치를 하기보다 경영하려는 태도에서 온 행태들이 아닐까.

 

어쩌면 이 대통령은 대선판을 커다란 공사수주 따내는 것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단 수주를 따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난 다음에는 일차적으로 모든 것이 '엔딩'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수주만 받고 나면(대선이 끝나면) 공사일정에 맞추어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에게 있어 눈에 보이는 '7% 성장'이나 '대운하'를 제외한 다른 대선공약들은 "공사하다가 안 되면 폐기해도 되는 설계도면위의 작은 구성물" 정도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최고경영자는 일단 '돈'을 잘 벌어야 한다. 경영실적, 다시 말해 수익률만 높이면 우선 버틸 수 있는 자리다. 그러나 정치는 '목적 달성도' 못지않게 '수단의 적절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벌어들인 '돈을 버는 과정의 정당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의 머릿속엔 '돈을 버는 과정의 정당성'이라는 코드는 아예 있지도 않은 것 같다.

 

민주주의 생명이라고까지 이야기되는 '절차의 정당성'이 그에게는 '귀찮고' '혐오스러운' 절차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법이 정한 임기를 무시하고 '집권했어도 나라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며 임기제 기관장들을 내쫓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이명박 대통령에겐 '법'마저 거추장스러운 존재인 것은 아닐까.

 

게다가 정치인이라기엔 우리 대통령은 너무나 '실용적'이다. 그런데 '그의 실용의 의미'가 사전적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이명박식 실용은 장소에 따라 '말바꾸기', '던져보고 안되면 곧 폐기하기' 같다.

 

영어몰입교육을 안하면 국가경쟁력이 떨어져 큰일 날듯 난리친 것이 어제 일인데 오늘 "영어몰입교육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오해다"라고 선언해 국민을 짜증나게 한다. 신불자 구제나 통신비 인하 같은 큰 사안도 어제 이랬다, 오늘 저랬다 태도가 달라진다. 언제는 "외교에 있어 국익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가 곧 한미동맹을 강조한다.

 

'이념이 아닌 실용의 정치'를 말한 게 어제 같은데 코드가 안 맞는 기관장들을 그만두라고 압박한다. 그러면서 이전 정권 때 내각을 구성하던 사람들을 '실용코드'로 공천한다. 한마디로 '이현령비현령'이다.

 

이명박식 경제 살리기는 제2의 황우석 신드롬?

 

대통령이 아니라 한 기업의 경영자라면 언제든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어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사업계획을 세웠다가 이해타산이 맞지 않으면 '마음대로' 폐기할 수 있고 그래도 문제될 게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대한민국 주식회사가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큰 틀에서 조정해야하는 '정치인'이다. 그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파장을 지닌다. 오늘 이랬다 내일 저랬다 해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의 말과 행태는 천금같아야한다"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이 총선 역시 '대형공사 수주판'으로 생각했고 '이명박당'을 만들기 위해 '형님 공천' '내사람 공천'을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었다고 비난해도 딱히 변명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이러저러한 물의가 일겠지만 총선이 끝나고 과반의석만 확보하면 '이번 수주도 엔딩'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무리한 시도는 늘 역풍을 맞게 마련이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누가 한나라당 내부에서 '극한 공천갈등'에 따른 권력투쟁이 일어나리라 생각이나 했었던가.

 

국민 모두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시대의 성공을 바란다. 여전히 우리는 국민적 관점에서 '착한 진보'이고 싶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최소한' 여권 내부에서 견제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이재오 의원은 청와대 회동이후 동반 사퇴론을 부정했고 '형님'은 출마를 강행할 태세다. 수도권 한나라당 공천후보 55명의 '이상득퇴진론'은 하루거사로 끝날 조짐이다. 아마도 여권 내부에서는 이명박호가 가진 근본적 '결함'을 제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겨우 집권 한 달만에 가슴 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 되면 가게 손님이 늘줄 알았는데 더 줄었다"며 한탄하는 자영업자들도 많다. 대선 이후 손님 늘었냐는 질문에 한숨만 푹푹 내쉬는 택시 기사들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이명박식 경제 살리기가 제 2의 황우석 신드롬이었나" 하는 탄식의 소리도 터져 나온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성공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면 최소한 크게 실패하지 않게 도와주어야 한다. 이명박호가 독불장군식 독주로 '나라를 산으로 끌고 가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지금 국민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독주를 단속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을 "내 주머니 두둑이 불려준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작년 대선결과를 낳은 국민이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언론이 말하는 '안정론'과 '견제론', 선택 이후의 파장을 꼼꼼하게 따져야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최민희 기자는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입니다. 


태그:#이명박, #18대총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