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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처음으로 차명계좌의 존재를 일부 시인했다.

 

지난 24일 특검에 소환된 삼성 전략기획실 최광해 부사장이 차명계좌 리스트를 특검팀에 제출했다고 MBC <뉴스데스크>가 2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이 관리해온 차명계좌 리스트에는 전·현직 임원들의 명의로 개설된 삼성증권 계좌 700여개가 담겨 있으며 총 금액이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성 쪽은 이 자금의 출처에 대해 "고 이병철 회장의 상속재산"이라며 비자금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특검팀이 추적 중인 삼성증권 차명계좌 수는 총 1300여개. 이 중 600여개는 특검팀이 직접 추적 중에 있으며 나머지 700여개는 금융감독원의 협조를 얻어 추적 중이다. 삼성그룹이 제출한 차명계좌 수와 큰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현재 특검팀은 삼성 쪽이 제출한 차명계좌 수와 특검팀이 지금까지 파악한 차명계좌 수가 현저히 차이가 나 추가 제출을 요구한 상황이다. 

 

검찰·특검 수사 4개월 만에 차명계좌 존재 시인... 왜?

 

한편, 이번 차명계좌 리스트 제출은 삼성의 '꼬리 자르기' 시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삼성 쪽이 제출한 차명계좌 수가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와 특검팀이 추적해 온 차명계좌 수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숫자라는 점, 4개월이 지나도록 "차명계좌는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오다 갑자기 일부를 제출하고 "비자금은 아니다"고 주장하는 점 등을 살펴볼 때 삼성그룹이 특검의 수사방향을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리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윤정석 특검보는 26일 오전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보도된 차명계좌 리스트에 대해)수사 중인 사안이므로 확인해주기가 힘들다"며 "삼성의 '상속재산'이라는 주장을 수사하는 입장의 우리가 100%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원천자금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할 것이지만 여러 가지 에로점들이 있을 것"이라고 밝혀 삼성생명 차명주식, 삼성증권 차명계좌의 원천자금 수사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미 김상조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지난 25일 "삼성증권에 개설된 1300여개 차명계좌의 주식에 대해서도 삼성 쪽은 이 회장의 개인재산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삼성의 이 같은 움직임을 미리 예측한 바 있다.

 

당시 김 교수는 "삼성증권에 개설된 차명계좌 내에도 삼성계열사의 주식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조본이 이 주식을 이용해 차익을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세법상 지분 3% 이상, 주식가액 100억원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에게 양도소득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조세포탈 혐의가 적용된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 쪽의 주장을 받아들여 배임 및 횡령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더라도 조세포탈 혐의로 처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세금만 내고 사법처리 피하려는 속셈?... 특검의 적극적 수사 필요

 

그러나 지난 2006년 신세계그룹 총수일가의 차명주식 보유 사건을 돌아보면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당시 국세청은 신세계의 차명계좌 수백여 개를 적발하고 두 차례의 주식배당에 대해서만 35억원, 명의신탁된 주식에 대한 증여세로 신세계와 총수일가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세액을 추징했다.

 

그러나 사건은 세액 추징에서 멈췄다. 현행 조세범처벌법 상 탈세 등 위반행위의 전속고발권을 가진 국세청이 신세계의 차명주식이 '단순 명의신탁'이라 결론을 내리고 검찰 고발 등 사법처리를 시행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진보신당의 심상정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 때 "국세청이 신세계 대주주 일가의 차명보유주식에 대해 과세조치만 하고 증여세 포탈로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질타한 바 있다. 국세청은 "지금까지 주식 명의신탁에 대해 조세포탈범으로 고발한 사례가 없다"며 "명의신탁이 법원에서 조세포탈로 인정된 사례도 없다"고 답했다.

 

결국 삼성이 이 점을 생각해 차명계좌 리스트를 제출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2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삼성이 세금을 내는 수순에서 마무리하려는 '굳히기'에 들어갔다"며 "특검이 그에 좌지우지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설사 일부가 상속재산이라 하더라도 광범위한 차명계좌 중에서 횡령과 배임을 통해 조성한 것도 있을 것이다. 특검이 이 부분에 수사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지금은 수사에 진전이 없어 보인다. 특검이 핵심 관련자들이 이야기하는 대로만 끌려만 가는 것 같아 매우 유감이다."


태그:#삼성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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