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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똥꽃> 표지.
 책 <똥꽃> 표지.
ⓒ 그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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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꽃>(그물코)을 읽었다. 얼마 전 <인간극장>에서 방영한 저자가 여든 노모를 모시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여든 중반의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를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지 아니 21세기에도 저런 효자가 있을 수 있는지 놀라웠다.

한량으로 살다가 8남매와 빚을 남기고 일찍 돌아간 남편을 대신해 평생 일에 묻혀 사시다가 그 자식들 다 크고 저마다 살길 찾자 이제는 몸도 늙고 치매도 오고. 공동 저자인 김정임 할머니의 고단한 여든 중반 평생에는 그 나이 대 할머니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내 엄마(82)도 시집살이와 우리들 키울 시절에는 항상 잠이 부족하여 잠 한 번 크게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하셨다.

'하루 종일 논이나 밭에 나가 일하면서도 삼 세끼 밥을 하고, 방아 찧어 쌀 만들고, 한밤에는 베를 짜고 옷을 짓고, 베틀에 앉아 잠깐 졸았나 싶으면 어느새 닭이 울고….' 엄마는 지금도 그 시절 얘기 할라치면 '아이고오' 앓는 소리를 내는데, 그 '아이고오' 소리는 울 엄마만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나 보다.

"아만 보듬꼬 젖 멕일 쌔가 어딘노. 등에 업고 쇠죽 끄리믄서 겨드랑 미트로 돌려서 젖 물리고 쇠죽 뒤직이믄 김이 올라와서 숨은 막히고 아는 울고, 아이고오, 오줌이라도 싸믄 그것 치울 쌔도 엄씨 밥해야지."

"미역국은커녕 무시국이라도 한 바내기 먹고 싶었지만 누가 끄리주노. 호박잎 국밥이 먹고 싶었는데 간네띠기가 한 그릇 각꼬 온 것 너거 아부지가 홀딱 닦아 먹어 삐리고 나는 팥잎 국밥 건더기 건져 먹었다가 가슴이 쪼개지는 거 가태서 숨도 못 쉬고…. 아이고오."

"너는 날 보믄 맘 상할 끼고 나도 너 고상하는 거 보믄 맘 상하고. 내가 가기 전에 개 한 마리 사다가 너 꼬아주고 가야 될 낀데 아이고오, 오찌 될랑고. 입그라, 응? 곧 추워지는데 따시기 입거라." - 본문 213, 214, 224

신산스러웠던 지난날에 대한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위 대목을 읽으며 한참을 웃었다. 김정임 할머니의 말투가 어찌나 재미있고 톡 쏘는지 슬퍼 울면서도 웃음이 났다. 보아하니 아마 저자의 글발도 엄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닐지.

아무튼 저자의 어머니는 감옥살이 같던 도회생활에서 효자 아들 덕분에 하늘도, 땅도, 자연도, 공기도, 꽃도 모두 다시 찾았고 건강도 많이 회복되신 것 같아 축하드리고 싶다.

그러나, 효도만으로는 어려운 게 노인 복지의 현실

[#사례1] 나의 큰외숙모는 아마 20년도 더 되었지 싶다. 무엇이? 치매가. 내왕이 없어 그 얼굴이 가물가물하지만 외사촌 올케 언니를 생각하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진다. 외사촌 오빠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청춘을 고스란히 바치며 시모 간병을 20년씩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효부 났다"는 칭찬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사례2] 남편의 고모는 당뇨·신장병, 그리고 치매 등을 앓고 계시는데 고모의 며느리는 10년째 고모님을 돌보고 있다. 울 어머님은 "정말 며느리 한 번 잘 들였다"하면서 칭찬이 자자하지만 난 나와 같은 동년배인 그 분이 나와는 다른 결혼 10년을 살았다는 것에 역시 억장이 무너졌다.


올해 86세인 어머니를 저자는 1년째 모시고 있지만 그전에 8남매의 맏며느리인 저자의 큰 형수님은 20여년 모셨다고 하였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서울하늘에서 20여년 시모를 모신 그 분을 생각하자니 역시 가슴이 아팠다. 

저자의 어머니를 향한 지극정성은 백 번 칭찬받아 마땅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저자의 경우는 특별하고도 특별한 경우이다. 우리 같은 속물들은 저자 같은 사람을 마땅히 본받아야 하나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들어 갈 수도 없고 도시에서라 하더라도 그렇게 살갑게 모실 수가 없다.

지난해 11월 21일 한 노인돌보미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한 할머니에게 배즙을 갈아 먹이고 있다. 그는 4명의 노인을 돌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21일 한 노인돌보미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한 할머니에게 배즙을 갈아 먹이고 있다. 그는 4명의 노인을 돌보고 있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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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역시 86세의 노모를 3년째 모시고 있는 한 지인은 우울증이 와서 한동안 무척 힘들었다고 하였다. 이러다 내 먼저 가겠다 싶어 정신을 차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모시지만 자꾸만 한계에 부딪친다고 했다.

"시모를 모시는 데는 기약이 없잖아요. 3년이면 3년, 5년이면 5년 기한이 딱 정해져 있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매일 돌아가시라고 기도 할 수도 없고 말이죠."

저자가 행한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도는 가깝게는 70~80년대의 우리네 며느리들이 다 한 것이다. 멀게는 이씨 조선 500년 역사가 효를 근본으로 삼았기에 다들 그렇게 효도를 하며 젊음을 불살랐고, 늙어지면 이제는 반대로 자식들의 효도를 받음으로써 보상 받았다.

그렇게 늙어서 보상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아니 늙어서 보상 받는다기 보다 늙어서 '복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추 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 웬 말인고…'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갖은 설움을 이겨가며 시부모 봉양을 잘하고는 나중에 화병이 도져 이제는 반대로 가해자가 되어 며느리를 달달 볶으며 늙어간 게 우리네 선배 아낙들의 삶이었다.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노인의 삶을 보장해줘야  

그런 식으로 억지효도가 반복되다가 시대가 가파르게 변하면서, 나름대로 먹고 살만해지면서 우리네 며느리들도 변했다. 저자는 본인의 의지로 어머니를 모시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마음은 애저녁에 떠나도 '어쩔 수 없이' 병든 부모 혹은 시부모를 수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며느리가 무슨 죄가 있나. 남편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의 부모를 몇십 년이고 수발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말이다. 또 장기간의 노인 수발은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다. 다른 엄마들은 "수영 가네" "살 빼러 가네" 혹은 "뭐 배우러 가네" 하며 나름의 취미생활을 하며 사는데 자기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 수발하다 세월 다 보낸다면 얼마나 우울할 것인가.

노년층의 투표율이 훨씬 높은데도 노인복지는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사진은 지난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 모습(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노년층의 투표율이 훨씬 높은데도 노인복지는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사진은 지난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 모습(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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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주장하노니 울 나라도 이제 노인복지를 국가에서 책임져 달라. 노인의 불행은 노인 한 사람만의 불행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불행일 수도 있다. 노인의 삶이 안정되어야 가족의 삶도 안정되고 가족이 건강해야 나라도 건강해지는 것이다.

세금이 문제라고? 그러니까 상황설명 확실히 하고 당당하게 세금을 거두면 누가 말릴 것인가.

가까운 일본의 경우 2000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 시절에 전 국민 개호보험이 통과된 것으로 안다. 그 안에 노인수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음은 당연한 거고. 교육방송에서 보니 2000년도에 시작된 그 제도가 이제는 안착이 되어 너무도 잘 굴러가고 있다고 해 한없이 부러웠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지난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올 7월부터는 시행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혜 폭이 아주 미미했다. 대략 3%의 65세 이상 노인 분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마무리...

사실 지금 시아버님이 병원에 입원 중이다. 뚜렷한 역할을 못하면서도 며느리들은 마음이 무겁고 아들들은 자주 연가를 써야하니 회사에 눈치 보이고 몸도 고달프다. 시어머님은 '그만큼 고생시켰으면 됐지 이젠 병구완까지 시키나' 싶으니 우울하시다.

처음엔 약 3주라고 했으나 별로 차도가 있지 않아 입원기간이 연장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한 열흘이 지난 것 같은데 시계추가 너무 느리게 움직인다. 비교적 짧은 기간임에도 다들 힘들어 하는데 장기간 수발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세상 그렇게 불공평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하여, 결론은, 내 생각은 그렇다. 세금 얼마든지 낼 테니 제발 노인 분들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실 방안 마련 좀 해 주시라. 국가는 무늬만이 아닌 실질적 혜택이 '팍팍' 돌아오게 해라. 그렇게 하면 세금 내는 거 아까워 하지 않을테니.  국민들이 협조 안하면 협조 안 한다 하지 말고 홍보 좀 하시라. 아주 내 가심이 탄다, 아이 고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서재 '폭설의 기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똥꽃 -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전희식.김정임 지음, 그물코(2008)


태그:#똥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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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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