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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우리 말과 헌책방 5

- 글ㆍ사진 : 최종규

- 펴낸곳 : 그물코(2008. 3. 20.)

- 책값 : 6000원

 

두 달에 한 차례 펴내는 개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다섯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늦어도 지난 2월 첫머리에는 내려고 했으나, 잡지를 애써 내주는 출판사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3월 끝머리에 가까스로 나왔습니다. 잡지를 받아보아 주는 백마흔세 분(4호까지 구독자 숫자)한테 더없이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노릇입니다. 언제 나오느냐고 궁금하다며 묻는 연락에는 ‘죄송합니다’는 말밖에 달리 드릴 인사가 없었습니다.

 

.. 우리 말 공부를 따로 안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알맞고 올바르게 쓸 우리 말’을 모른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 말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책 많이 읽는다고 하여 ‘깨끗하고 살가운 우리 말’을 잘 찾아서 쓴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  (13쪽)

 

잡지 이름 <우리 말과 헌책방>이 말하듯, 크게 나누어 한 갈래로는 우리 말 이야기를 펼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잘 맞추자는 우리 말 이야기는 아닙니다. 숨어 있는 토박이말을 캐내자는 우리 말 이야기도 아닙니다. 상식이나 지식이 되는 토박이말을 익히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한 달을 살더라도 자기 삶을 알뜰히 가꾸거나 재미나게 즐기고 싶다면, 그동안 잘못 알고 엉뚱하게 써 온 낱말 하나라든지 말투 하나 못 고치겠습니까. 올바르게 고쳐쓰는 일이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귀찮게 여길 뿐이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손해 본다고 느낄까요? 남들은 다 그렇게 잘못 쓰고 있는데 왜 나만 착하게, 올바르게, 깨끗하게 쓰느냐고 생각하는지도 몰라요. 또 이렇게 잘못 쓰는 말이 두루 퍼지면 ‘나중에는 잘못 쓰던 말도 잘 쓰는 말’로 바뀌지 않겠느냐고도 말(26쪽)”하는 일이 없기 바라는 마음으로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 일등도 꼴등도 없이, 모든 사람이 골고루 세상 지식과 사회 흐름을 잘 꿰뚫으며 깨닫도록 하여, 저마다 따로따로 주어진 삶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기쁘게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는지요 ..  (54쪽)

 

잡지 반 갈래를 차지하는 헌책방과 책 이야기도 우리 말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펼칩니다. “1000원짜리 책은 1000원을 가진 사람도 사서 읽을 수 있고, 1만 원을 가진 사람도 사서 읽을 수 있으며, 1천만 원을 가진 사람도 사서 읽을 수 있(73쪽)”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우리 스스로 눈을 조금 밝게 틔워 놓으면 헌책방에서 값싸게 찾아서 읽을 수 있는 책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또한, “‘주류’ 환경단체 분들이 애쓰는 줄은 알지만, 때때로 눈길과 눈높이가 ‘보통사람 삶터와 생각’에서 멀찍이 떨어져 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워 안타(89쪽)”까운 마음으로, 우리 스스로 조금 더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책을 글감 삼아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서울역처럼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 둘레를, 차만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둘러볼 수 있는 문화마당으로 가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곤 합니다. 서울역부터 광화문까지, 또 서울역부터 숙대입구를 거쳐 용산역까지, 이렇게 ‘걷기 좋은 길’로 가꾸어 놓으면 ..  (125쪽)

 

제가 터잡고 살고 있는 인천에 ‘걷기 좋은 길’이 마련되면 참으로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땅값과 집값이 올라서 돈이 되는 아파트’가 아니라, ‘집값도 땅값도 안 올라도 괜찮으니’까, 내 자신과 내 딸아들이 걱정없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늙어서 죽는 날까지 오순도순 이웃사람과 부대낄 수 있는 골목집이 지켜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길이 막혀서 새 길을 놓고, 더 빨리 달려야 한다면서 고속도로를 놓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조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골목을 늘리는 일이란 좀처럼 없습니다. 지구자원이 바닥나고 있어도 자전거로 일터와 학교를 오갈 수 있도록 하려는 교통정책은 나오지 않습니다. 자전거는 돈으로 탈 수 없는데, 자꾸만 돈으로 자전거길을 내거나 자전거문화를 북돋우려고 하는 움직임만 보입니다.

 

책을 읽어서 좋은 까닭은 돈벌이를 잘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 아닌데, 우리 말과 글을 아름다이 갈고닦으면서 쓰면 좋은 까닭은 자기 지식이 높아지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기 때문이 아닌데. 헌책방 나들이가 즐거운 까닭은 책을 값싸게 잔뜩 사들일 수 있어서가 아닌데.

 

.. 책을 사는 일은,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받아들이거나 즐기는 일입니다. 또한, 책 하나 엮어내거나 파는 이들이 들인 땀방울에 보답을 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책을 때에는 되도록 ‘자기 돈을 써서 사서 읽어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  (150쪽)

 

제 삶을 담아낸 이야기를 실은 다섯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많이 모자란 책입니다. 모자람을 알기에 한 호 두 호 거듭하면서 고쳐 나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어리숙함을 느끼기에 세 호 네 호 되풀이하면서 추슬러 나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이제 다섯째이고, 앞으로 여섯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널리 사랑받을 수 있는 잡지도 나쁘지 않으나, 어느 한 분한테라도 살가이 다가가면서 그분 삶에 따순 이야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다섯째 잡지 머리말에 ‘희망 없는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글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다섯째 호 머리말 : 희망 없는 세상

 

..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새 정책이 한 가지 두 가지 나옵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바뀐 정권을 움켜쥔 분들로서는 예전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예전 정책이 달갑지 않던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한들, 새 정권이 내놓는 새 정책이 오히려 반갑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펴내는 잡지가 ‘우리 말’을 이야기하는 책이니만큼, 다른 무엇보다도 ‘영어로만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정책’에 귀가 쫑긋합니다. 그런데 영어 내세우기는 지금 정권뿐 아니라 노무현 씨 때에도, 김대중 씨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영삼 씨 때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집권자들 생각으로는, ‘영어 하나 가르치기’에는 그야말로 온힘을 기울입니다. 왜 이렇게 수십 해에 걸쳐서 모두들 영어에만 죽자사자 매달리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렇게 영어에 다 바치지 않아도, 지금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서 영어는 대단히 높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 안 해도 학생들은 영어가 중요한 줄 알아서, 스스로 영어소설도 사서 읽고 학원을 찾아다니거나 배낭여행이나 유학을 다니기도 합니다.

 

수십 해에 걸쳐서 영어 교육에 무게를 두는 가운데, 우리 말을 가르치는 자리는 차츰 밀려납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자리도 밀려납니다. 문학을 가르치는 자리도 밀려났고 사상과 철학을 가르치는 자리도 밀렸습니다. 사회나 정치나 문화를 가르치는 자리는 아예 안 보입니다. 체육과 미술과 음악은 아예 뒷전입니다. 오늘날 초중고등학교에서 인문학은 그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자연과학은 어떠할까요? 화학, 물리, 지구과학, 생물 들은 얼마나 배울 만한 이야기가 되었는지요.

 

예부터 “먼저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지식보다는 마음가짐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돈보다는 됨됨이가 먼저라고 했습니다. 이름값보다는 착함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2008년 오늘날은 지식-돈-이름값, 여기에 권력이 가장 위에 올라섰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우리 어른들은 사랑-믿음-나눔-어울림에는 콧방귀를 안 뀝니다. 착함-아름다움-올바름-알맞음은 내동댕이칩니다. 큰집-빠른차-서구형 얼굴과 몸매-도시 물질문명으로 기울어 버립니다. 왼쪽으로만 기울어도 나쁘지만 오른쪽으로만 기울어도 나쁩니다. 그렇다고 어설픈 가운데 자리에 서는 일이 좋을 수 없습니다. ‘왜 사는가’, ‘누구와 사는가’, ‘어디서 사는가’, ‘무엇하며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를 돌아보면서 우리한테 즐거운 일과 놀이가 무엇인지를 찾아나서며 함께 껴안아야 좋지 않을는지요.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제 손으로 목을 매달거나 떠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또한 우리 나라, 이 세상에서 희망을 찾아보지 못하며 삽니다. 그렇지만 목매달아 죽거나 어디 멀리 떠나기에는 저한테 한 번 주어진 이 삶이 아깝습니다. 가진 재산조차 없으니 못 떠나기도 합니다. 읽고픈 책도 많아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보이는 희망 없으니, 차라리 내 몸뚱이를 희망으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입니다. 5호를 내기까지 정기구독 해 주시는 분이 백쉰이 조금 안 됩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 

덧붙이는 글 | - 잡지 정기구독은 인터넷방에서 주문을 받습니다. http://cafe.naver.com/hbooks


우리 말과 헌책방 6

최종규 지음, 그물코(2008)


역사신앙고백 - 전후 독일.한국.일본의 역사인식과 죄책고백

조형균 엮음, 그물코(2008)


태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개인잡지, #우리말,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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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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