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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9일. 제대를 하고 복학을 앞둔 아들과 함께 자전거로 타이완(台灣) 해안을 따라 한 바퀴 일주하는 여행을 떠났다. 타오위안(桃園) 국제공항 근처 주웨이(竹圍)의 15번 국도에서 출발하여 서해안을 따라 타이난(台南)과 까오슝(高雄)을 거쳐 타이완 최남단인 켄팅(墾丁)국가공원까지 갔다.

켄팅에서 높은 산을 넘어 동쪽에 있는 9번 도로를 타고 타이똥(台東)을 지나 화리엔(花蓮)에 도착하였다. 화리엔에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중턱에 놓인 도로를 타고 쑤아오(蘇澳)까지 갔고, 북쪽의 지룽(基隆)을 지나 타이뻬이(台北) 근교인 딴수이(淡水)를 거쳐 출발 지점에 도착하니 24일이다. 자전거로 일주한 총 거리는 1200km 정도였다.

지난해 우리나라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일주를 마치고 자전거 세계여행의 첫 번째 나라로 타이완을 선택하였다. 그 이유는 2월이 따뜻한, 남쪽에 있는 나라로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타이완은 중국이 유엔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중국을 대표했으나, 중국이 유엔에 진출하면서 유엔에서 퇴출당하고 독립국가의 지위도 박탈당했다.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와도 단교되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또 공교롭게도 2월의 타이완은 그 사회정세가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했다. 우리나라에서 여당이 몰락한 것과 같이 타이완의 여당인 민진당 역시 선거에서 완패하였다. 두 나라의 여당은 모두 진보를 상징하지만 국민에게 등돌림 당한 이유가 비슷하였다. 근·현대 역사가 비슷한 한국과 대만의 친선을 바라는 마음을 깃발에 담아 타이완 일주를 하였다.

한국과 대만의 친선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깃발
 한국과 대만의 친선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깃발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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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밤은 어두웠고 부슬비가 오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공항이 서해안에서 매우 가깝기 때문에 공항로비에서 하루 지내고 다음 날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행정보를 구하는 도중 우연히 공항에 있는 공항호텔 관계자의 호객행위에 이끌렸다. 타오위안에 있는 호텔에 데려다 주고 다음 날 다시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는 말에 두 대의 자전거를 택시 뒷좌석에 실었다.

택시기사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기사는 택시비를 호텔에서 받아가고, 다음 날 호텔 차로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것을 보고 한순간이나마 의구심을 품었던 나를 질책하였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있으니 아주 익숙한 음악이 들려온다. 우리도 한때 길거리에서 많이 들었던 시그날 음악으로 청소차가 왔음을 알려준다.

소박한 현지식 아침을 들고 호텔에서 준비해 준 차로 공항으로 향했다. 마침 운전기사가 영어를 할 줄 알아 공항 근처 15번 국도에 내려달라고 부탁하였다. 원래 약속은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는 것이었지만 그는 우리를 공항을 지나 주웨이의 15번 성도(省道) 어느 주유소 앞에 내려주었다. 자전거 정비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끝내니 9시 반이었다.

15번 도로는 매우 한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 오른쪽에는 오토바이 같은 그림과 함께 '기차우선(機車優先)'이 쓰여 있고 좁은 줄이 쳐져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스쿠터 전용도로인 것이다. 타이완에는 정말 스쿠터가 많았다. 경제 부흥시기에 정부에서 스쿠터 사용을 장려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로가 스쿠터 이용에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넓은 도로는 대체로 550cc 이상의 오토바이와 고속으로 달리는 차를 위한 전용도로, 저속으로 달리는 차, 스쿠터를 위한 길이 분리되어 있다. 분리장벽으로 완벽하게 이 두 부분을 분리하고 있다. 도심과 외곽도로 할 것 없이 전국의 거의 모든 도로가 이런식으로 분리돼 있어, 우리는 안전하게 타이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스쿠터 전용도로
 스쿠터 전용도로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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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따라 완벽하게 분리된 자전거 길
 도로 따라 완벽하게 분리된 자전거 길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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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주(新竹)에 들어서니 비로소 서해 바다인 타이완해협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바다도 뿌옇게 보였다. 해안가 쪽으로 멋진 다리가 보여 국도에서 이탈하였다. 그 다리는 뚝과 뚝을 연결하는 다리였는데, 해안가를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전체 길이 17km 중 현재 7km가 완성되었다. 시멘트로 포장한 곳은 자전거 길이고 나무로 포장한 곳은 보행자 길인 것 같았다. 우람한 아치형 다리를 보니 공사비가 상당히 많이 들었을 듯했다. 우리나라 어디를 보아도 이러한 공사비를 들여 이렇게 아름다운 자전거 전용도로를 개설한 곳은 없다. 자전거를 활성화하려 하고 시민의 복지를 우선 생각하는 시정부의 노력이 엿보인다.

해안 따라 건설 중인 자전거 전용도로
 해안 따라 건설 중인 자전거 전용도로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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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시아오(通宵)의 홈스테이에 도착하니 4시였다. 약 100여km를 달렸으나 출발 지점부터 이곳까지 가벼운 언덕이 하나 있을 정도의 평지였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주인이 놀라면서 우리에게 텔레비전을 보라고 말한다. 남대문이 불타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타국에서 고국의 국보 1호가 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허탈하다.

어안이 벙벙하여 도대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긴 국새도 보존할 줄 모르는 나라이고, 조선국왕의 어진도 모두 잃어버려 화폐에 나오는 세종대왕의 초상을 민족을 배반한 친일 화가의 자신을 닮은 듯한 얼굴로 보여주고 있는 나라 아닌가. 이러한 사실조차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나라이니 남대문인들 온전하랴 싶었다. 밤새 남대문 생각에 울분이 터져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


태그:#타이완,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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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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