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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당일 이른 아침 청량리역 앞 풍경
 총선당일 이른 아침 청량리역 앞 풍경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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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도 투표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역시나 뽑을 사람이 없었다."
- 춘천으로 여행가는 회사원 김아무개(46)씨

"무관심도 하나의 정치적인 표현이다.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말아 달라."
- 친구들과 놀러가는 대학생 전 아무개(23)씨

"XX들 다 도둑놈들 같다. 투표장에 걸어가는 10분이 아깝게 느껴졌다."
- 등산가는 자영업자 이 아무개(53)씨

18대 총선은 '이슈도 정책도 없는 맥빠진 선거'란 평이 자자하다. 민심도 덩달아 맥이 빠진 것일까?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18대 총선 일 이른 아침. 선거를 떠난 민심을 살펴보려고 서울 청량리역을 찾았다.

경춘선 대부분 매진... 이른 아침부터 북적이는 청량리

총선날 아침, 북적대는 청량리역 광경
 총선날 아침, 북적대는 청량리역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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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경춘선을 보면 대부분 다 매진이에요. 어제 저녁 기차부터 매진인 차가 많아요."

청량리역 역무원 김영선씨의 말이다. 9일, 오전 8시도 안된 이른 아침부터 청량리역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젊은 사람들이 약간 많긴 했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모였다. 큰 배낭을 지고 산으로 떠나는 중년의 등산객들, 삼삼오오 모여서 당일치기 여행을 가려는 20대 대학생들, 손 붙잡고 사랑여행을 만끽하려는 연인들까지. 투표장을 외면한 민심은 줄지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경춘선을 타고 떠나는 것은 똑같았지만 투표장을 외면한 이유는 사람마다 달랐다.

[실망파] "투표는 하자는 것이 지론이었는데 이번에는..."

경춘선 기차를 타러 들어가는 시민들
 경춘선 기차를 타러 들어가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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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에서 만난 여행객 김아무개(46)씨는 어제까지만 해도 투표장에 갈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춘천으로 여행가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지 만은 않았다.

"사실 저는 투표 안하는 사람들을 욕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투표를 꼭 해왔죠. 이번에도 하려고 했는데…"

김씨는 말끝을 흐렸다. 이어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지할 사람이 없었다"며 "이번 선거는 기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사회 초년생이라 밝힌 직장인 박아무개(29)씨도 "아침에 투표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왔다"고 밝혔다. 박씨는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투표는 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내키지 않았다"며 "개운한 느낌은 아니지만 투표를 했어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이 첫 투표라고 밝힌 이아무개(20)씨는 선거기간 내내 정치권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고 한다. 하지만 결론은 "실망 그 자체"라는 말로 표현했다.

"첫 투표라 관심 있게 봤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후보 이름 정도만 살폈는데 말이죠.  그런데 유심히 보니 왜 사람들이 정치를 욕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실망이 컸다는 이씨는 "누가 괜찮은 후보고, 어느 당이 좋은지 판단이 안 선다"며 "모르는 상태로 투표하느니 이번에는 그냥 기권하겠다"고 말했다.

[무관심파] "후보가 누군지도, 투표장이 어딘지도 모른다"

청량리역으로 올라가는 시민들
 청량리역으로 올라가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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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하지 않을 자유도 있잖아요? 무관심도 일종의 정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전에 앉아서 기차시간을 기다리던 대학생 전아무개(23)씨는 당당했다. 전씨는 "관심이 없는데 억지로 투표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관심이 생기면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씨의 마음은 길 떠난 '함흥차사'마냥 돌아오기 힘들어 보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주부 이아무개(38)씨는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투표장이 어디있는지도 모른다"며 무관심을 표현했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투표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나"면서 "오늘은 그냥 휴일이라 생각한다"며 껄껄 웃었다. 옆에 있던 아이들도 환하게 웃었다. 평일에 떠나는 기차여행이 무척이나 신나 보였다.

청량리역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만난 젊은 커플은 "잘 모르겠다. 우리에게 묻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 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기차시간이 늦었다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08학번 새내기라고 밝힌 대학생 한모씨(20)는 "아직 투표권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올해 20살이 되는 한씨의 생일은 지나있었고,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에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아이고 몰랐네요. 투표하고 올걸…"

[냉정파] "내가 바보 되는 기분인데 왜 투표를 해?"

기차표를 사러 창구 앞에 모여든 시민들의 모습
 기차표를 사러 창구 앞에 모여든 시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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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청량리역 광장 앞에서 만난 등산객 송아무개(51)씨는 냉정했다. "국회의원·시의원·구의원 모두 싹 없애버려야 돼"라는 과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정치판이 엉망인 상황에서 투표할 이유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그 사람들이 도대체 하는 게 뭐야. 선거 때나 등장해서 헛소리나 지껄이고 말이야. 그냥 싹 다 엎어버리는 게 나아!"

옆에 서있던 자영업을 한다는 이아무개(53)씨도 거들었다. 이씨는 "정치인 그 놈들 다 XX들이야. 도둑놈들하고 다를 게 뭐야"라고 언성을 높인 뒤, "투표장 걸어가는 10분이 아까워서 바로 이곳에 왔다"고 딱 잘라 말했다.

기차표 사는 곳 근처에서 만난 최아무개(32)씨도 단호한 어투였다.

"지금 (정치인들) 하는 거 보세요. 누구를 뽑든 뽑아주면 제가 바보가 되는 것 같잖아요. 전 투표 안 해요."

투표장을 떠난 민심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안 그래도 흐린 날씨인데, 구름이 민심도 가렸나보다.


태그:#총선, #청량리,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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