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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구층암 마당의 모과나무
 화엄사 구층암 마당의 모과나무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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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운이 완연한 4월. 지리산 자락의 이쪽 저쪽에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내보이며 빼어난 문화유산들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사찰 네 곳을 1박으로 돌아보는 일정을 잡았다.

북쪽에서 내려가며 처음 맞게 되는 곳은 남원 산내면의 실상사다.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창건되어 대단한 사세를 떨치던 곳이었으나 전란과 방화를 겪으며 건물은 모두 불타버렸고, 지금은 새로 지어진 10여동의 건물로 단촐한 규모가 되었다. 지리산자락의 사찰로는 특이하게 너른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우선 진입로 입구 해탈교 양쪽에 세워진 세 기의 석장승이 눈길을 끄는데, 2.5미터 큰 키에 툭 튀어나온 눈알과 큼지막한 콧등등 당당한 생김새들이다.

실상사앞 돌장승
 실상사앞 돌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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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전경
 실상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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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널찍한 마당 가운데 잘생긴 두기의 탑(보물 37호)과 가운데 석등(보물 35호)이 눈에 들어 온다. 신라시대 1금당 쌍탑 가람형의 전형적인 배치다.  쌍탑은 거의 같은 모습인데 적절한 비례로 안정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경쾌한 상승감을 보여주는 통일신라 3층 석탑 모습 그대로이며 기단과 몸돌에 특별한 장식이 없어 전성기 3층 석탑의 자신감이 잘 드러난다. 특히 상륜부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 예가 흔치 않아 더욱 반갑다.

실상사 극락전 주변
 실상사 극락전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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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창공사가 한창이라 경내가 다소 어수선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경내 왼 편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을 지나 극락전 영역으로 넘어가면 낮은 담장과 호수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분위기의 풍경이 있고, 지리산 북쪽에 위치해 이제서야 만개한 매화향이 그윽하다. 극락전 주위에는 증각대사부도(보물 38호)와 부도비(보물 39호), 수철화상부도(보물 33호)와 부도비(보물 34호)등 석조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뒷편 언덕으로 오백미터 남짓 떨어져 실상사 부도(보물 36호)가 있는데 가는 길에 꽤 운치있는 소나무 숲도 있어 빠트릴 수 없는 곳이다.

백장암 전경
 백장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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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암 3층석탑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동자상
 백장암 3층석탑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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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까지 와서 멀지 않은 백장암을 지나쳐선 곤란하다. 한동안 태풍에 휩쓸린 곳을 복구하느라 어수선 했으나 지금은 단정한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3층석탑이 걸작이다. 기단부가 생략되고 유사한 형태를 찾아보기 힘든 외형이 우선 파격적이며, 몸돌에 조각된 신장상들과 빈틈없이 들어선 장식들이 자유분방하고 세공 솜씨 또한 정교해 보는 눈이 즐겁다. 국보 10호로 지정돼 있다.

이광사의 지리산 천은사 현판
 이광사의 지리산 천은사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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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입구의 호수
 천은사 입구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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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관광도로를 넘어 구례땅으로 들어서면 먼저 천은사를 만나게 된다. 천은사는 일주문 현판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전란으로 불탄 절을 중건할 때 경내 샘가의 구렁이를 죽인 이후 샘이 솟지 않고 나쁜일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구렁이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영물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당대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수기를 살리기 위해 '지리산 천은사'라고 물 흐르듯이 흘려써 현판으로 걸었더니 화가 끊겼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새벽 고요한 시간에는 현판에서 물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바로 뒤편에 호수로 흘러드는 계곡이 가까워 실제 물소리가 들릴 법도 하겠다.

천은사 극락보전 내부 아미타후불탱화와 장식들
 천은사 극락보전 내부 아미타후불탱화와 장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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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보제루
 천은사 보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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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끼고 있는 초입의 아름다운 풍광은 천은사의 자랑거리이며, 몇 동의 건물이 어우러진 경내 분위기는 차분하고 단정한 모습이다. 뛰어난 건축이나 석조 문화재는 없지만 보물 924호로 지정된 아미타후불탱화등 극락보전 내부 장식들의 화려한 모습이 볼 만하다. 일주문 앞 소나무 숲속에서 정연한 모습의 부도밭을 만날 수 있다.

화엄사 각황전
 화엄사 각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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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내부
 각황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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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의 대표 사찰이라면 단연 화엄사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보재루를 거쳐 대웅전과 각황전에 이르는 경내의 건물 배치형태가 시원시원하고 딸린 암자만 8개에 이르는 대찰로 한두시간에 둘러볼 만한 곳은 아니다.

아무래도 화엄사의 유명세는 각황전에서 비롯된다. 국내 최대의 목조 건물로 2층으로 보이지만 실내는 하나로 연결된 통층구조다. 구불구불한 소나무 기둥들이 천장까지 쭉쭉 뻗어 있는 실내의 스케일이 압권이다.

각황전이 보여주는 장엄한 아름다움은 보는 위치에 따라 제각각인데 효대(孝臺)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서 보는 석축과 2층 지붕이 어우러진 공간감 또한 장관이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각황전 앞 석등도 그 규모로서 한 몫하는데 3.8미터의 키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석등이다. 각황전은 국보 67호, 각황전 앞 석등은 국보 12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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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4사자 3층석탑의 사자상
 화엄사 4사자 3층석탑의 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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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동,서 오층석탑
 화엄사 동,서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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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의 매력은 4사자3층석탑(국보 35호)이 있어 배가된다. 제각각 표정으로 네 귀퉁이를 받치고 있는 사자들의 모습이 볼 만한데, 전형을 완전히 벗어난 형태이면서도 균형감을 잃치 않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완성한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사자상 사이에 아이를 안고 있는 스님상과 전면에서 그를 공양하는 인물상의 모습이 재미있는데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웅전 앞 마당에 2기의 5층석탑은 비슷한 크기와 형태를 지녔지만 조각의 유무로 인해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장식이 없는 동쪽탑은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섬세하게 조각들을 세겨 넣은 서쪽탑은 화려함으로 저마다의 매력을 뽐낸다.

구층암 승방의 모과나무 기둥
 구층암 승방의 모과나무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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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구층암 천불전 전경
 화엄사 구층암 천불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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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경내를 잠시 벗어나 가까운 거리의 구층암은 꼭 들러볼 만하다. 대숲 사이로 낸 오솔길과 아담하게 자리잡은 구층함의 분위기는 무척 편안하다. 특히 모과나무를 잔가지만 쳐내고 그대로 승방의 기둥으로 사용한 모습은 자연에 순응하고자 했던 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끼 끼인 석축과 두그루 모과나무가 정겹게 어우러진 천불전 주위 모습들을 둘러보면서 여러 화려한 볼거리에 흥분되었던 마음은 자연스레 추스려진다. 경내를 피해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깊은 산속 대사찰을 떠 받치고 있는 장대한 석축을 감상하는 것으로 화엄사 답사는 마무리된다.

화엄사 석축
 화엄사 석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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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의 계단식 논
 피아골의 계단식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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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를 작정했으면 모를까 4월초에 쌍계사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변 도로로 진입해 보겠다는 것은 무모하다. 대신 일정의 마지막은 연곡사다. 벚꽃으로 일대가 북적여도, 가을단풍이 피아골을 뒤덮어도 연곡사는 늘 한가했다.

피서철에는 물놀이 야영객들로 어떨지 모르겠다. 근처를 지날때마다 연곡사를 들르게 되는 것은 이곳에서 통일신라 석공예술의 최고수준을 접해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입구의 채소밭부터 시작되는 호젓한 분위기에 실증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파릇한 봄의 정취가 피어나는 피아골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연곡사 3층석탑
 연곡사 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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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 동부도
 연곡사 동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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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감상은 단아한 기품을 뽐내는 삼층석탑(보물 151호)으로 시작해서 절 뒷편 언덕을 올라 3기의 부도를 돌아보는 순서다. 3기의 부도는 모두 저마다 뛰어나지만 그 중 최고는 동부도를 친다. 오죽하면 국보 54호로 지정된 북부도 마저 동부도의 아름다움을 치켜세우기 위한 비교자료로 전락하곤 할까.

검은색 화강암의 군살없는 몸매가 우선 아름답고 세부의 조각 솜씨 또한 역사상 석공예 수준이 가장 높았던 통일신라 작품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정교함을 보여준다. 동부도는 금당 오른편으로 조금 오르면 만나게 되는데, 좋아 하는 것을 천천히 아껴보는 편이라면 왼편의 서부도부터 돌아 보는 순서가 맞겠다. 동부도는 국보 53로 지정돼 있다.

같은 지리산 자락의 사찰들이라도 고도와 위치에 따라 봄이 오는 속도는 제각각인데 쌍계사에서 시작해 화엄사 천관사 연곡사를 거쳐 마지막으로 실상사에 다다르게 된다. 이를 한번의 코스로 돌아보면 매화와 벚꽃이 제각각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어 그 또한 즐거움이다.
화엄사 각황전 옆마당의 벚꽃
 화엄사 각황전 옆마당의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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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블로그 blog.naver.com/hanbam



태그:#화엄사, #실상사, #천은사, #연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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