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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지지 않았을까?"

"진안 벚꽃이 늦잖아요."

 

전라북도에서도 산간지방에 해당하는 진안은 기온인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꽃이 피는 시기도 항상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 늦다. 금산사나 정읍, 그리고 군산으로 향하는 번영로에 피어나는 벚꽃보다 진안 마이산의 벚꽃은 그 정도 늦게 핀다. 전라북도 지방에서 제일 늦게 피어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목적지를 진안의 마이산으로 정하였다.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마이산이다. 암 마이봉과 숫마이 봉이 정겹게 마주 보고 있는 기이한 산이다. 마이산은 변성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암석이 단단하지 못하다. 산 안에 위치하고 있는 탑사에는 기이한 형태의 탑이 쌓여져 있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자동차를 달려 마이산에 도착하니, 입구에까지 자동차가 밀리고 있었다. 마지막 벚꽃을 구경하기 위한 상춘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탓이었다.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에게 물으니,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는 것이었다.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에 밀려서 봄을 즐길 여유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발길을 돌리게 하였다.

 

백운면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는 하겠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과 만날 때에는 생각을 고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도 봄을 즐기기 위한 여행이니, 그 목적지 정도는 바꿔도 무방한 일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였던가?

 

빨간 튤립이 유혹하는 음식점이 눈에 들어왔다. 시골에 좋은 음식점이 있으니, 참으로 좋았다. 여행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입에 맞는 음식과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낯선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즐거움이다. 귀한 산나물로 삼겹살을 싸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식도락을 즐길 수 있었다.

 

백운에서 장수로 향하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예전에는 그곳이 산으로 막혀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길이 뚫려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여행의 맛이란 처음일 때 가장 좋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쁜 일이다. 처음이어서 아주 좋았다.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 섬진강의 발원지라는 푯말을 보게 되니, 호기심이 커졌다. 장수군 수분이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도 섬진강의 발원지가 있다고 하니, 신기하였다. 주변 산세를 바라보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안내판의 표시를 따라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계곡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산, 물감이 그대로 번져나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분홍 꽃바람이라고 하였던가? 연록의 새순과 산 벚꽃이 어우러져 그려내는 봄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씨앗이 바람에 날려 자생하여 자라나 피어난 꽃이니, 완전히 자연산이다. 사람의 손길이라고는 가보지 않은 순수 자연 모습 그대로여서 더욱 아름다웠다.

 

꽃은 꽃이어서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바로 새싹이었다. 연록이 창조해내는 멋이 어찌나 장관인지, 입이 닫히질 않을 정도였다. 바라보고 또 보아도 감탄사가 연발이다. 자연이라서 가능한 아름다움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연출해낼 수 없는 멋이었다. 저절로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암 마을을 감싸는 산의 정취에 취하고 있노라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오온개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고뇌로 복잡해진 욕심이 말끔하게 씻겨 지는 것 같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세진(世塵)을 털어버리게 되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삶이란 비워가며 닦는 마음이라고 하였던가? 육체와 영혼 속에 숨어 있는 참 나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겉으로 드러난 나는 참 나가 아니다. 욕심이 앞서 있어서 모든 것이 다 공허할 뿐이다. 참 나는 이런 욕심에 겹겹으로 쌓여져 있어서 주인인 나조차도 착각하게 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산을 보니, 참 나를 찾고 싶어진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인가? 죽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이기에 아등바등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에 가슴을 태우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산을 보니, 달라진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지는 것이 아닐까? 행복도 한 켜를 이루며 쌓여지고 기쁨도 한 켜를 이룬다. 어디 그뿐인가? 환희도 한 켜를 이루게 되고 뿌듯한 보람도 한 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생이란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기도 하고 채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손에 물감이 묻어날 것 같은 산의 모습이 말하고 있었다.

 

열심히 쌓아놓고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사는 어리석은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고. 스스로 만들어놓고, 욕심으로 인해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참 나를 잃어버리고는 잃어버린 그 자체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방황하는 것이다. 욕심으로 가려진 허망한 것을 잡기 위하여 헤매고 있는 것이다.

 

데미샘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개울물이 그렇게 투명할 수가 없다. 섬진강은 원래 깨끗한 물이다. 남도 삼백 리를 휘돌아 남해에 도달할 때까지도 그 맑음을 잃지 않고 흐르고 있는 강이 섬진강이다. 그런데 그 발원지에서 나오는 물은 얼마나 청청하겠는가?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영혼이 맑아지고 있었다.

 

신록으로 눈이 호사하고 맑은 물 흐르는 소리로 귀가 호사하게 되니, 마음도 호사하였다. 오관이 밝고 말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감지하게 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이름 모를 풀꽃이며 월백으로 빛나고 있는 새 순의 모습에 푹 젖어들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봄의 절정에서 봄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데미샘에서 돌아서나와 장수로 향하였다. 높은 산 위까지 도로가 잘 닦아져서 아무런 불편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장수를 지나 산서를 거쳐 임실군 성수면으로 돌았다. 보이는 산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말한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산, 환상작인 모습에 반해버린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진안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 부군의 산


태그:#산, #연록, #환타지, #발원지,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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