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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은 고려 충렬왕 때 고흥현으로 승격되었다가 조선 때 보성의 도양현으로 바뀌게 되고, 다시 흥양현으로 명칭이 바뀝니다. 고흥이란 지명은 조선 고종 때인 1895년에 개칭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흥은 남해를 바라고 혹처럼 튀어 나와 있습니다. 보성군과 맞닿아 있는 고흥은 남양면의 좁은 길목을 지나면 넓은 고흥의 땅이 나섭니다. 고흥 우측으로는 순천만과 여자만을 넓게 품고 있고, 좌측으로는 득량만과 보성만너머로 장흥과 보성을 바라고 있습니다.

 

고흥을 잇는 국도는 모두 3개로 담양으로 가는 15번 국도와 군산으로 가는 27번국도, 그리고 77번 국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흥에서 가장 먼저 만난 곳은 남열해변입니다. 일출로 유명한 곳입니다. 고흥의 일출명소로는 남열해변과 동일면의 봉남, 거금도의 오천마을 등이 있습니다.

 

 

고흥의 특별함을 8품, 9미, 10경으로 말합니다. 8품은 고흥을 대표하는 8가지 식품, 9미는 계절마다 특색있는 9가지의 맛을, 10경은 고흥을 대표하는 10가지의 풍경을 말합니다. 고흥의 10경 중 6경은 영남 용머리바위입니다. 거친 바다가 할퀴어 울퉁불퉁한 반석과 수직의 암벽층을 이루고 있어 바다와 함께 멋진 풍광을 만들어냅니다.

 

이 용바위에는 남해바다 해룡이 하늘로 승천할 때 이 암벽을 타고 기어올라갔다고 하는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자녀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부모들이 많이 찾습니다. 등용문(登龍門) 즉 입신양명. 자식들의 출세를 위해 용이 올라간 이곳에서 기원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능가사는 팔영산 아래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팔영산을 오르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팔영산은 유영봉, 성주봉, 생황봉,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 적취봉 등 8개 봉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 위왕이 세수하다가 대야에 비친 여덟봉우리에 감탄하여 신하로 하여금 찾게 하고, 중국에서 찾지 못하자 우리나라까지 오게 되었는데 왕이 몸소 찾아와 제를 올리고 팔영산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능가사는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보현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정유재란때 불탄 것을 인조·숙종 때 중창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숙종 때 중창한 뒤 사적비를 세웠는데 능가사의 맨 뒤편 전각인 응진당 뒤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능가사는 넓은 공간에 비해 전각이 극히 드문 사찰 중 하나입니다. 사천왕문, 대웅전, 응진당이 전부고, 사천왕문 앞에 서면 능가사 전체가 휑하고 쓸쓸함마저도 느껴집니다. 경내 곳곳에는 큼직한 동백나무와 목련이 제 색깔을 서서히 내기 시작하고, 푸릇푸릇한 기운이 퍼지고 있으니 따뜻한 봄이 한창이면 나름대로 공허한 느낌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응진당 뒷편으로는 조선 숙종 때 능가사 중창 후 만든 사적비가 자리 잡고 있고, 이름없는 부도가 서 있습니다. 이 부도는 일부 훼손되어 있는데다 역암 재질인지 세월이 지나면서 새겨진 문양들이 알아보기 힘든 것들이 많습니다. 부도의 중대석의 8면에는 4가지의 꽃 문양과 4가지의 동물문양을 새겨놓았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중대석을 붙잡고 있는 채 고개를 돌린 동물문양입니다. 꼬리가 두툼한 게 다람쥐 비슷합니다.

 

 

나로도를 가기위해 해창만 방조제를 지나야합니다. 해창만 방조제를 지나면서 펼쳐지는 어촌 풍경은 한가하고 여유가 넘칩니다. 바다 위로 둥실둥실 떠있는 풍경은 가만히 앉아서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따라 가슴 속으로 잔잔한 풍경의 느낌들이 와 부딛칩니다. 금사리에서 오도를 가로질러 옥강리에 이르는 해창만 방조제를 따라가면 15번국도를 따라 나로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로도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로 이루어져 있고, 연육교인 나로 1·2대교의 건설로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되었습니다.

 

 

고흥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향하는 우주의 메카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흥의 맨 끝자락에 위치한 외나로도에는 우주센터가 있습니다. 우주센터는 로켓을 이용하여 인공위성을 우주공간으로 발사하기 위한 발사장소입니다. 약 150만평의 공간에 들어선 우주센터에는 발사대를 포함하여 발사체, 위성조립 및 시험시설, 기상관측시설, 프레스센터 등이 갖춰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3번째로 자체적인 발사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로 나로도 우주센터에서 인공위성이 발사된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이에 부응하여 우주센터 입구에 우주교육 홍보관이 지어지고 있고, 청소년 우주체험센터가 힘차게 건설 중에 있습니다.

 

 

나로도에서 나와 소록도로 가는 77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도화면 발포리에 백로, 왜가리 서식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보다도 훨씬 많은 백로와 왜가리들이 발포마을 야산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곳 발포마을에는 수 백년 전부터 왜가리들이 날아와 살고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백로들도 날아와 둥지를 튼다고 합니다. 발포해변 앞에서만 봐도 산이 하얗게 비치는데 백로와 왜가리들이 진을 치고 있는 동령산에 오르면 그 모습이 장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 발포에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충무사와 발포만호성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2년 전, 당시 36세의 나이로 발포만호로 부임하였다가 파직당했습니다. 다시 정읍현감을 거쳐 전라좌수사로 돌아올 때 이곳에서 거북선을 제조했다고도 합니다. 그것을 증명하 듯 이곳에는 선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바다를 메우면서 사라졌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소록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흥 최고의 항인 녹동항으로 가야합니다. 녹동항에는 거금도, 금당도 등 인근 도서섬들을 연결하고, 멀리 거문도와 제주도까지 운항하는 여객선도 있습니다. 녹동항에서 소록도까지의 거리는 1km가 채 되지 않습니다. 소록도까지 들어가는 배는 수시로 운행하며 요금은 왕복 1000원이고, 차는 가지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소록도를 돌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가지고 들어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녹동은 풍수지리적으로 사슴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하여 녹두, 녹도로 불리다가 녹동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소록도는 '작은 녹도'라는 의미입니다. 소록도는 제1안내소 순록탑을 시작으로 신사와 한 달에 한 번씩 가족들과의 면회가 가능하여 탄식하는 곳이었다하여 붙여진 '수탄장'이라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 지옥같은 악몽이 떠오르는 일제시대 때 사용된 감금실과 검시실, 그리고 중앙공원을 돌아나오는 일정으로 둘러보면 됩니다.

 

 

소록도는 두 가지의 슬픔을 간직한 곳입니다. 한센병이라는 병을 지니고 소록도라는 낯선 곳으로 강제 격리된 이들의 슬픔이 하나고, 일본인으로부터 몸서리쳐지는 핍박과 감금을 당한, 그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검시실과 감금실이 나머지 하나입니다.

 

검시실은 사망환자를 검시하고, 한센병 확대를 막기 위해 남자들의 정관절제수술을 행하던 곳입니다. 당시 쓰이던 기구들이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정관절제를 하던 기구를 단종대라 부르는데 당시 이곳에 앉아 시술을 받았던 사람들의 억울함과 한스런 눈물을 담은 시가 걸려 있어 가슴 한 켠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두시간 반 동안의 씁쓸한 소록도의 기분을 맛보고 나서 찾은 곳은 상큼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유자공원입니다. 고흥은 유자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타민이 레몬보다 3배 이상 많아 감기와 피부미용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참샘이란 지명에 따라 개발한 참샘이라는 약수터의 깔끔한 물 한 잔을 맛본 뒤 뒤편으로 오르면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면 드넓은 유자재배단지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유자공원 도로변에는 특산품 전시판매장이 갖춰져 있어 이곳에서 재배한 유자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고흥읍에 들어서 군청 뒤편으로 오르면 흥양읍성이었음을 알려주는 성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선초 보성에 편입되었다가 세종 때 흥양현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 때부터 고흥이라는 지명을 다시 찾게될 때까지 흥양현이 있던 곳입니다.

 

평지와 산과 함께 어울어진 절충형 읍성이 대부분인데, 이는 마을들이 산을 등지고 형성되기 때문이고, 더불어 적의 침입시 방어가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라도 경상도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에 더욱 유용한 성의 구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흥양읍성의 그 모양을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고흥군청 뒤편에 남아 있는 일부 성곽의 흔적과 군청 앞에 초라하게 서 있는 관아 문, 고흥천 주변에 있는 두 기의 홍교가 전부입니다. 고흥이기 이전에 흥양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지만 그 모양이 너무 초라해 아쉽기만 합니다.

 

 

원래는 고흥 10경 중 하나인 중산 일몰을 보려했지만, 넓은 고흥 땅을 돌아다니는데 하루라는 시간은 적었습니다. 결국 대전해수욕장을 나오다가 서편으로 지는 일몰을 맞이했습니다. 산등성이 너머로 붉은 기운이 가득하고 주변도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붉게 물드는데 차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렌지빛 기운과 파란 하늘색 기운이 부딛치며 하루를 마감하는 풍경은 장엄하기 그지 없습니다. 때마침 지나간 비행기의 흔적이 두 색감을 묘하게 갈라 놓습니다.

덧붙이는 글 | 1. 나로도 우주센터는 현재 건립중이며, 출입이 통제되어 있습니다. 우주센터 앞쪽으로 홍보관이 건립중이다. 
2. 백로,왜가리서식지 주변에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있는 충무사와 발포만호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3. 녹동항↔소록도 왕복 운임은 1,000원, 
차는 가지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여행객은 제 1안내소에 차를 두고 걸어가야 하므로 굳이 차를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태그:#고흥, #외나로도, #능가사, #남열해변, #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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