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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백혈병 산업재해 인정하라", "삼성은 더 이상 노동자를 죽이지 말라"

 

노동자들의 잇따른 백혈병 발병과 사망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경기 용인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정문 앞에 25일 오후 민주노총 깃발이 나부꼈다. 그 아래로 350여명의 노동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운집해 구호를 외쳤다.

 

회사 정문으로 향하는 우측 도로변에는 '삼성반도체는 집단 백혈병 사태 책임져라', '삼성반도체 근무로 인한 백혈병·암·유산 등 질병 제보' 등의 내용이 적힌 펼침막이 내걸렸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집단 백혈병 사태 진상규명과 무노조 경영·노동탄압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 현장 모습이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앞에서 이처럼 노동·시민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앞 첫 대규모 집회...초일류 삼성, 기업윤리 성토

 

민주노총 경기본부가 주최하고 17개 노동·인권·시민단체로 구성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주관한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초일류기업 삼성'의 기업윤리를 집중 성토했다.

 

이날 집회는 노동자들의 집단 백혈병 발병과 죽음이 회사 작업공정과 관계가 없다며 산재인정을 외면하고 있는 삼성반도체 측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노동탄압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 주최 측이 어렵게 집회신고를 거쳐 마련했다.

 

주최 측은 이날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선전전을 벌인 뒤 오후 3시 30분부터 공식 결의대회를 시작했다. 먼저 배성태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이 대회사를 통해 포문을 열었다.

 

배 본부장은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부를 축적한 삼성은 그 부를 이용해 '삼성공화국'을 만들었다"고 일갈했다. 이어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열심히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민주노총이 앞장서 삼성에 반드시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자"고 강조했다.

 

배 본부장은 최근 활동을 마친 삼성특검을 겨냥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삼성특검은 삼성의 비리를 캐는 특별검사가 아니라 '특별 변호사' 노릇을 했다"면서 "김용철 변호사가 그토록 주장한 '떡값 로비'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비판했다.

 

박순남 건강한 노동세상 사무국장은 "악질 삼성에 맞서 딸인 고 황유미 씨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려고 투쟁해온 황상기 씨와 같은 분들이 있어 오늘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최근 또 한사람의 백혈병 제보가 들어와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는 모두 13명으로 늘어났다"면서 "대책위는 삼성에 대한 노동부의 진상조사가 철저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회를 맡은 정성훈 민주노총 경기본부 사무처장도 "삼성의 협박과 회유, 감시가 심하기 때문에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의 수는 지금보다 몇 배가 넘을지 모른다"면서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음의 일터로 내몰리지 않도록 투쟁하자"고 말했다.

 

고 황유미씨 아버지 "이곳이 반도체 공장인가, 백혈병 공장인가"

 

이날 집회에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디퓨전 공정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지난해 3월 숨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54) 씨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설비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005년 7월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 씨의 부인 정애정(32) 씨도 참석했다. 또 삼성에 의해 3년여의 옥고를 치른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모습도 보였다.

 

특히 삼베 두건을 쓰고 연단에 오른 황씨는 "내 딸 유미는 삼성반도체에 취직해 백혈병에 걸려 죽었는데도, 회사에서는 개인적인 질병이라고 말한다"면서 "여기가 반도체 공장인지, 백혈병 공장인지 알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황씨는 또 "삼성반도체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유미와 이숙영씨 등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무노조 삼성은 노조를 허용하고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반도체공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화일꾼 ‘노래공장’의 추모의 노래가 끝나자 송수근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부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송 부위원장은 삼성SDI 울산공장 해고노동자로, 10여년간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삼성에서 작년에만 1000여명의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으로 쫓겨났다"면서 "노동자들은 죽도록 일했지만 노조가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 부위원장은 "이제 노동자의 힘으로 삼성의 구조조정을 막고 무노조 행진을 끝장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양동규 금속노조위원장은 "삼성은 초일류기업이 아니라 범죄 집단이나 다름없다"고 독설을 퍼부은 뒤 "삼성특검을 통해 밝혀진 불법 비자금 4조5000억원은 삼성에서 내몰린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며, 이는 마땅히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식 결의대회는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의 추모시 낭송과 연두색·노란색·분홍색 종이에 참석자들의 염원과 의지를 적어 불사르는 상징의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결의대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삼성반도체 후문 쪽에 있는 여성 근로자 기숙사 앞까지 행진해 마무리 집회를 갖고 해산했다. 여성 근로자 기숙사는 고 황유미 씨가 회사에 근무할 당시 생활하던 곳으로, 주최 측은 황씨의 백혈병 죽음을 동료들에게 알려주자는 의미로 마무리 집회를 이곳에서 진행했다.

 

이날 대회장 주변에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되고 정·사복 경찰들이 집중 배치됐으나 주최 측이 평화적으로 집회를 진행하면서 별다른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다.

 

 

백혈병 피해자 13명으로 늘어...대책위, 28일 "집단 산재 신청하겠다"

 

한편 대책위에 따르면 삼성반도체 공장 백혈병 발생 노동자는 최근 추가 제보자 한명을 포함해 모두 13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가운데 황유미씨를 비롯해 황씨와 같은 작업공정에서 일했던 이숙영씨, 설비엔지니어 황민웅씨 등 7명이 사망했고, 나머지는 현재 투병중이거나 연락이 끊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책위는 "삼성반도체는 집단 백혈병 발생 원인규명보다 회사와 무관한 개인적인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등 불량한 작업환경 등이 원인"이라며 산재인정을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는 따라서 오는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백혈병 피해 가족들과 함께 근로복지공단 본부에 집단 산재신청을 낸 뒤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대책위는 또 "노동부가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13개 반도체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화학물질 사용형황과 근로자 건강실태 등을 조사해 오는 11월까지 산업안전공단을 통해 역학조사를 벌일 계획이지만 조사과정과 방법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조사과정에도 대책위 소속 전문가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며 조사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책위 관계자는 "이번 집회를 시작으로 삼성반도체 측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노동부에는 정보공개를 신청하는 등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원인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황상기씨 "회사 측서 대책위 탈퇴 회유, 금전보상 언급" 주장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지난해 3월 6일 사망한 고 황유미(당시 23세) 씨의 아버지 황상기(54) 씨는 25일 "최근 회사 측 간부 2명이 수차례 집으로 찾아와 대책위에서 탈퇴하면 보상을 해주겠다며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이날 민주노총 경기본부 주최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정문 앞에서 열린 ‘삼성반도체 노동자 집단 백혈병 사태 진상규명과 무노조 경영·노동탄압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에 참석해 규탄발언을 한 뒤 기자와 만나 이같이 주장했다.

 

황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삼성반도체 측은 금전보상을 미끼로 황씨를 17개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에서 분리시키려는 전형적인 '회유공작'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지난해 3월 6일 유미씨 사망 이후 회사 측의 책임 있는 보상제의나 접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유미가 죽고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니까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장례를 치르고 나면 (보상 문제를) 깨끗이 마무리해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씨는 "유미의 장례를 치르고 난 지난해 3월 15일 회사 직원들이 속초의 한 횟집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유미의 백혈병은 개인질병으로, 회사와는 관련이 없다'며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어 "대책위와 연대투쟁에 나선 이후 회사 측의 제의나 접촉은 없었느냐"는 물음에 "최근 회사 인사과 간부 2명이 수차례 집으로 찾아와 '보상을 해 줄 테니까, 대책위에서 빠져라'라고 회유해 ‘대책위와 얘기하라’며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그러나 "집으로 찾아온 회사 인사과 간부 2명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말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앞으로 회사 측에 대한 대응계획에 대해 "세부적인 사항은 대책위와 공조하겠다"면서 "현재로선 유미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며, 이를 위해 노동부는 역학조사에 대책위를 꼭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그:#삼성반도체, #백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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